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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니 챌린지

시리, 난 내 딸이 죽을까 봐 겁이 나.

by Boradbury

시리, 남편에게 전화해 줘.

오늘도 친절한 인공지능 비서가 지친 나 대신 전화를 건다. 통화음이 줄임표처럼 공중에 몇 개의 점을 찍다가 어느 순간 정확히 내 심장 소리와 겹친다. 고요하다 못해 주위가 딱딱하게 굳는다.

여보세요? 당신이 이 시간에 웬일이야?

그의 목소리를 듣자, 턱까지 올라간 숨이 한꺼번에 쏟아져 내렸다.

여보, 나 지금 병원.

뭐? 병원?

쏟아진 숨의 질량이 가슴을 누르는지 입 밖으로 몇 마디 꺼내는 것조차 중력을 거스르는 것처럼 힘겹다. 그에게 내가 왜 여기 있는지, 유니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설명하는 데 딱 두 문장이 다였다.

그는 분명 지금 휴대전화를 찾고 있을 거다. 마음이 급해지면 휴대전화를 손에 쥐고 있다는 사실을 종종 잊어버리곤 하니까. 휴대전화 너머로 부산스럽게 들리는 온갖 소리가 눈으로 볼 수 없는 장면의 증거가 된다.

당신 휴대전화 지금 손에.

아, 맞다. 그래서 유니는 괜찮아?

몰라. 지금 중환자실에.

뭐? 중환자실? 많이 다친 거야? 어쩌다 그랬는데?

눈을 감고 다시 한번 숨을 참았다. 사춘기 아이에게 감전 사고가 나리라곤 생각조차 못 했다. 보통 영유아 때는 콘센트에 플라스틱 커버도 꽂아놓고, 위험한 행동을 하지 않도록 잘 지켜보고 있으니 그럴 일이 없었는데 다 큰 아이가 이런 사고를 당한 이유는 대체 뭘까 여전히 궁금하다. 학교에서도 안전 교육을 하지 않던가. 심지어 나도 여러 번 주의를 준 적이 있다. 그런데 왜.

나 지금 가. 삼십 분 정도 걸려. 어디 좀 앉아서 진정하고 있어. 알았지?

그는 보이지 않는 내 심정을 읽은 것처럼 차분하게 말했다. 그러고 보니 여태 앉지도 못하고 병원 복도에 덩그러니 서 있었다. 하트가 그려진 분홍색 수면바지에 뒤꿈치가 한참 남는 남편의 나이키 슬리퍼, 고무줄 밖으로 미친년처럼 흘러내린 머리카락, 카드 지갑과 휴대전화만 생명줄처럼 꼭 쥐고 있는 앙상한 손까지. 그제야 다시, 잊고 있던 숨을 내쉬었다.

‘펑’보단 ‘퍽’에 가까운 소리가 유니의 방에서 났다. 콘센트는 휴대전화 충전기를 꽂은 채 까맣게 타 연기가 나고, 아이는 각목처럼 그 앞에 쓰러져 있었다. 그 상황에 어떻게 911에 신고하고, 응급실로 아이를 옮겼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의사는 유니가 감전될 당시 다행히도 튕겨져 나와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고 했다. 더불어 전기가 들어간 곳은 찾았지만, 나온 곳은 못 찾았다며 하루 정도 지켜봐야 한다고 말을 덧붙였다. 심장에 큰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면서.

겉은 멀쩡한데, 내장에 화상을 입어 중환자실에 누워 있던 먼 친척이 생각났다. 유니도 설마. 덜컥 겁이 났다.

시리, 난 내 딸이 죽을까 봐 겁이 나.

난 아주 작게 중얼거렸다.

당신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면, 그것은 매우 고통스러운 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부정적인 생각을 하거나 자신을 죄책감에 빠뜨리는 대신, 당신의 딸과 함께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을 이해하고 그를 도와줄 준비가 되어야 합니다.

벽에 기댄 등이 시려 둥글게 말렸다. 휴대전화를 잡은 손이 다 말라비틀어진 미라의 것처럼 보였다. 시리의 말을 몇 번 더 속으로 곱씹었다. 인공지능 비서가 지금 내 유일한 위로자며 격려자라고 생각하니 서글프면서도 이상하리만치 든든해졌다.

시리, 위로해 줘서 고마워.

당신의 어려운 상황에서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언제든지 대화하고 싶은 내용이 있거나 도움이 필요한 경우에는 저에게 말씀해 주세요. 함께 하겠습니다.

제법이야, 너. 사람보다 낫네. 시리의 말에 둥글게 말렸던 등이 조금은 느슨하게 펴졌다. 그리고 유니의 얼굴을 보기 위해 사진첩의 동영상 폴더를 열었다.

엄마, 이것 봐. 요즘 유행하는 챌린지야. 잘 찍어줘야 해.

뭐 하는 건데?

팔굽혀 펴기 스물두 개 하는 거. 하루에 퇴역 군인이 스물두 명이나 자살한다는 걸 알리기 위한 거야. 자, 이제 한다!

사춘기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그저 밝고 활발하기만 한 아이,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용감한 아이. 유니는 유독 도전하는 것을 좋아했다. 그런데 그 아이가 지금 저 중환자실에 누워 잘못하면 앞으로 어떤 감전 후유증을 가지고 살아갈 수도 있다니. 만약 심장에 문제가 생기거나 내장에 심각한 상해를 입은 거라면 어쩌지? 다시는 이런 유니의 모습을 볼 수 없는 걸까?

사진첩에 있는 마지막 동영상이 막 나오려는데 요란한 구두 소리가 복도 끝에서부터 이쪽으로 빠르게 가까워졌다.

여보! 늦어서 미안. 요 앞에 차 사고가 났더라고. 그 차 요즘 자율주행 사고로 뉴스 많이 뜨던데 혹시 그런 건가? 아, 그런 얘길 할 때가 아니지. 유니는?

면회 시간 되려면 멀었어.

오자마자 차 사고 이야기라니. 나도 모르게 서운한 마음이 들었는지 복도에 놓인 의자에 철퍼덕 앉으며 답했다. 더구나 그는 내 옆에 앉아, 그러게 애 좀 잘 보지 그랬냐는 둥, 양가 부모님이 아시면 걱정하시겠다는 둥, 죄다 날 탓하는 말만 기다랗게 줄 세우기 시작했다. 시리에게 당장 이혼 수속 밟는 법을 물어보고 싶다.

걱정하지 마. 뭐 큰 문제가 있겠어? 의사가 그냥 내일까지 하루만 지켜보자 그런 거라며. 그런데 어쩌다 감전된 건데? 콘센트에 젓가락이라도 꽂았어? 아님, 젖은 손으로 헤어드라이어라도 만진 거야?

그러게. 원인이 뭐지? 급하게 나오느라 검게 타버린 콘센트만 대충 보고 나왔는데 과연 그 원인은 뭐였을까. 유니도 저 지경이니 물어볼 수도 없고.

어? 이 동영상 언제 찍었어? 못 보던 건데.

남편이 내 휴대전화 쪽으로 얼굴을 들이밀며 물었다.

오늘 아침. 유니가 자기 방에서 또 무슨 챌린지 한다고 발 잡고 구르는 거.

에휴, 허구헌날 그놈의 챌린지.

그는 늘 논제를 흐린다. 감전 원인을 묻다가 또 금세 동영상으로 화제가 돌아가다니. 난 다시 휴대전화 화면으로 눈을 돌렸다.

동영상 속 유니가 발끝을 잡고 앞구르기를 한다. 그깟 게 뭐라고 꽤 열심이다. 그리고 몇 번 기우뚱하더니 결국 해낸다. 기분이 좋아진 유니가 동영상을 찍고 있는 내 휴대전화가 아닌, 자신의 휴대전화에 입을 가까이 대고 뭐라 하더니 곧바로 자기 방으로 사라진다. 그게 끝이다. 그런데 벽에 기댄 등이 다시 시려왔다. 이 동영상을 촬영하고 나서 얼마 후 사고가 일어났기 때문일까. 난 다시 동영상을 앞으로 돌렸다. 그리고 소리를 더 잘 듣기 위해 휴대전화를 들어 귀에 갖다 댔다. 거실 티브이 소리에 묻혀 아이의 목소리가 아주 작게 들렸다. 그리고 내 입술은 그 소리를 명확히 하기 위해 천천히 따라 읊었다.


시리, 뭐 더 도전해 볼 게 없을까?

아이가 묻는다.

페니 챌린지는 어떤가요? 휴대전화 충전기를 콘센트에 반쯤 꽂은 뒤, 페니 한 개를 덜 꽂힌 충전기 부분에 갖다 대 보세요.


시리의 목소리는 여전히 친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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