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거 아세요? 호박벌이 물고기인 거.
아리나, 이번 주까지 숙제를 내지 않으면 점수를 받을 수 없어. 알겠니?
아이의 눈동자에선 아무것도 읽을 수 없었다. 깊이를 알 수 없는 우물처럼 뻥 뚫려 있는, 확답할 수 없는 그 눈동자가 내게 반문했다.
모르겠어요. 당신이 하는 말도, 내가 무얼 해야 하는지도. 난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 거죠?
아이는 내게서 점점 멀어져 자신과 비슷한 얼굴을 한 아이들 속으로 사라졌다. 익숙하지 않은 언어의 수군거림이 공기 중에 퍼져간다. 그들의 언어는 네모와 동그라미가 섞여있다. 각진 것 같으면서도 둥글게 굴러가는 발음이 있어서다.
선생님 반 아이들이군요? 어때요, 힘들진 않아요?
이번 학기에 함께 채용된 에이미가 초컬릿 하나를 내밀며 말을 걸었다.
뭐, 애들은 착한데, 지금껏 제대로 된 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어서 그런지... 영어가 문제가 아니라,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 동기 부여 주는 것서부터 일이네요.
아무래도 좀 그렇죠? 저희 반도 그래요. 교육청에서 내린 조치니 하긴 하는데 매일 회의라니. 좀 지치기도 하고.
에이미는 어깨를 한 뼘이나 축 늘어뜨리며 에너지를 충전하려는 듯 초컬릿을 세 개나 입에 쑤셔 넣었다.
아리나와 아이들은 한 아파트에 산다. 비슷한 시기에 학교 부근, 한 교회에서 난민 사역을 통해 이곳으로 왔다. 전쟁의 위협 속에선 구출됐지만, 그들은 여전히 뻥 뚫린 눈동자로 세상을 바라본다. 무엇 하나 익숙한 게 없으니 불안은 바닥에 붙어 낮게 비행한다. 자기 몸보다 작은 날개로 날아다니는 호박벌처럼.
그래, 그러고 보니 닮았네.
에이미는 이에 낀 초컬릿을 혀로 긁어내느라 내 말을 듣지 못했다.
호박벌은 다른 동물들이 파 놓은 땅굴에 집을 짓는다. 마치 고향을 떠나 다른 나라에 터전을 잡은 그들처럼 어떻게든 고개를 쳐박고 살 공간을 확보한다. 다른 이들의 체취가 거슬리더라도 그 방법을 택하는 건 쉬워서가 아니라, 그럴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초컬릿은 어때요? 학급 규칙에 잘 따르거나 숙제를 잘 해 오면 초컬릿으로 보상해 주는 거죠.
에이미의 아이디어였다. 어떤 교사는 킨더 애들도 아닌데 초컬릿 같은 게 효과가 있겠냐, 회의적이기도 했지만 대부분 좋은 의견이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일부러 아이들이 잘 볼 수 있게 투명한 하늘색 통을 선택했다. 그리고 그 안에 알록달록한 호일로 싸여진 초컬릿을 꽉 채워 넣었다. 이제 이것이 아이들의 시선을 끌 수 있도록 책상 위에 올려두기만 하면 된다.
누가 이걸 읽어볼까? 잘 읽은 학생에겐 초컬릿을 줄 거야.
처음이었다. 아리나의 텅 빈 눈동자가 무언가로 가득 차 보인 건. 짙은 갈색 눈동자 안에 비친 건 다름 아닌 알록달록한 초컬릿들이었다. 몇 명의 호기심 넘치는 남자 아이들이 먼저 손을 들고 도전했다. 그리고 초컬릿을 받아갔다. 그 다음엔 더 많은 아이가 손을 들었다. 정확한 발음은 아니었지만, 초컬릿 한 개를 받으려고 모두 눈을 반짝이며 노력했다.
아리나는 선뜻 손을 들지 못했다. 그녀의 눈동자에 아른거리는 초컬릿이 분명 마음을 움직였지만 행동으로 옮기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가늘고 하얀 손가락이 몇 차례나 펼쳐졌다 오무렸다, 를 반복하다가 드디어 아리나가 어깨까지 손을 들어 올렸다.
그래, 아리나. 이번엔 네가 읽어볼래?
달콤한 꿀에 이끌려 꽃 속에 고개를 파묻은 호박벌의 얼굴을 볼 수 있다면, 바로 이런 얼굴이지 않을까. 아리나는 겨우 받은 초컬릿의 오렌지색 껍질을 벗겨내고 얼른 입안에 집어 넣었다. 달콤함이 그녀의 볼에 붉게 묻었다. 손과 발에서 도파민이 팡팡 터졌다.
하나 더(One More).
수업을 마치고 나오는데 아리나가 날 따라나오며 서툰 영어로 작게 말했다. 혹시 다른 아이들이 볼까 주변을 둘러봤다. 교육에서 형평성은 매우 중요하니까. 다른 아이들이 없는 걸 확인하고 나서야 난 허리를 살짝 숙여 아리나에게 속삭였다.
원래는 안 되는 거지만, 앞으로 더 열심히 하란 뜻으로 주는 거야.
내 말의 정확한 뜻을 아리나가 알아 들었을까. 초컬릿을 받자마자 연두색 껍질을 까서 잽싸게 입안에 넣은 그녀의 눈동자엔 분명 웃고 있는 내가 있었다.
그거 아세요? 호박벌이 물고기인 거.
에이미가 했던 수수께끼 같은 말이 떠올랐다.
캘리포니아에서 호박벌을 멸종위기종으로 보호하려고 했는데 곤충에 대한 법이 없어서 일단 물고기라고 하고보호받게 되었대요. 어류의 법적 정의가 무척추 동물이어서 거기에 들어갈 수 있었다나 뭐라나.
말을 마친 에이미가 내 초컬릿 통 안에서 보라색 초컬릿 하나를 꺼내어 먹었다.
받아주지 않으면 보호받을 수 없어서 난민이란 지위를 법적으로 만들어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사람들. 작고 얇은 날개로 자기도 한번 날아보겠다고 애쓰는, 다른 동물의 굴에 집을 짓더라도 자기의 자리를 만들어가는, 하늘을 헤엄치는, 호박벌이라는 물고기.
아이는 또다시 내게서 점점 멀어져 다양한 얼굴을 한 아이들 속으로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