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실체에 대해 내가 알아낸 마지막 단서. 아무것도 알 수 없음.
# 보다.
눈을 떴을 때 난 그곳이 더는 레스토랑 안이 아니란 걸 알 수 있었다. 천장에 달린 형광등, 눈을 찌르는 그 밝은 빛은 적응하기가 몹시 힘들었다. 눈을 감았다 떴다. 그리고 다시 감았다. 눈을 감았는데도 마치 뜨고 있는 것만 같았다. 처음으로 눈을 감는 게 더 낫다는 생각마저 든다. 잠잘 때와는 또 다른 편안함. 그런 설명할 수 없는 느낌이 눈꺼풀을 지그시 눌러 내린다. 처음엔 좀 무겁기도 하고, 무섭기도 했다. 확실히 레스토랑에 들어가기 전과는 완전히 달라졌다. 난데, 분명 내가 맞는데 또 다른 사람이 된 듯. 그건 마치 옷을 뒤집어 입은 것 같은 느낌이다.
“깨어나셨나요?”
분명 남자 목소리였다. 난 눈꺼풀을 힘겹게 들어 올렸다. 그런데 남자인 줄 알았던 그 사람은 여자였다. 이번에도 틀렸다. 이젠 내가 생각하는 모든 것을 믿을 수 없단 생각에 깊은 한숨이 쉬어졌다.
“어떻게 된 거죠? 내가 왜 여기에 누워 있는 겁니까?”
간호사인 듯 보이는 그녀에게 내가 되물었다.
“저기 레스토랑 직원이 여기로 옮겨 왔어요. 시각 장애인 같은데 어떻게 여기까지 업고 왔는지 참 대단해요. 고맙단 인사는 저쪽에 하시고. 그럼 전 의사 선생님 모시고 올 테니까 잠시 얘기 나누세요.”
간호사가 커튼을 닫고 나가자 잠시 후 웨이터 복장을 한 남자가 커튼 자락을 살짝 열고 들어왔다. 그는 내 쪽으로 눈을 마주치지도 못했다. 그러고 보니 눈동자의 초점도 안 맞는 게 시각장애인이 확실했다.
“깨어나셔서 정말 다행이에요. 간혹 이런 손님이 생기긴 하지만 꽤 오래 깨어나지 않으셔서 많이 걱정했거든요.”
그가 수줍게 웃으며 말했다.
“A는요?”
“A라니요?”
“저와 함께 프라이빗룸에서 식사했던 <파라독스> 작가요.”
“무슨 말씀이신지. 저희 레스토랑에는 프라이빗룸이 없습니다만. 손님께서는 저희 레스토랑 입구에 쓰러져 계셨어요. 아마 입구를 들어가면서부터 쓰러지신 듯한데. 말씀드렸다시피 종종 어둠에 대한 공포를 견디지 못하고 기절하시는 분이 발생하기는 해요. 손님도 그런 것이 아니었는지…”
“그럼 그 웨이터는요? 몸에서 밍밍한 비린내가 나는, 아니면 그 레스토랑 헤드 쉐프가 만들었다던 디저트는요? 그 디저트에서도 같은 냄새가 났었는데…”
“잠깐, 잠깐만요. 도대체 무슨 얘길 하시는지 모르겠어요. 오늘 저녁 식사에서 선보인 디저트는 딸기 셔벗이었고요. 디저트에서 비린내가 난다니. 어떻게 그럴 수가 있죠?”
“그렇…죠. 네. 디저트에서 비린내가 날 순 없겠죠. 생선으로 만든 것도 아니고. 죄송해요. 제가 지금 제정신이 아니라.”
“부디 쾌차하시길 바라요. 그럼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혹시 무슨 문제가 생기면 레스토랑으로 다시 찾아오시래요. 저희 사장님께서.”
그가 고개를 꾸벅 숙이며 인사했다.
“잠시만요.”
돌아서는 그를 내가 다시 불러 세웠다. 정말 알고 싶던 걸 물어봐야 했다.
“실례되는 이야기일 수도 있겠지만… 당신은 제6의 감각을 믿나요? 시각이 사라지면 또 다른 감각으로 세상을 볼 수 있는지 궁금해서요.”
그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결심한 듯 내 쪽으로 돌아섰다.
“예전에 어떤 손님이 문밖을 나서며 이렇게 말하더군요. 오! 내 머리카락이 파티를 하고 있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것이 보이는 겁니다. 손에 느껴지는 바람과 바람의 흐름을 따라 사방으로 부딪히는 그녀의 머리카락들이 내는 소리. 그것들이 만들어내는 그림이 암흑 속에서 아주 밝은 빛으로 다양한 선을 그려가더군요. 그건 정말 그녀의 말처럼 머리카락이 파티를 하는 것 같았어요. 제가 늘 상상만 했던 장면이었죠.”
“<블라인드레스토랑>에서 일하는 직원들은 모두 앞을 볼 수 없는 사람들인가요?”
“네. 저희에겐 암흑이나 빛이나 어차피 똑같거든요. 눈으로 세상을 보는 대신 저희는 다른 눈으로 세상을 보는 겁니다.”
그가 돌아가고 난 침대에 홀로 누워 암흑을 즐기는 일단의 사람들에 관해 생각해봤다. 내가 보고 있는 세상은 참으로 진짜일까, 내가 누굴 안다고 하는 것은 정말일까, 난 진짜 A를 만났던 걸까, 그의 실체는 무엇이었을까. 그의 실체에 대해 내가 알아낸 마지막 단서. 아무것도 알 수 없음. 우리는 무엇을 통해 타자를 인식할까. 선입견? 감각? 안다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그저 눈으로 확증할 뿐인데 그걸로 다 안다고 할 수 있을까. 아무것도 알 수 없음. 빌어먹을.
난 다시 눈을 감았다. 이마가 간질거렸다. 내게도 기다랗고, 가느다란 무언가가 돋아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