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주빈의 일탈행위에 대한 사회구조적 고찰
이른바 ‘N번방 사건’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격분을 하고 있다. 사람들은 서로 청원 글을 공유하고, 범행을 주도한 사람은 물론 방조한 자들의 신상공개를 요구하기도 한다. 미성년자를 포함한 피해자들을 협박하여 만들어낸 성적 행위 영상물을 공유하고, 조롱하며 낄낄대는 모습은, 우리로 하여금 여성 존엄성의, 더 나아가 인간 존엄성의 말살을 떠올리게 한다. ‘조주빈’이라는 인간 자체의 특성에도 사람들은 흥분을 감추지 못한다. 겉으로는 봉사활동도 열심히 하는 대졸 청년이, 인터넷 속에서는 인간이 도저히 할 수 없는 행위를 하며 그러한 세계의 ‘박사’를 자처하는 자였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한 인간의 이토록 철저한 이중성에 놀람과 동시에, 그러한 사람이 우리 주변에 있을 수도 있다는 공포감을 느낀다.
조주빈은 대체 왜 그랬을까? 개인적 일탈, 개인적 특성으로 치환할 수 있는 점도 분명히 있다. 대다수가 그러한 인간적 도리를 넘어서는 일을 실행하고 동조하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우리가 조주빈의 일탈 행위의 사회구조적 원인을 간과할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달라진 사회구조가 사람들의 행동과 생각에 어떤 영향을 끼쳤을 지에 대해 고민해보는 것은, 일탈 행위 자체를 규정하고 해소시키는 데에 중요하기 때문이다. 나는 아래의 두 가지 요인이 조주빈의 일탈 행위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1) 정보화 사회로의 변동으로 인한 규범의 붕괴
먼저, 정보화 사회로의 변동으로 인한 규범의 붕괴이다. 사회학자 뒤르켐은 자살의 원인 중 하나를 사회적 규범의 부재 상태인 ‘아노미’로 설명한 바 있다. 그가 말한 ‘아노미적 자살’은 사회의 규범이 느슨해져 더 많은 자유를 얻은 결과, 자신의 욕망을 끝없이 추구하다가 끝내 실현되지 않는 데에 환멸을 느껴 발생하는 것이다. 정보화 사회로의 변동은 인터넷을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이와 같은 아노미를 불러일으킨다. 그리고 이는 정보화 사회의 익명성과 연관이 있다.
오프라인 사회에서 우리는 얼굴과 얼굴을 맞대며 살아간다. 사회화의 과정을 통해 우리는 타인과 살아가는 데 필요한 규범을 인식하고 그것을 최대한 지킨다. 사회적 관계의 중요성을 어린 나이부터 인식하고, 타인을 존중하는 것이 곧 나 또한 존중받기 위한 길임을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온라인에서는 다르다. 온라인에서 우리는 하나하나 각각의 개성을 지닌 ‘인간’이 아닌, 동질한 아이덴디티를 지닌 익명의 ‘유저’로 인식된다. 우리는 오프라인 사회에서 타인을 대할 때 가지는 일종의 책임의식을, 익명의 유저에게 가질 필요가 거의 없다. 얼굴을 맞댄 상태에서 잘못을 하면 얼굴을 붉히며 사과해야 하는 오프라인 세계와 달리, 온라인 세계에서 우리는 남을 헐뜯고 비방을 해도, 어떠한 짓을 해도, 로그오프하고 도망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오프라인 세계에서 적용되던 사회적 규범이 온라인에서는 쉽게 적용되지 않는다. 이로 인해 사람들은 온라인과 오프라인, 두 세계 사이의 이중적 자아를 생성한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렇게 실질적으로 무규범인 상태에 우리 모두가 차츰 익숙해진다는 것이 문제다. 인간을 인간으로 보지 않는 상태가 익숙해지고, 부정적인 언행과 생각에 둔감 해질 때쯤, 우리는 말도 안 되는 일들도 정당화시킬 수 있는 괴물이 될 수 있다. 조주빈도 처음부터 악마였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익명성이 보장되는 인터넷 세상에서 조금씩, 인간을 인간으로 대하지 않는 이중적 자아를 키워왔을 것이다. 처음에는 당연히 하면 안 되는 행위라고 생각했던 것들도 조금씩 익숙해지기 시작하고, 그보다 좀 더 자극적인 것을 찾게 된 것이다.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라는 말은 사실이다. 사람들은 생각보다 많이, 사회적 관계나 위치를 의식한다. 우리가 타인과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의식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우리는 많은 규범을 만들어내고 지킬 수 있다. 하지만 익명이 보장된 인터넷 세계는 인간의 규범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요구한다. 우리는 타인이 내가 누군지 모르는 상황에서도, 타인을 인간으로 대하겠다는 규범을 스스로 지킬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온라인의 자아가 현실의 나를 집어삼키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
2) 지식 사회로의 변동으로 인해 개인의 영향력 증가
두 번째는, 지식 사회로의 변동으로 인해 정보를 가진 개인의 영향력이 증가했기 때문이다. 3·4차 산업혁명 이후, 세상은 바뀌었다. 우리는 SNS를 통해 타인과 더욱 자유롭게 의견을 교환할 수 있고, 구글 서치를 통해 더 많은 양의 정보를 얻을 수 있게 되었다. 어떠한 정보들은 기업의 주가를 떨어트릴 수도 있고, 때로는 큰돈을 쉽게 벌어 다 준다는 점에서 돈보다도 더 큰 파워를 가질 수 있다. 어떠한 정보들은 아주 개인적인 내용을 담고 있어 널리 공유되면 개인에게 심각한 위해를 입힐 수도 있다는 점에서 정보는 파괴력을 지닌 것이기도 하다. 전통과 문화가 권력의 원천이었던 절대권력의 전근대 사회와, 자본이 권력의 원천인 근대 이후의 자본주의 사회와 달리, 지식사회에서는 정보를 지닌 사람이 실질적인 권력을 가진다. 이는 인터넷 상에 있는 정보를 습득하고 활용한다면, 그를 얻은 개인도 권력을 가질 수 있다는 말을 의미한다.
조주빈은 자신이 한낱 개인에 불과하지만, 정보의 바다 인터넷에서 타인의 개인정보를 습득한다면, 그리고 그 정보가 개개인의 신상을 훼손할 만큼 중요한 정보라면, 누군가에게 어떠한 명령이든 내리며 군림할 수 있는 존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권력의 원천이 자본에서 정보로 넘어간 것은, 사회적인 권력이 일부 기득권층에서부터 개개인에게 분배됨과 동시에, 개개인이 그를 악용할 수 있는 여지를 남기게 된 것이다.
물론 지식사회로의 변화가 암울한 것만은 아니다. 과거 전근대 사회와 자본주의 사회에서도 ‘N번방 사건’과 비슷한 맥락의 범죄는 분명히 있었을 것으로 확신한다. 다만 일반 사람들은 모르는 곳에서 은밀히 행해졌을 것이다. 한스 로슬링이 그의 저서 ‘팩트 풀니스’에서 ‘나쁜 뉴스가 많이 보이는 이유는 세상이 나빠졌기 때문이 아니라, 고통을 감시하는 능력이 발전했기 때문이다.’라는 말을 남긴 것처럼, 과거에 비해 악행을 저지르는 이들을 감시하는 능력 또한 증가한 것이 사실이다. ‘미투 운동’이 대표적인 예시이다. 정보에 힘입은 개개인의 능력은 더욱 강해져서, 사회적 부조리에 개개인도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고, 이를 공론화시키기 쉬워졌다.
이렇듯, 정보는 그것이 활용되는 방법과 목적에 따라 사회를 합리적으로 만들 수도, 더 비합리적으로 만들 수도 있다. 개인은 정보라는 양날의 검을 쥔 것이나 다름이 없다. 이에 대한 진지한 고찰과 성숙한 사회적 논의가 이토록 진행되지 않는다면, ‘제2의 N번방 사건’ 혹은 그보다 더한 사건들이 발생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