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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규선 Feb 28. 2022

봄이 오면

봄이 오면

아침에 데이케어센터에서 오는 차를 기다릴 때마다 모친이 늘 하시는 말씀이 있다.


남동생이 어렸을 때 학교에 가다가 모친의 손을 뿌리치고 "나 잡아 봐라" 하면서 놀려대 등교시간에 늦을까 봐 이리저리 쫓아다녔던 기억이 나는데, 지금은 반대로 모친이 보호받는 학생이 되었다며 웃으신다.


돌이켜보면 나는 예전에는 아이들을, 지금은 치매인 모친을 아침부터 돌보며 손을 잡고 집 앞에서 차를 기다리는 것이 하루 일과의 시작이었다.


그러니 한주먹이나 되는 많은 약을 제시간에 드시는지, 양치질은 잘하시는지 옆에서 지켜봐야 했고, 감기에 걸리니 아침에 머리를 감지 마시라 했는데 잠시 한눈을 팔면 이미 비누거품이 하얀 뭉게구름이 되어 머리와 목에 걸려 있어 실소를 자아내곤 하였다.


뚱뚱한 체격만큼 매사 느긋한 모친이 머리를 단정히 빗고, 얼굴에 로션을 바는 후에 "나! 예뻐?" 하시면 정신없이 바쁜 아침이지만 금세 함박 웃음꽃이 피어나고, 오후 5시경 하교시간에 맞춰 집 앞에서 기다리면, "어떻게 내가 오는 줄 알았냐" 하면서 아이같이 좋아하신다.


얼마 전까지 차에서 내릴 때마다 차비라면서 만원을 요양 보호사에게 주셨는데, 이미 수업료와 식비 그리고 교통비까지 모두 지불했다고 수없이 말씀드린 때문인지 요즘 그런 일이 없어 다행이다.


귀가하자마자 모친은 하루 종일 케어센터에서 지낸 것이 답답했는지 소파에 기대앉아 가까운 친척들에게 안부 전화하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눈이 침침해 잘 안 보이는 모친을 대신해 먼저 2살 아래 고모에게 연결하면 금방 10 여분이 지나가지만, 대화 내용은 어제, 그제와 별반 다르지 않다.


그리고 가끔 센터에서 보내온 밴드 사진을 보여 드리면, "언제 네가 와서 찍었냐?  사진을 보니 오늘 무엇을 했는지 쪼끔 기억이 나네! " 신기해하면서 즐거워하신다.


요즘 모친이 97세되신 백부모를 얘기하실 때는 "백세가 불연 하시지!"  또 생각이 잘 안날 때는 '생가 망가'라는 세상에 없는 신조어를 만들어 쓰시는데 다음에는 무슨 단어가 새롭게 나올지 궁금하다.


또한 기력이 없을 때는 "조상이 날 부르는 것 같다. 죽을 때가 되었나 보다"라고 하시는데, 그때마다 나는 "잘 주무시고, 혼자서 식사도 잘하신다. 또 10살이나 위인 큰아버지도 아직 정정하신데 무슨 얘기를 하시는 거냐?" 고 눈을 흘기면 "그럼 언제까지 살 수 있겠냐?"라고 되물으신다.


그러면서 "젊음은 돈으로도 바꿀 수 없다. 힘들었지만, 바쁘게 살았던 그 시절이 좋았다. 네 덕분에 좋은 집에서 맛있는 것 먹고, 노인학교도 다닐 수 있어 고맙구나" 하면서 엄지척을 하면 나도 엄지를 맞대며 "우리 엄마! 최고!"라고 소리친다.


얼마 전에 데이케어센터에서 모친이 머리가 아프다고 하셔서 혈압을 체크하니 190을 넘어 중간에 병원에 간 적이 몇 차례 있었다.


집에서 쉬는 동안에도 혈압계로는 측정이 불가하여 혈압강하제를 급히 쓴 적이 있어 별별 생각이 다 들었지만, 그 후에 혈압약을 재처방받아 요즘 그런 일이 없어 다행이다.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나이를 물어, 엊그제 떡국을 먹다가  "그릇수를 세어보니, 드디어 엄마가 100살이 되셨네!  와! 대단해요. 축하드립니다!"라고 하니 껄껄 웃으셨다.


아무튼 100세까지 건강하게 사셨으면 좋겠다.


봄이 왔다.


그동안 가물어 걱정했는데 어제는 단비가 내렸고, 오늘은 다소 바람이 불었지만 하늘이 맑아 모처럼 친구와 올림픽공원을 산책했다.


거동이 불편한 모친이 주중에는 센터에서, 주말에는 집에서 답답하게 지내는데 날씨가 따뜻해지면 모시고 밖에 나가야겠다.


그러면 밝은 옷을 즐겨 입는 모친이 "나도 여자니까 화장해야지!"  "너무 이쁘면 어떡하냐! 할아버지들이 따라오면!"


봄이 오면 이런 얘기들이 나오지 않을까!  생각만 해도 웃음이 나온다.


글쓴이, 서치펌 싱크탱크 대표 이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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