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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규선 Mar 25. 2022

코로나 기생충 가족

결국 모친과 내가 코로나 확진자가 되었다.


국민 1/5이 걸렸다고 하는데, 내가 창피하게도 그 천만명 달성에 일조하며 악역이 된 것이다.


남에게 피해 주지 않고, 배려하며 살려고 항상 조심했는데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 때문에 주변 사람들에게 불편을 초래한 셈이 되었다.


모친이 지난 주말부터 목이 쉬었고, 체온도 37.5도로 올라 신속항원검사를 하니 양성이었다.


지난 일요일 나는 종친회의 가장 큰 행사인 총회가 있어 가뜩이나 전염될까 식사도 상품권으로 대체하며 노심초사했고, 혹시나 해서 집에 돌아와 신속항원검사를 하니 다행히 음성이었다.


월요일 모친을 모시고 송파보건소에 가서 PCR 검사를 했는데, 화요일 아침에 모친은 양성, 나는 또 음성 판정이 나왔다.  


나는 두 번씩이나 음성으로 확인되었지만, 치매에 비만, 고혈압 등 기저질환이 있는 모친이 확진되어 온 집안에 비상이 걸렸다.


자가 격리하며, 수시로 소독하고 식사도 따로 했다. 그러던 내가 살짝 몸살이 났지만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오후에 비어있는 마포 모친 집에 갔다가 돌아오니 체온이 38도를 훌쩍 넘었다.


오!  마이 갓!


단순한 독감이 아닌 것 같았다. 오늘 아침 일어나자마자 신속항원검사를 하니 얕게 두줄이 나온 양성이라, 쏜살같이 달려가 송파보건소에 도착했고, 9시 10분에 PCR 검사를 받았다.


모친은 정부에서 제공하는 처방약이 이틀째 도착하지 않아 집에 있는 감기약을 드셨는데 며칠 새 나아졌고, 워낙 건강체질이라 그런지 아직 체온이 정상이고, 아픈 곳도 없다고 하셔서 천만다행이었다.


나와 모친이 코로나에 확진되었다는 것을 단체 카톡에 올렸더니, 얼마 전에 발목이 부러져 깁스를 하고 있는 남동생에게서 문자가 왔다.


"엊그제 엄마와 통화할 때 목소리가 심하게 쉬었고, 노인학교도 안 가셔서 내심 갸우뚱했었어.  최근에 형이 최근 너무 바빴고, 이참에 형과 엄마가 좀 쉬어가시라는 뜻 같아. 무사히 잘 견뎌주시길 진심으로 빌께! ♡♡♡   1주 격리는 너무 쉬워!  난 6주 차 격리 중인데 뭐. 이중위 님! 필승!!!"


또 다른 친구는 "Oh  boy!  나도 일주일 이상 기침 나기에 검사는 안 하고, 약국 약 먹고 버텼더니 이제 괜찮네. 오미크론이 왔다 갔는지는 모르겠지만. 부탁이다!  제발 모두 건강해라^^ "


이틀 먼저 확진자가 되신 모친은 목소리 외에 겉으로 보기에 건강하신데, 나는 몸살, 기침, 가래가 있어 친구가 얘기한 테라플루와 타이레놀을 먹으며 버티고 있다.


그런데 어떻게 코로나에 확진되었을까!  


지난 주말 모친과 외식할 때, 넓은 자리를 놔두고 하필 햇빛이 내리쬐는 우리 옆에 와서 앉았던 젊은 부부 때문이었을까!  노인학교에서 환자가 많이 발생해 지난 금요일 하루 쉬었는데, 마스크를 쓰면 몇 분도 안돼 코 밑으로 내려간 줄 모르는 모친 때문이 아니었을까! 나는 최근에 모임이 없었고, 혼자 다녔으며, 사람 많은 종친회 때도 조심하며 주먹 인사를 했는데...


아무튼 누구 때문이었든, 요 며칠 모친께 식사를 따로 드렸는데 지금부터는 우리 가족 모두 각개전투, 각자도생이다.


아내는 안방, 내가 건넌방, 아들은 공부방, 그리고 밤에 수차례 화장실을 가시는 모친은 바로 옆에 붙은 문간방에서 근신해야 한다. 단, 하루 종일 TV를 보시는 모친을 위해 거실은 덤이다.


먼저 점심을 어떻게 해결할까 고민했는데, 눈치가 빠르고 정이 많은 여동생이 카톡을 보내왔다.


"아래 국 종류들도 '선물하기' 보냈어요. 솜씨야 언니 맛이 일품이지만 때가 때이니 만큼 아쉬운 대로 일용할 양식으로 드시길 바라요."


동생 덕분에, 우리 가족은 가볍게 두 끼를 해결했다.


지금부터 두문불출인데 1주일간 무슨 재미로 사나!  오케이!  밤 9시면 주무시는 모친의 빈자리에서 넷플릭스를 보면서 기생충 노릇이나 해야겠다.


글쓴이. 서치펌 싱크탱크 대표 이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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