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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tsu Aug 04. 2023

<밀수> 피와 바다의 부루쓰

Smugglers

류승완은 '부당거래'와 '베를린'을 거쳐 '베테랑'을 통해 대중들에게 각인된 감독이다. '베테랑'을 통해 흥행의 정점을 찍은 그의 내러티브는 언제나 상당히 간결하고 대중적인 대립구조를 가져간다. 상위계층과 하위계층의 명백한 대립. 상위가 하위를 착취하고 하위는 반란을 도모한다. 이는 류승완에게 엄청난 비난이 쏟아진 '군함도'에서도 한 치의 오차가 없는, 오히려 지독하게 강박적으로 보일 정도의 스탠스로 이어진다. 다만 대중들이 기대한 것은 나쁜 지배계층인 일본과 착한 피지배계층인 조선의 대립이었고, '군함도'는 류승완의 영화에서 지속적으로 다뤄왔듯 조선의 지배계층과 조선의 피지배계층이 대립하는 것을 보여주었기에 그는 실패하였다.


'군함도'의 실패 때문인지 류승완은 '모가디슈'에서 다른 스탠스를 취했다. 계층 간 대립 대신 대립하는 서로가 일종의 재난을 직면하고 극복해 나가는 내러티브를 풀어나간다. 그래서 오히려 기대에 못 미쳤다. 흠없이 준수한 영화지만 '베테랑'과 '군함도'를 거쳐가며 자신의 스탠스에 묶여 그의 연출적 특색이 사라진 것처럼, '모가디슈' 또한 내러티브에 정교함은 더해졌지만 특별한 무언가를 찾을 수는 없었다. 그리고 이제 류승완의 영화에 대한 기대감을 털어낸 그때 신작인 '밀수'에서 빛나는 무언가를 찾을 수 있었다.


'밀수'는 다시 류승완의 완고한 스탠스로 돌아간다. 상위계층과 하위계층의 대립. 여기에서 하위계층은 여성이고 상위계층은 남성이다. 이것이 류승완의 영화라고 보았을 때 악역은 분명히 가장 거대한 권력, 국가권력을 등에 업은 세관 계장 이장춘 역에 김종수일 것임을 누구나 추측할 수 있다. 다만 김종수라는 배우의 마스크가 주는 느낌과 영화 전반부 내내 일종의 건실함을 캐릭터화하기 때문에 소소한 페이크를 통한 재미를 주기도 한다. 이 단순한 페이크에 주목해야 할 이유는, 선량해 보이던 그가 구둣발로 남을 짓밟으며 드러나는 폭력성이 엄청나게 강조되기 때문이다.


'밀수'의 가장 강력한 연출적 강점은 상상을 벗어나는 폭력성이다. 이 폭력성은 자칫 지루해질 수 있는 영화에 경쾌한 발걸음을 더한다. 끊어진 닻줄에 강타당한 진숙의 동생 진구는 쓰러져 바다에 빠진다. 하지만 사실 끊어진 닻줄의 장력이라면 진구는 혼절하는 게 아니라 반으로 갈라져야 한다. 여기서 폭력의 연출이 최소한으로 이루어지는구나 생각하고 안심한다. 그런데 그때 혼절한 진구를 구하러 뛰어든 아버지가 폐그물에 얽혀 엔진스크루에 갈려나간다. 단순히 피로 물든 바다와 소리만으로도 그 끔찍한 죽음의 방식이 몸속으로 울려 퍼진다. 여기서 카메라는 그 끔찍함을 직시하지 않았다. 그러나 다음으로 이어지는 폭력은 또다시 우리를 배신한다. 이번엔 카메라가 권상사가 아무렇지 않게 면도칼을 꺼내 춘자의 머리를 그어버리는 것을 직시한다. 춘자의 머리에서 흘러내린 진하고 붉은 피가 얼굴을 덮을 때 이 기대를 벗어나는 폭력의 연출에 이제 어느 정도 리듬이 실리는 것처럼 느껴진다. 상어에게 다리를 뜯어 먹힌 억척이, 유리잔을 씹어먹는 장도리, 서슴없이 남의 머리를 구둣발로 짓밟는 이장춘, 그리고 권상사와 애꾸의 칼부림. 이 모든 과격한 폭력성이 가벼운 영화의 내러티브와 분위기에 긴장감과 리듬을 조성한다. 폭력이 조성하는 리듬을 보고 있자니 쿠엔틴 타란티노가 떠오를 수밖에 없다. 그만큼 '밀수'는 류승완의 연출적 강점이 살아나는 영화다.


한편 오직 피로 문제를 해결하려 드는 상위계층인 남성과는 달리 하위계층인 여성은 서로 간의 협력을 무기로 한다. 의심하고 배신감을 느끼고 서로 적대하지만 결국 바다처럼 포용한다. 그들은 서로 멀어질 수는 있지만 분리되진 않는다. 그들은 서로를 의심할지라도 남성들처럼 서로를 배신하는 일로 이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피로 뒤덮이더라도 언제 그랬냐는 듯 파도와 함께 원래대로 돌아올 수 있는 것이다. 권상사와 춘자의 관계처럼 바다는 결국 무엇이든 끌어안을 수 있다.


다만 이 영화의 주인공인 춘자와 진숙, 그들의 바다와도 같은 서로에 대한 포용이 승리를 향해 나아가는 내러티브와는 별개로 이 영화에서 가장 특별한 존재감을 보여주는 것은 권상사와 장도리이다. 박정민의 연기는 이제 송강호와 비슷한 결이 느껴진다. 어떤 캐릭터라도 그 캐릭터가 박정민처럼 보이게 만드는 연기를 펼친다. 누군가는 언제나 찌푸리고 투덜거리는 모습이 똑같다고 평할지라도, 그의 연기는 캐릭터를 절묘하게 영화 속에 녹아들게 하고 그 영화에 보는 맛이 들게 한다. 이는 배우로서 압도적인 재능임이 분명하다. 그리고 조인성은 사실 너무 과도하게 멋있게 연출된다. 춘자를 숨기고 지키려 하는 권상사의 모습은 조인성의 얼굴과 분위기만으로 압도되어 영화가 갑자기 뜬금없이 로맨틱한 분위기로 흐르는 것을 당연시하게 만든다.


그래서 '밀수'는 '모가디슈'처럼 탄탄한 수작은 아니지만 오히려 더욱 볼만한 영화다. 영화의 이야기보다 강력하게 박히는 이미지들을 관찰하다 보니 어느새 영화가 끝이 나있었다. '베를린'을 보고 나온 이후 처음으로 류승완의 다음 영화를 기대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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