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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tsu Feb 10. 2022

게임은 예술이 될 수 있는가?

게임을 이야기하며 엿보는 미학과 예술에 관한 규정

나는 게임을 좋아한다. 특히 어릴 때는 게임을 정말 좋아했다. 어렸을 때 시작한 게임은 소니와 닌텐도 사의 조력에 힘입어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그런데 솔직히 말하자면 언젠가부터 게임이 예전만큼 재미없어졌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게임을 매우 '가리게' 되었다.



게임이 무엇일까? 게임을 규정짓는 것은 예술과는 다르게 정말, 매우 간단하다. 어떤 정해진 규칙 아래에서 이기고자 하는 것이 게임이다. 그래서 모든 스포츠는 게임이며, 장기와 바둑 또한 오래된 역사를 가진 게임이다. 그렇지만 '스포츠와 장기, 바둑은 지금의 게임들과 다르지 않은가?'라고 묻는다면 답이 복잡해질 수 있다. 지금의 게임들 대부분이 어떤 서사를 다루기 때문이며, 특히 내가 즐겨하는 비디오 게임이 그러하기 때문이다.



서사를 다룬다는 것은 전개되는 이야기가 있다는 뜻이다. 전개되는 이야기는 처음과 끝이 있으며 인간의 감정을 자극시키고 무언가를 이끌어낸다. 이런 게 가능한 이유는 인간이 '완결성을 가진 이야기'를 끔찍이도 좋아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몇 개의 주어진 단편만으로도 이야기를 뚝딱 만들어내는 뇌를 가지고 있다. 이것은 인간의 상상력이라는 거대한 원천이기도 하면서 인간을 이성의 바깥으로 떠밀어내는 함정이기도 하다.



하여튼 인간은 이야기를 너무 좋아하고, 예술을 규정하는 거대한  다리  하나인 문학이 대부분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많은 이들이 이야기가 주는 감정을 예술이 주는 감정과 동치 시키게 된다. 이야기로 인한 감정의 고조가 예술을 논증하게 만드는 ,  좋은 이야기는 좋은 예술이라는 이상한 결론으로 이어지게 되는 것이다.



예술을 규정하는데 특별한 이야기가 반드시 필요하다면, 두 다리 중 다른 쪽 다리인 미술에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것이다. 미술은 분명 어떤 주제를 가지고 있지만 그것이 모방하려는 객체(인간의 상상력을 통해 이야기의 원천이 될 수 있는 무엇)가 미술을 규정짓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그려냈느냐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고대로부터 이어진 미술사조에서 무엇을 그릴 지가 변한 적은 거의 없다(모방하고 표현할 수 있는 것은 이 세계와 관념들뿐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그릴지가 매번 바뀌었을 뿐이다. 이는 대다수의 미술 관람객들의 치명적인 관람방식, 이 작가는 '무엇을' '왜' 그렸는지만 알려고 하는 것과 연결이 된다. 이렇게만 바라본다면 미술을 이해하는 폭은 현저히 좁아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 예술을 규정짓는 것은 이야기가 아니다. '이야기를 어떻게 그려냈는가'다. 표현방식, 구조, 형태, 구성, 양식, 형식, 연출 등 그것을 표현하는 단어는 수 없이 많지만 결국 예술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이 아닌 '어떻게'이다.



여기에서 게임은 예술이 될 수 없음이 증명된다. 수많은 비디오 게임이 특별한 이야기를 품고 나오지만 게임은 이야기를 표현하는 방식이 매우 제한된다. 게임의 목적은 정해진 규칙 아래에서 이기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게임에 관한 근본적 규정은, 게임을 통해 무엇을 연출하려는 의지의 반대급부로 이어진다. 게임은 게임만이 가지고 있는 연출 능력이 없다. 단지 이야기를 가지고 있을 뿐이다. 게임에서 이야기가 진행되는 방식은 유사영화이거나 유사희곡처럼 이루어진다.



게임은 결국 어떤 행위의 단순반복이다. 훌륭한 게임은 그 단순반복을 여러 페이크나 상대방의 존재를 통해 숨기고, 마치 반복이 아닌 것처럼 즐기게 해 준다. 좋은 게임은 단순반복과 정해진 규칙이라는 끔찍한 감옥 안에서 플레이어에게 재빠른 반응속도나 뛰어난 전략을 요구한다. (아, 나는 반복이라는 끔찍한 감옥에 질려버린 것이었다!) 그리고 플레이어의 해법이 승리로 이어질 때 쾌감으로 이어진다. 예를 들면 내가 작년 추석에 수많은 절망과 포기 끝에 2년 만에 다시 도전해 '검성 아시나 잇신'을 쓰러뜨린, 프롬 사의 '세키로 : 섀도우 다이 트와이스' 같은 게임이 그렇다. 상대방의 공격을 받아치고 빈틈을 노려 공격한다. 단순한 반복행위를 절묘하고도 끔찍한 난이도로 만들어낸 이 게임은 내가 처음으로 끝판왕을 깨고 사진까지 찍어둘 만큼 특별한 경험이기도 했다.



물론 '세키로 : 섀도우 다이 트와이스'는 아름다운 일본풍 배경과 디자인, 그리고 나름 매력적인 이야기를 게임 속에 모두 갖추었다. 그러나 게임의 목적인 '상대방의 공격을 받아치고 빈틈을 노려 공격하는 것'과 이야기와 디자인의 총체적 관계는, 단순한 행위와 배경 그 이상이 되지 못한다.



하지만 단순히 배경뿐인 이야기를 떠나서도, 게임에는 분명 감동이 있다. 내가 2년 만에 검성 아시나 잇신을 쓰러뜨렸을 때처럼, 우리가 상대 팀에 극적인 역전승을 거둘 때처럼. 그러나 그것은 예술이 주는 감동이 아닌 승리에 대한 갈망에서 오는 감동이다.



나는 이것을 분명 구분해야 된다고 보지만, 구분하지 않는다고 큰일이 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자면 재즈에서 시작된 '팝'을 예술로 바라봐야 하는가? 만약 예술로 봐야 한다면 어디에 속하는가? 음악인가? 문학인가? 밥 딜런이 분명 노벨 문학상을 받기는 했지만 '팝'은 어디에 끼어도 조금 어색해 보인다.



그러면 어떠한가? 지금 같은 포스트 모더니즘의 포스트 시대에! 나는 BTS를 매우 좋아한다. 디즈니도 사랑하기 그지없다. 비록 이들이 엄격히 예술은 아닐지라도 이 모든 것들은 '문화'의 가장 강력한 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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