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체를 다루는 건 그만큼의 정성을 필요로 한다.
또 실패였다. 딱딱하게 굳어진 그것은 인공의 온기로 겨우 데워졌을 뿐, 숨이 붙어 있다고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적어도 내겐 나이 들어 늘어지는 인간의 피부보다 더 명확한 기정사실이었다. 그래도 확실한 사망원인을 살피기 위해 부검을 하기로 했다. 가슴 아프지만, 또 다른 희생은 막아야 하지 않겠는가. 악어의 가지런한 이빨 같은 톱니 칼을 꺼내어 조심스레 가운데 부분을 잘랐다. 있어야 할 구멍들이 보이지 않았다. 치밀한 해면 구조였다.
발효가 문제였다. 이 문제는 요즘 제빵에 꽤 열성인 내게 매번 불합격 통지서를 내밀며 ‘다음 기회에’라는 비웃음을 날리곤 했다. 발효에 실패했으니 반죽이 멀쩡한 몸을 가지지 못하고, 사체처럼 경직되고 말았다. 그것은 몸을 부풀리고 야들야들한 살을 입어 손으로 누르기만 해도 폭신하고, 양 엄지손가락으로 가운데를 찢었을 때 사이사이에 생긴 구멍들로 스펀지 같은 질감을 만들어야 했다. 그런데 이건 그야말로 나무색을 띤 돌덩이나 다름없다. 농담을 조금 보태어 못도 박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다시 제빵 동영상을 돌려봤다. 그리고 혹시 내가 놓친 부분이 있는지 화면에 눈을 가까이 붙이고서 잠시도 떼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은 마치 밥 로스 아저씨의 유행어처럼 ‘참 쉽죠?’를 연신 남발하며 마치 날 약 올리듯 방금 오븐에서 꺼낸 따끈한 완성품을 입안으로 천천히 집어넣었다. 그러면서 제빵이란 이 어려운 과제에 효모 한 톨만큼도 소질이 없는 내게 막연한 도전을 부추겼다. 하지만 이미 결과물을 보고 난지라 그들이 묘사하는 그 어떤 희열이나 만족감, 성취감 따위는 내 손에 전혀 쥐어지지 않았다. 묘한 자괴감이 들었다. 그깟 빵이 뭐라고. 그리고 날 이렇게 만든 효모를 탓하기 시작했다. 물론 건조 효모는 바닷가에 깔린 고운 모래 같은 자태를 하고서 자신에겐 죄가 없다고 매우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과정을 돌아보기로 했다. 발효 시간은 잘 지켰는가. 시간이 오래되면 효모가 죽는단다. 물의 온도는 적당했는가. 물의 온도가 높아도 효모가 죽는단다. 참 골치 아픈 녀석이다. 심지어 생명력도 없고, 생의 끈기도 없단 생각이 들었다. 발효하는 곳의 온도가 적당했는지도 생각해 봤다. 동영상의 그들은 실온에 둬도 된다고 했지만, 지금은 겨울이라 우리 집 부엌이 좀 추워서 그런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결국, 발효에 실패했다는 건 이런저런 조건 어딘가에서 작지만 심각한 문제가 생겼다는 뜻이었다.
돌아보면 내 요리 방식에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이 여럿 있었다. 국이나 찌개를 끓일 때는 냄비에 찬물, 각종 채소, 고기나 생선 그 밖의 재료들과 양념을 모조리 쏟아 넣고 한꺼번에 끓이거나 볶음 요리도 같은 방식으로 한꺼번에 넣고 볶기 때문이었다. 내 요리에서 순서나 시간, 양, 간 보기는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그런다고 맛이 크게 차이 나지는 않아서 그들의 지적도 점차 사그라들었다.
제빵에 도전하기 전까지는 내 맘대로 하는 요리라고 해도 늘 자신감이 넘쳤다. 하지만 이것은 좀 달랐다. 갑자기 발효는 과학이라던 광고 문구가 떠올랐다. 그것은 컵라면을 기다리는 시간만큼이나 정확한 시간이 필요했고, 온도 역시 아기 목욕물처럼 적당해야 했다. 효모의 양이 많아지거나 지나치게 오래 두면 코를 톡 쏘는 냄새가 나서 부드럽고 달콤한 빵의 풍미를 망쳤다.
효모는 살아있다. 생명체를 다루는 건 그만큼의 정성을 필요로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후경직이 일어난, 그저 어떤 덩어리에 그치고 만다. 생명은 언제나 꽃향기처럼 매혹적이어서 사람의 깊은 마음을 사로잡지만, 소중히 다루지 않는 자에겐 그 반짝이는 눈망울과 따스한 숨결을 절대 내보이지 않는 법이다. 그러니 내가 망친 것은 살아있는 것을 소중히 다루지 않은 까닭이다. 생명력도 없고, 생의 끈기도 없다 했던 내 무지에 억울하게 가해자가 된 효모가 이제야 무죄를 입증받고 다시 숨을 쉬기 시작했다.
밀가루와 소금을 정량으로 섞은 후 가운데를 파고 건조 효모를 묻었다. 그리고 살살 섞어 정확한 온도로 맞춰놓은 따뜻한 물을 부어 반죽했다. 드디어 이 생명체가 살을 붙이고, 숨을 쉴 시간이다. 둥근 덩어리가 된 반죽을 그릇째 예열된 오븐에 넣었다. 이 부분에선 제빵을 곧잘 하는 큰 딸아이의 조언에 따랐다. 타이머를 맞춰 두었지만, 시간이 다가옴에 따라 마음이 점점 초조해졌다. 과연 그것의 뽀얀 살이 올랐을까. 오븐 앞에 쭈그리고 앉아 작은 창으로 내부를 관찰했다. 타이머가 시간이 다 됐음을 요란하게 알렸다. 그리고 오븐을 열어 확인했을 때, 드디어 난 그것의 제법 풍만해진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반죽을 접어 다시 발효 과정을 두 차례쯤 더 하고 나서야 겨우 굽는 과정으로 넘어갔다. 그때부턴 그냥 겉으로만 봐도 성공의 분위기가 느껴졌다.
악어의 가지런한 이빨 같은 톱니 칼을 다시 꺼내어 들었다. 이번엔 부검이 아니었다. 살아있는 것이 만들어낸 가장 아름다운 무늬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바사삭, 하는 소리와 함께 그것의 뽀얀 속살이 드러났다. 그리고 그 안엔 크고 작은 동그라미들이 가득 들어 있었다. 집 나간 성취감이 돌아오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아주 작게, 나만 들을 수 있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빵 만들기, 참 쉽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