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복이면 좋을 텐데,
일 복이 터졌다!
자처한 것도 아닌데 자꾸 여기저기서 일을 던져준다. 당연한 남의 부서 일도 막 쳐들어 온다. 처음에는 억울하고 속상했는데 어떤 경지를 넘어서니 어이가 없어 저항 의지마저 사라진다.
심지어 헛웃음이 난다.
하하하... 이것도 나한테 하래~~ 뭐 이런 느낌^^
분명 업무가 5개였는데 2개를 처리하면 6개가 남는다. 한 개 처리 중에 두 개가 들어오는 식이다. 초과 근무는 어느새 일상이 되고, 유일한 취미인 글쓰기는 품의를 올릴 때만 하고 있다.
아, 난 다자녀 엄마! 초근 수당도 제대로 못 받고 아이들 밥 주러 애매하게 퇴근한다. 퇴근 후 집안일은 일단 제쳐 두고라도...
1,2,3 학년 수업을 골고루 다 들어가니 1층에서 5층까지 돌아다닌다. 과목이 막 섞여 있으니 이번엔 어딜 가야 하나... 학습지 챙기기도 헷갈릴 지경~ 게다가 처리할 공문, 들어야 할 연수, 나가야 할 출장은 어찌나 많은지!
이 바쁜 와중에 백만 년 만에 글을 쓰게 만든 사건이 있었으니...
서막은 주말 전화에서 시작됐다.
대학원 학과장님이 갑자기 전화를 하시더니 졸업시험 날짜를 정하란다. 대학원은 졸업시험도 논문 쓰듯이 개별로 보는 건가?
좀 이상했지만 대뜸 날을 정하라고 하시니 내가 편한 날, 편한 시간과 과목을 말씀드렸다. 다른 분들은 다 정했나 궁금해하던 찰나에 알림이 울리더니 우리 학과 밴드에 전체 공지가 올라왔다.
두둥! 내가 정한 그날, 그 시간에 4학 차 선생님들 전부 졸업시험을 본다고. 심지어 과목도 그대로. 시험지는 김 00(me) 선생님한테 줄 테니까 전체 샘들은 전달받으라고.
'헉. 내가 대표로 정한 거였어? 왜? 이건 또 무슨 일? 제가요? 전 조교가 아닌데요. 심지어 과대표도 아닌데요'라고 항의하려는데 단톡방 항의가 먼저 시작된다.
00 날에 시험 못 본다, 여행 일정 있다, 갑자기 공지하면 어떡하냐, 다른 과목으로 바꿔달라 등등...
아놔... 선생님들~ 진정하시고 저는 4학 차 대표가 아니고요. 대표 누구신가요? (조용~~)
하하하하하하... 이렇게 나는 왜 이 사태를 수습해야 하는지 모른 채 민원 처리를 해야만 했다. 급히 오픈채팅방을 만들어 동기샘들을 초대하고, 날짜를 조율하고, 다시 학과장님께 전화를 드려서 제발 시험일을 조정해 달라고 애원하고.
이러고 나니 오늘은 '난 어디? 여긴 누구?'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한숨 돌리고 나니 결국 조율한 날짜는 우리 아들 고입설명회가 있는 날이다. 우리 아들 입시도 중요한데 이걸 어쩌나.
MZ 세대는 '이걸 제가요?'라고 되묻는다는데 나도 이제 연습 좀 해야겠다.
이걸요? 제가요? 싫어요! 안 해요! 못해요!
오늘은 진심으로 황당한 하루~
하다하다 별 걸 다 하는 나와 이 상황이 살짝 웃기기도 하다. 미움 받을 용기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