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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골집의 한선생 Sep 16. 2020

더 이상은 무리야.

코로나가 나를 땅 주인으로 이끌었다.

창문도 있고 문도 열리는데,

나의 삶은 코로나가 보이지 않는 감옥으로 이끌었다.


거실도 있고 방도 있는데

아이들은 계속 거실에서 5분 단위로 놀아달라고 한다.

이미 놀아 줄 수 있는 것은 내가 아는 것은 다 놀았다.

심지어 공부도 다 시켰다.


평소 아이들이 보던 TV 시청 시간은 두배 이상 늘어났다.

길어야 1~2 달이겠지 생각하던 코로나 집 콕 생활은

언제 시작한 건지 

언제 끝날지도 모르겠다.


오늘이 무슨 요일인지 내가 뭘 하고 사는 것인지.

마스크를 쓰면 산소가 부족해지는 걸까?

생각이 점점 단순해지고 있었다.


분명 나는 아이들에게 밥을 해 주는 것을 좋아했는데

점점 요리도 힘들고

반대로 시켜먹을 수 있는 밥도 시킬 대로 시켜서

배달음식도 싫다.


식욕이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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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시간 나면 놀러 와!"

여기 살면 백 년도 살겠다며 아빠가 웃던 생각이 들었다.

그래, 아빠 집이나 가야겠다.


아빠는 코로나 직전 상황도 모르고 시골집 생활을 시작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2시간 거리에 있는

충북 괴산, 경북 문경 그 어디쯤에 있는 아빠 시골집에 갔다.


아이들이, 그리고 나와 남편이

말라비틀어진 스킨답서스에 물을 주었을 때처럼

생기가 돌아왔다.


근처에 인가가 없어서 마스크를 벗고 아이들이 우리 개와 달리기 시작했다.

5분 알람같이 나를 찾던 아이들이

1시간에 한 번도 나를 찾지 않고 놀기 시작했다.

집에 돌아온 아이들은

'아이들'이 되어있었다.

나도 텃밭에서 일을 하고 밥을 했다.

아빠 집 앞에 작은 계곡에서 다슬기를 잡아 아욱국을 만들었다.

분명 별것 없는 찬인데, 그동안 먹은 그 어떤 밥 보다 맛있었다.


덤불로 길이 막혀서 아무도 모르는 아빠 집 앞 계곡

아침에 도착해서 잠이 들 때 즈음

우리 가족은 '사람'이 되어있었다.

그날 밤.

남편과 나는 결심했다.


더 이상은 이렇게 못 살겠다.

우리도 이런 집이 있어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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