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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사과 Jul 31. 2020

달과 같은 사람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어린 시절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에 대한 질문으로 가득했다. 장래희망이 무엇인지, 간직하고 있는 꿈은 있는지, 20년 후에 그리는 나의 모습은 어떠한지, 그러한 질문들을 받으며 자랐다. 누군가 나에게 묻던 그 질문들은 이제 내가 스스로에게 묻는 질문이 되었다. 이젠 아무도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물어보지 않는다. 어떤 대학에 가고 싶은지, 어떤 회사에 취직하고 싶은지, 어떤 사람과 결혼을 하고 싶은지, 그러한 질문을 하는 사람은 있지만, 그것은 내가 살아가며 결정하고 해결해야 하는 수많은 것들 중 하나일 뿐이다. 따라서 나는 나에게 묻는다. 대체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미래의 모습이 아니라 현재를 살아가는 나 자신의 모습을 어떻게 그려가고 싶은가? 상투적이고도 진부한 대답일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달(月)과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사람들은 달이 빛난다고 말한다. 끝도 보이지 않는 넓은 하늘 한편에서 조그맣게 자리잡고 있을 뿐인데도 말이다. 낮에는 보이지 않을 뿐더러 가끔 보인다해도 하얗게 질려있을 뿐인데도 말이다. 하지만 밤이 되어 어두워지면 어두워질수록 달은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낸다. 언제나 늘 그렇듯 당연하게. 나는 그런 달과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언젠가 친구가 해준 말이 있다. 그 친구의 말에 따르면 하늘을 자주 보면 행복해진다고 한다. 정말 하늘을 보는 것이 과학적으로 효과가 있는지 없는지 모르지만, 그 말에 이끌려 의도적으로 자주 올려다보곤 했다. "하늘을 보니 인생이 달라졌어요!"라는 거창한 말은 할 수 없다. 다만 그동안 많은 것들에 짓눌려 보지 못했던 것을 볼 수 있게 되었다. 핸드폰만 보며 걸어가던 등굣길에 드높게 떠있는 뭉게구름을 보았다. 건물 숲에 가려진 하늘 한 조각에 무리 지어 날아가는 새들을 보았다. 무지갯빛의 구름도 보았으며, 오렌지빛의 노을도 보았다. 그동안 하늘을 그리라고 하면 파란색 색연필을 집었지만, 오렌지빛 하늘, 보랏빛 하늘, 핑크빛 하늘, 하늘이 품은 많은 빛깔을 알게되었다. 고개를 떨구고 걸었던 길에선 보지 못했던 것들을 두 눈 가득 담을 수 있었다. 그중에서도 밤하늘이 참 좋았다. 무더운 날씨에 시작했던 저녁 산책을 할 때 나날이 바뀌어가는 달을 보는 것이 꽤 즐거웠다. 어떤 날은 구름에 가려 달이 보이지 않아 아쉬운 날도 있었고, 어떤 날은 평소보다 가까워 보이는 보름달에 놀라 사진을 찍기도 했다. 언제나 떠있는 달을 주의 깊게 살펴보거나 신기해하는 사람들은 없었지만, 어둠 속에서 매 순간 다른 곳, 다른 모습으로 빛나고 있는 하나의 달이 참 예쁘고 마음을 따뜻하게 해 주었다.


 살다 보면 힘든 일도, 슬픈 일도, 지치는 일도 많다. 생각대로 되지 않는 것이 세상이라는 사실은 예고 없이 현실로 느껴지곤 한다. 항상 마음이 행복과 기쁨과 같은 좋은 것들로 반짝거릴 수는 없다. 그리고 생각에 먹구름이 떠오르기 시작하면 한없이 우울해지기 마련이다. 그런 상황에서 꿋꿋이 빛나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래, 나의 세상이 검게 물들어도 언제나 그렇듯 나의 자리에서 나의 빛을 내리." 이런 당찬 외침을 간직한 사람이 되고 싶다. 밤이 찾아와 나의 힘으로 온 마음을 환하게 할 수 없다고 해도 상관없다. 시간이 지나 낮이 찾아오면 마음껏 행복을 즐기면 된다. 지금의 아픈 감정이 흐릿해지는 때는 분명 온다. 그 날이 올 때까지 앞으로 나아가며, 때로는 잠시 쉬어가며, 새로운 풍경을 맘 속 가득 담아가면 된다. 아주 작은 빛일 뿐이라 나의 세상을 가득 채울 수 없다고 해도 나는 그렇게 반짝이는 사람이 될 수 있다. 가끔은 그림자에 가려 초승달이 되어도 열심히 지구를 한 바퀴씩 돌다 보면 언제가 차올라 보름달이 될 것이라는 것을 잊지 않는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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