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고 쓴 6월 11일
나는 현재 브런치에서 브런치북을 매주 1회 연재를 하고 있다.
답답한 마음을 어디 풀어놓을 곳이 없어 글로 쓰다 보니 벌써 5주 차 연재 중이다.
어떤 특별한 목적을 두고 글을 쓴 게 아니다 보니,
연재의 마지막이 어떻게 될지는 글을 쓰는 나 조차도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건, 글을 통해 나는 치료되고 있고, 성장하고 있다.
나의 글에 관심을 가져주시고 공감해 주신 독자분들에게 이 자리에서 작게나마 감사를 드린다.
1화에서부터 나왔던 것처럼, 남편은 결혼식 1주일 전 또다시 같은 거짓말로 나에게 상처를 입혔다.
그 이후, 나에게 몸의 이상증상들이 차츰차츰 생기기 시작했다.
그래도 외상에 문제가 없으니깐, 약 먹고 치료하며 견딜 수 있었다.
솔직히 말하면, 견뎌야만 했다.
하지만, 결혼 후에도 남편에게는 크고 작은 사건사고와 돈에 관련한 구멍들이 계속 생기기 시작했다.
불길했다, 그리고 불안했다.
이렇게 살다가는 끝이 나지 않을 거 같았다.
도저히 참을 수 없던 어느 날, 시아버지에게 문자를 보냈다.
[남편이 결혼 전부터 빚이 많았고,
계속되는 거짓말에 더 이상 힘들어서 살 수가 없습니다.
본인이 알아서 갚는다고 큰소리치며, 뭐가 잘못인지를 몰라요.
빚이 있다는 걸 본인이 알아서 해결할 거라 얘기를 안 했다는데,
결혼 전에 알려야 하는 게 당연한 게 아닐까요?
아버님 생각은 어떠신지요?]
시아버지는 자존심 하나로만 사시는 분이다.
가진 게 없어도 자존심이 짓밟히면 못 견디고,
돈이 없으면 빚을 내서라도 본인이 밥을 사야 직성에 풀리는 사람이다.
그런 시아버지가 문자를 보고 바로 우리 집으로 찾아오셨다.
"이 사람에게 결혼 전부터 빚이 있어요."
"근데 어디에 썼는지 몰라요."
"알아서 갚을 생각에 저한테 얘기를 안 했데요. 아버님은 이해가 되세요?"
"전 이해가 안 돼요, 말이 안 되잖아요!"
"저희가 첫 번째 파혼했을 때도 똑같이 빚이 없다고 거짓말했어요."
"그리고 아드님이, 정신과를 다닌 지 3년이 넘어요."
아버님은 빚에 대한 내용은 물론이요,
정신과 약을 먹는다는 소리에 자존심이 상하셨는지
우리 집안엔 그런 사람이 없다며 끝까지 인정을 안 하셨다.
갑작스러운 팩트공격에 자존심이 상하셨는지 큰소리만 내신다.
단, 이혼만은 안된다는 것이었다.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펄펄 뛰시며 돌아가셨다.
그 이후, 시아버지의 반복되었던 과장된 허세와 자존심은 나에게 더 이상 내세우지 않으셨다.
또 다른 문제는 제사였다.
남편의 어머님은 오래전 돌아가셨다.
일 년에 다 합쳐 4~5번 이상은 제사를 지내는 것 같았다.(원래 제사가 10번이 넘었다고 한다)
기독교 신자인 나는 제사를 받아들일 수 없었고,
장남인 남편 집안의 제사 문화를 완전히 외면할 수 없어서 남편과 여러 차례 상의 후 명절에 지내는 제사만 참석하겠다고 했다.
남편도 최근 세례를 받고 기독교로 전향을 했다.
앞으로는 제사를 안 드리는 방향으로 추진한다고 했다.
하지만, 제사 때만 되면 남편은 나를 졸랐다.
성인이 된 부부가 합의를 한 부분을, 제사 때마다 졸라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
내 입장은 명절에만 참여를 하고,
그 외에 제사에는 참여하지 않는다고 선포를 했지만
시아버지와 남편의 입장은 달랐다.
매주 토요일이면 어른들께 안부전화를 드린다.
시아버지는 3주 넘게 내 전화를 거부(거절버튼을 누르셨다)하셨다.
4주째 되던 토요일에 드디어 전화를 받으셨다.
"왜? 왜 전화했어?"
(짜증이 가득 찬 목소리다)
"왜 긴요, 매주 전화드리잖아요"
"그니깐 왜"
"........(참자)"
"식사하셨어요?"
"어... 뭐"
"바쁘세요"
"컴퓨터 한다"
"네.."
"아, 왜?"
(결국 남편을 바꿨다.)
"비가 오는데, 거기는요?"
"어, 와. 아 그래서 어쩌라고?"
".........."
(뚝 뚝 뚝 뚝...)
그러고는 전화를 뚝 끊어버리셨다.
이게 지금 무슨 상황인거지?
화가 났다. 나는 전화밖에 한 게 없는데 전화받자마자 짜증을 내시고
그러곤 전화를 마음대로 끊어버렸다.
남편은 원래 말투가 그런 거라고 했다.
그러니깐 그냥 넘어가라는 말투다.
그래도 며느리로서 1년을 통화했는데 내가 시아버지 목소리하나 파악 못하겠는가.
이건 누가 봐도 짜증과 화가 섞여있는 통화였다.
"그래서 따지기라도 하게?"
남편의 돌아오는 답변이었다.
분노와 모욕감이 뒤섞이는 감정을 뒤로한 채, 어이없이 남편을 쳐다봤다.
2시간 정도 마음을 가다듬고, 시아버지께 문자를 보냈다.
문자내용은 이랬다.
[무슨 이유이신진 모르겠지만 매주 전화드리는 거 알고 계시면서,
3 주내 내 전화 안 받으시고, 전화받자마자 짜증 내시면서
무슨 이유로 전화했냐는 말씀이 이해가 안 됩니다.
그리곤 전화 뚝 끊어버리시는 건
저랑 통화하기 싫다는 뜻인가요?
화를 내신 이유를 알려주세요.
앞으론 전화드리지 않겠습니다.
지금까지 전화드려 죄송합니다.]
아버님은 내가 제사 때 참석하지 않은 건 물론, 사과하지 않고 연락하지 않은 게 화가 나셨다고 했다.
내가 잘못한 거를 모르고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하셨다고 했다.
찾아와서 싹싹 빌고 사죄하기를 바라셨던 모양이다.
내가 보낸 문자를 보고, 탄식을 하셨다고 한다.
본인의 생각으로 지금까지 나를 원망하고 계셨다.
여하튼 고맙다는 말씀과 함께 대화는 마무리되었다.
문자후 많은 생각이 들었다.
'도대체 내가 뭘 잘못한 거지?'
'나는 분명히 제사에 대한 내 의사를 전달했는데?'
'전화하길 기다렸다면서 그럼 3주 내내 전화는 왜 안 받으신 거지?'
남편에게 곧장 따졌다.
"우리 분명히 합의 봤잖아, 작년에... 내가 제사 명절에만 참여하겠다고"
"근데 아버님은 나한테 왜 그러시는데?
"하루아침에 30년 가까이하던 제사를 어떻게 안 하겠다고 말씀드려?"
"난 아직 못해"
"그리고 나는 우리 아버지 입장도 충분히 이해돼"
"뭐? 뭐가 이해된다는 거야?"
"제사하고 나서 연락드렸으면 좋았잖아, 그 정도 상식도 없어?"
"뭐? 상식? 미친 거 아냐?"
"아버님이 이것 때문에 화가 나신줄은 꿈에도 몰랐지"
"그렇게 아버님 마음 잘 알면 나한테 전화나 문자라도 하라고 달달 볶지 그랬어?"
"내가 언제 연락 안 하고 내 맘대로 한적 있어?
"생각할수록 어이없네, 아버님이 제사참여하지 않은 것 때문 화난 것이라면 나도 바로 연락했겠지."
"나는 생각도 못했다고"
"그럼 전화는 왜 안 받으신 건데?"
"사정이 있으셨겠지"
"사정? 그래서 내가 당신한테 그날 오후라도, 주중에라도 전화드리라고 했지?"
"이 일 관련해서 얘기한 적 있어?"
"하... 그러면서 상식을 찾아?"
"그래 나 상식 없다."
"아버지 화나셨다고 했잖아"
"당신 아버지가 화가 난 기준이 얼마인지 내가 어떻게 알아?"
"그럼 전화 말고 문자라도 하지 그랬어?"
"....."
계속 반복되는 말과 내 잘못으로 몰아가는 상황에 나는 질려버렸다.
'제발... 나 좀 내버려 두라고, 그냥 숨만 쉬고 사는 것도 버거운데 왜 이런 일까지 신경 쓰이게 하는 거야?'
'당신이 말없이 가져온 빚들 매달 해결하기도 버거워'
'그때 일만 생각하면 화가 나, 아직도 용서가 안돼'
'그냥 잔잔한 호숫가에 있는 것처럼 나 좀 내버려 둬, 안 그래도 내 마음은 매일같이 파도가 치고 있으니깐.'
결혼 한지 1년이 다 되어가지만 난 여전히 남편을 미워하고 있었다.
아직도 내 마음속에는 남편의 원망이 가득 차 있었다.
이런 게 진정한 결혼 생활일까? 이게 사랑일까?
끝까지 시아버지 편을 드는 남편을 뒤로한 채,
12월에 작성해 놓은 이혼서류를 다시 꺼냈다.
오늘은 결혼 1주년이다.
1주년 결혼기념일에 이혼서류를 다시 작성했다.
첫 번째 결혼기념일에 결혼의 마침표를 찍으려고 한다.
모든 일에는 상호작용이 있다.
나에게도 문제점이 많을 것이다.
또한 서로가 각기 다르다고 생각한다.
결혼이란, 서로를 배려하며 하나씩 맞춰가는 힘든 '것' 이였다.
나에게는 처음부터 '결혼'이라는 것이 어울리지 않은 사람이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