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하고자 하는 개인 변화하지 못하게 하는 조직
콘텐츠 프로덕션에 4년간 기획으로 일해오며 이런 저런 성격의 프로덕션을 겪고, 보고, 들었다.
대부분의 창작 업계에서 비슷한 니즈를 가지고 있다 생각하는데, 바이럴이나 사기업 영상보다는 나라사업을 따내고 싶어 하고, 공기관 영상을 제작하고 싶어 한다. (특히 홍보영상이나 유튜브)
그 이유는 첫째, 속된 말로 간지나는 포트폴리오가 되기 때문이다. 누구나 아는 대기업 광고가 아니면(안 알려진 중견기업도 많다만) 사기업 포트폴리오를 한 눈에 알아주긴 어려울 수 있다. 이건 지인들에게 으스대기용도 되겠지만 무엇보다 회사를 영업하기가 조금 더 쉬워진다. ('지난번에 정부 **부처랑 프로젝트했습니다.' '오오')
둘째, 예산이 비교적 크다. 정부의 사업 예산은 정해져있고 대부분 이미 배정된 홍보마케팅 사업비에서 굳이 아껴쓰려 하지 않는다. 배당된 예산을 그냥 그대로 써도 된다는 건 큰 장점이다. 사기업 프로젝트에선 담당자가 웬만하면 예산을 철저히 깎으려 할 뿐더러, 견적서 항목별 조목조목 점검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예산이 커보였는데 프로젝트도 커서 남는 게 없을 수도 있다는 반전이 존재하기도 한다.)
셋째, 어차피 한 번은 뚫어야 하기 때문이다. 공공기관에선 공공기관 프로젝트 경험이 있는 프로덕션을 찾는다. 비수기에 언제까지고 사기업 오더를 기다리고 있을 수 없기 때문에 틈틈이 나라사업 프로젝트를 도전해야 한다.
그러면 이렇게 어렵게 뚫어서 만난 공공기관들은 어땠을까? 사람 사는거 다 거기서 거기라고..
대부분 유튜브에 올라가는 콘텐츠는 트렌디함을 원한다. 무조건. 하지만 그게 가능했다면 모두가 충주시가 되지 않겠는가. 모두가 바뀌고자 하지만 그걸 못하게 만드는 조직이 있다. 담당 주무관이 상사에게 업무 하달을 받아 트렌디한 프로젝트를 해보고자 해도, 결국 기획안에서 다시 공공기관스러운 콘텐츠로 유턴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Q. 그래도 트렌디하게 운영되는 정부 채널 많은데
A. 예 다 그렇진 않습니다.
또한 채널이 너무 분산되어있다. 같은 부처 소속이어도 산하기관마다 채널이 만들어지고, 산하 기관에서 또 해당 사업마다 채널이 쪼개진다. 그러면 해당 영상 콘텐츠에 대한 화력이 분산되고 광고로 활용하기도 애매해진다.
또한 정부사업은 온 국민을 포괄한다. 대한민국을 이루는 다양한 국민들을 위한 정부정책을 설명하는 유튜브에서 젊은이들의 전유물같은 뉴미디어의 콘텐츠의 트렌디함을 흉내내고자 하니 떼깔좋게 나와도 효용이 없는 경우가 있다.
그동안 공공기관 프로젝트를 해오며 종종 현타가 왔다. 간지나는 포트폴리오를 얻었을지언정, 과연 그 사업에 해당하는 국민들에게 그 콘텐츠가 도달이 되었을까? 그냥 예산만 소진하고 끝난 프로젝트가 된건 아닐까? 전하고자 하는 내용이 정확하게 전달이 됐을까? 제작된 콘텐츠가 해당 기관의 미디어커뮤니케이션에 기여가 됐을까?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서 공공기관은 왜 유튜브를 하고자 할까? 어떠한 기관에 구독자와 조회수를 늘리며 영향력 있는 채널로 키우기란 쉽지 않다. (나만 해도 굳이 구독해가며 보고 싶진 않다.) 당연히 정보전달이 목적이겠지만 각 사업의 정보는 기관의 블로그, sns, 다양한 사이트 광고, 인플루언서 매거진 등에 홍보마케팅이 된다. 굳이굳이 '유튜브 채널'에 영상만이 할 수 있는 대한민국의 공공기관스러움이 있을 것이다.
꼭 MZ에게 익숙한 뉴미디어 콘텐츠 형식을 따라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공공기관 유튜브 채널은 중장년층에게도 소구되어야 하기 때문에 오히려 정석적인 방송 콘텐츠 형식을 차용하는 것도 방법이 될 것이다.
또한..좋아요, 댓글, 조회수 등이 실적체크가 되는 건 알지만 그로 인해 본래의 목적을 잃은 콘텐츠가 양산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그리고 유튜브의 장점은 무엇보다 전세계인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미디어 플랫폼이라는 것인데, 대한민국 국민만을 타겟으로 한 콘텐츠만 만들어질 이유는 없다. 대사가 많지 않더라도 대한민국의 이미지와 문화를 보여주는 콘텐츠를 충분히 만들 수 있다.
갑자기 오늘 미팅하고 여러 생각이 들어서 주절주절 적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