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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상 Apr 18. 2022

레이 브래드버리 - 화성연대기

서늘하고 아름다운 상상력의 대서사


책 소개


레이 브래드버리의 화성연대기는 1950년 미국 SF역사에 한 획을 그은 단편집이다.​


평소 디스토피아 판타지를 즐겨보지만 이런 식의 SF 문학은 처음이었다. 화성연대기라는 제목과 꼭 같이 이 책은 하나의 현실이자 역사를 담고 있다. 물론 모든 좋은 문학작품은 현실을 사색하고, 반영한다. 그러나 브래드 버리의 방식은 충격적이다. 1950년대의 작가 브래드버리는 지독하게 현실적인 '현실'을 우주라는 세계로 옮겨 놓았다.

그리고 이는 철저히 지금의 현실과 닮아있다.​


SF 영화는 인간이 화성이나 외계에 의해 침략을 당하는 스토리를 주로 보여준다. 인간은 미지의 악인에 대해 두려워하지만 그러면서도 선의와 정의를 잃지 않는 작은 영웅으로 그려진다. 그러나 이 책은 인간이 가진 그 이면을 낱낱이 드러내며, 시로써 표현한다. 아름답고, 서정적이며, 시적인 문장의 나열은​ SF를 처음 접하는 이들을 자연스럽게 상상력의 세계로 이끈다. 동시에 그러한 언어들의 생동 속에 숨겨진 인간 본질에 대한 성찰과 당대 현실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력은 2022년의 독자들마저 전율을 일게 한다. 무엇보다 서늘하게 느껴지는 것은 그가 경고한 인간의 잔혹함과 폭력성이 70년이 흐른 지금 우리의 현실 속에 너무나도 선명히 드러나고 있다는 것이다. (과거 브래드버리가 화성 연대리를 통해 누차 강조한 사색과 반성의 가치는 어디로 간 것인가)

​​

인류의 회고록, 화성연대기


“우리 지구 인류가 우주에 진출하면서 진취성과 자부심이 아니라 사색과 반성을 거쳐야 한다는 독특한 관점을 견지하고 있다” - <화성연대기> 추천사 중


책 줄거리 및 주요 내용


이야기의 서막​


1999년 1월 로켓 여름, 우주여행의 서막이 열린다. 책의 초반 꿈을 매개로 소통하는 듯하는 화성인과 지구인들이 그려지면서, 곧 화성인 여인들은 그들이 알 수 없는 지구말로 된 기이한 지구의 노래를 부르고 이내 비명을 지르거나 눈물을 흘리며 다가올 불행을 예감한다. 그리고 같은 해 8월 탐험대장 윌리엄스가 도착한다. 이들은 화성인들을 만나 자신들이 지구에서 왔다고 주장하고, 탐험은 대성공을 이루는 듯 보인다. 그러나 열 페이지 남짓 되지 않아 이들은 살해당한다. 이들이 자신들에게 환각을 보여주면서 최면 암시를 보여주는 정신병에 걸려있다고 생각한 화성인들의 짓이다. 그렇게 화성에 도착한 지구인들은 맥없이 죽어갔다. ​


예측불가능하고도,  충격적인 시작이다. 반전을 거듭하는 이야기의 흐름은 무심한 서술과 만나 더욱 돋보인다. 이미 지구인들이 화성을 전부 멸망시킬거란 결말을 알고 있는 나로서도 “이들이 어떻게 화상을 지배하는 걸까?” 라는 생각을 할 정도로 지구인은 나약했고, 화성인들은 초월했다.


3차 화성탐사


윌리엄스 이후 존 블랙 탐험대장이 3차 화성탐사를 진행한다. 놀랍게도 이들은 여기에서 지구의 풍경을 마주한다. 1920년대의 지구에서 보았던 마을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화성의 모습은 정말로 과거 지구인들의 화성탐사가 성공했던 것은 아닌지 의심하게 한다.


지구의 주택과 음악, 언어, 문화 모든 것을 닮아있는 화성의 모습에 감격한 이들은 진정할 새도 없이 곧 지구에서 잃어버린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죽은 줄 알았던 친척과 친구들, 가족들을 만난 이들은 이 꿈같은 현실에 북받친 감정으로 하루를 지낸다. 가족들과 함께 보냈던 일상의 모습을 재현하고 그리워했던 모든 순간들을 눈으로 보며 행복해한다. 밤이 되면 형과 굿나잇 인사를 나누고 그리웠던 방에 누워 홀로 잠들 준비를 하는 뭉클한 장면이다.

그러나 문득 존 블랙 탐험대장은 곧 이것이 텔레파시, 최면술, 기억, 상상력이 아닐지 소름끼치는 예측을 하기 시작한다. 화성인의 텔레파시와 최면술에 과거의 기억에 더해진 상상력과 간절한 바람을 현실인 것처럼 느끼게 한다면? 모든 대원들이 연이어 잃어버린 가족과 연인을 만나 자신들의 과거를 고스란히 그려낸 주택을 화성에서 마주할 확률은 과연 얼마나 되겠는가? 그리고 존 블랙의 죽음은 곧 이 추측이 정답이었음을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이러한 대목은 이 책을 더욱 재미있게 느끼게 하는 이유이기도 했다. 지구인의 화성 침략과정에서 늘 지구가 우세한 것이 아니었음을, 화성인들도 자신들의 방식으로 자신의 행성을 지켜내려 했음을 독특한 방식으로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지구인들의 화성이민

이후 와일더 탐험대장과 스펜더의 해프닝 이후 지구인들의 화성이민이 그려진다. 고향을 떠나 다른 행성으로 떠난 이들의 향수, 그리움, 외로움이 그려진다. 이 과정에서 역시 인간이 가진 비정함이 드러난다.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티스다. 그는 자신의 집에서 일하던 흑인 소년이 떠나는 것을 인정하지 못하고 빚과 도둑질을 핑계로 잡아두려 한다. 떠나려는 소년의 빚을 갚아주는 한 노인에 그를 말리지 못하지만 여전히 씩씩대고, 마지막까지 사장님이라고 자신을 지칭하였다면서 흑인 소년을 조롱하는 티스의 모습은 얼마 전 본 그린북에서의 백인들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왜 인간은 끊임없이 다른 이를 지배하려 할까.


한편, 그들의 이민 이후 스펜더의 염려는 그대로 이루어진다. 화성의 모든 것은 소리없이 허물어지고 지구의 방식으로 이름이 붙여진다. 화성에서 소풍을 떠난 소년들은 죽은 화성인들의 뼈를 장난감 삼아 뛰놀고, 이어지는 단락은 지구인들에 의해 남아있는 잔해마저도 흔적 없이 소각될 것임을 예상하게 한다. 파크힐 대원은 핫도그 노점을 세우고 화성으로 이민 올 대거의 지구인들을 보며 돈을 벌 생각에 잔뜩 군침을 흘린다. 완전히 지구의 방식으로 화성은 변해가고 있었다.



지구의 전쟁, 그리고 무덤의 행성


다음 순간 지구에서의 전쟁이 펼쳐진다. 원자폭탄과 폭격은 화성으로 떠난 이들은 다시 돌아오게 한다. 적막에 휩싸인 채 남겨진 일부의 지구인들은 고요하고 버려진 도시에서 살아간다. 지구와 화성은 무덤의 행성이 되었고, 화성에 남겨진 이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외로움을 달랜다. ​


소리 없는 무덤의 행성에서 들리는 것은 오직 정해진 시간에 울려대는 집의 노랫소리뿐. 오전 7시부터 분단위로 외쳐대는 알람소리와 자동화된 기계로봇들은 먼지 하나 없도록 집안을 관리한다.


오지 않을 집주인을 위한 음식을 만들고 그 누구도 건들지 않은 음식을 치우고 그 누구도 밟지 않을 잔디를 깎는다. 홀로 남아 부들대는 개가 진흙을 남기고 죽음을 맞이하면 웅웅대는 소리와 함께 개의 존재는 원래부터 없던 듯 사라진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집은 포커게임을 준비하고, 아이들이 놀 수 있도록 프로젝터로 아이 방에 정글을 불러온다. 저녁을 준비하고 시를 읊고 음악을 흘려내는 집은 곧 커다란 나뭇가지가 불러온 거대한 화염의 노래를 불러야 한다.


집은 와들와들떨고 오크 뼈들이 첩첩이 쌓이고
앙상하게 드러난 해골들이 불 앞에서 잔뜩 움츠리고 있는 와중에, 집의 전선들이 밖으로 훤히 드러났다. 그 모습이 꼭 외과의사가 피부를 뜯어내서 붉은 혈관과 모세관들이 뜨거운 증기 앞에서 부르르 떨고 있는 것 같았다. - 책 중


마침내 폐허가 되어버린 벽에서 최후의 목소리는 여전히 똑같은 말을 되풀이한다. 이 장면은 앞서 집이 골라 읊던 시의 구절과 어우러지며 기이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사람 하나 없는 곳에서 만들어지는 완벽한 질서와 그것의 완벽한 균열, 그러나 그 질서가 세워지고 아수라장이 되고, 결국 무너질 때까지 그 누구의 온기도 찾을 수 없는 지구. 무덤의 행성이 되어버린 지구의 모습은 그 자체로 인간을 잃어버린 문명을 보여주는 듯 했다. 어쩌면 그것이 재앙이 아닐까.


인간과 문명에 대하여


화성연대기는 계속해서 질문하고, 질문한다. 지금의 문명은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는가에 대하여 묻고, 삶에 대해서도 질문한다. 이 구절은 왜 사는가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있던 최근의 나에게 너무나 당연스럽다는 듯 현답을 던졌다.


 "삶 자체가 답이니까요. 삶이란 더 많은 삶을 낳는 자기증식 과정이며, 최대한 잘 사는 것이 바로 삶의 의미입니다." 


책을 읽는 내내 한 구절 한 구적이 묵직하면서도 날카롭게 와닿았다. 우리는 알고 있다. 인간과 삶, 그리고 이를 둘러싼 문명을 바라보는 방식이 달라져야 함을, 덜 파괴적이고 더 순진하고 이롭게 모든 것을 대해야 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럼에도 왜 인간은 여전할까.



추가_왜 화성연대기인가


제목이 화성연대기임에도 이 책은 철저히 지구인의 시점에서 쓰여진 글과 같이 느껴진다. 책은 지구인의 화성탐사기로부터 시작하여, 화성을 지배하기까지의 과정을 주로 다루고 있다. 일부는 화성인들의 이야기를 다루기도 한다. 그러나 이들이 어떻게 고도의 예술적 문명을 구축해왔는지나 어떻게 멸망했는지에 대해서는 추측만이 가능할 뿐, 자세히 서술되어 있지 않다.


그렇기에 책을 읽으면서 내내 이 책은 <화성연대기>라기보다는 <화성탐사기>에 더 가깝지 않을까 하는 의문이 계속해서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러나 책의 마지막 장을 덮은 순간 어렴풋이 <화성연대기>라는 책의 제목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책 <화성연대기> 속 대부분의 인물들은 화성을 지배하는 것에 혈안이 되어 있다. 그러나 그러한 인물들 가운데 지구의 문명에서 벗어나 새로운 질서, 특히 화성의 생활방식을 이해하고, 따르려는 이들 역시 그려진다. 이들은 자신 스스로를 화성인이라고 말한다.

4차 탐험대원 스펜서는 지구인들이 화성에 올 경우 화성인들이 오랫동안 구축해온 문명이 파괴되고, 지구의 폭력적인 방식으로 화성이 재편될 것을 경고한다. 그는 스스로 화성인이기를 자처하면서 탐험대원들을 모두 살해하려 하지만 그의 시도는 실패로 돌아간다. ​


책의 마지막 챕터에서 지구가 전쟁으로 인해 멸망하고 화성으로의 백만년 우주여행을 떠나온 티머시 가족 역시 지구의 서류들을 의도적으로 가져오고 이를 하나하나 불 속에 넣으면서 지구에서의 생활 방식을 불태운다. 기계와 과학을 비판하면서 지구의 모든 법과 신념, 지리를 한 줌의 뜨거운 재로 만든 이들은 화성의 운하에 고인 물이 비치는 모습에서 자신들을 보며 자신들이 화성인임을 깨닫는다.

이처럼 화성연대기는 지구의 생활방식을 반성과 사색의 시선으로 바라보며 새로운 문명과 질서를 구축하려 하는 이들을 화성인이라 말한다. 이 시각에서 보면 이 책의 모든 등장인물보다도 가장 화성인다운 사람은 레이 브래드버리일 것이다. 어쩌면 그는 자신을 화성인이라 생각하고, 화성인으로서의 역사를 연대기 형식으로 적은 화성 연대기로서 펼쳐낸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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