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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슈눅히 Mar 30. 2022

그 해, 여름[2]

칸느, 니스 그리고 사르데냐


프랑스, 니스


M과 반갑고도 아쉬운 만남을 뒤로하고 니스로 돌아온 다음날. 

나는 구글맵 없이 여행이라는 목표를 세우고 걷기 시작했다.



어쩐지 내게 프랑스는 보라색과 잘 어울리는 나라란 생각이 있다.

프로방스의 라벤더 꽃밭 사진을 너무 많이 본 탓일까..



오전의 분수대는 비었지만, 오후엔?



자리 잡는 게 쉽지 않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이곳 분수대 근처에서 휴식을 취한다.

나도 앉아서 책 몇 장을 넘겨 읽다 사람들 구경을 더 신나게 했다.



지중해를 가진 나라 특유의 느낌들이 있는 것 같다.

스페인, 이탈리아 그리고 프랑스. 골목골목에서 닮은 듯 다른 나라들의 모습을 보는 게 신기하다.




정말 말 그대로 하늘에서 내리쬐는 뜨거운 햇볕을 받으면서 이리 걷고, 저리 걷다 보면 금방 지치고 에너지를 요구하는 내 몸의 신호를 무시할 수 없다.


눈에 보이는 아무 곳으로 들어가서 에너지를 충전했다. 가게의 이름도, 메뉴의 이름도 생각나지 않는다. 당연히 음식 맛도 생각나지 않는다. 다만, 아직까지도 저 그린 스무디의 시원함만이 기억난다.


금강산도 식후경, 혼자 여행해도 잘 먹어야 한다. 특히 더운 날씨엔 더더욱.


어느 날 들렸던 디저트 가게. 유명한 곳인지 사람들이 꽤 많았다.

그리고 저기서 먹었던 까눌레는 정말 내가 여태껏 먹어본 까눌레 중에 최고로 맛있었다.

(배가 고플 때 먹어서 그런 건지도 모른다)


또 먹고 싶은 까눌레와 디저트들


까눌레를 한 입 베어 물고, 아메리카노를 쭈욱 들이키면서 보낸 그늘에서의 휴식을 잊지 못한다.

한 여름 차가운 아메리카노가 목을 타고 넘어가는 그 순간이 여름을 나는 수백 가지 방법 중 하나라고 나는 이야기하고 싶다.




니스에서 꼭 가고 싶은 곳이 있었다. 그건 바로 니스를 한눈에 담을 수 있는 곳.

panorama sur la vieille ville de Nice


그토록 내가 오고 싶던 니스에서 여름을 보낼 수 있고, 보고 싶던 뷰를 내 눈에 담을 수 있단 사실에 가슴이 벅찼다.

매일을 여행하는 것처럼 사는 게 힘들다면,

이런 순간 하나쯤 마음에 품고 이루어 내길 기대하면서 사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푸른 하늘, 솟아 오른 구름, 주황색 지붕들, 에메랄드 색 바다 그리고 여러 가지 색으로 찍힌 점 같은 사람들.

보고 있는 그 풍경이 실제인지, 사진인지 아니면 그림인지 헷갈리는 꿈에 그리던 풍경이었다.



주황색 지붕들이 많은 유럽,

몇 년 전 한국에 처음 방문했던 짝꿍이 하던 말이 생각난다. 


- 어? 한국은 초록색 옥상들이 많네?


내가 주황색 지붕을 로맨틱하게 느낀 것처럼 그도 이국적인 녹색 옥상들을 로맨틱하게 느꼈을까?

물어보진 않았지만 당시의 말투로 느끼건대 썩 그랬을 건 같진 않다.




대부분의 시간은 해변 근처에서 보냈다.

니스 해변은 자갈 해변이기 때문에 비치타월은 필수다.


랜딩을 위해 고도를 낮추던 점 같은 비행기는 오늘에서야 보인다. 어쨌거나 한가로운 니스 해변
태닝, 태닝, 태닝 + 여유, 여유, 여유
해변의 휴양


나도  자갈 해변에 앉아 책도 읽고 여유를 부리고 싶었지만 파라솔 없이 장시간 니스의 여름 햇볕을 견디기란 힘들었다. 자갈밭에 오래 머물기도 썩 편하고 쉽지는 않았는데 그걸 꿋꿋하게 버티며 즐기고 머무는 사람들에게 존경심이 들었다. 리스펙.



해변을 떠나기 전, 투명한 바다를 더 가까이에서 담고 파도가 밀려왔다 갈 때마다 자갈을 건드리는 소리도 가까이에서 들었다. 여유를 가지면 더 많은 것들을 품을 수 있게 되나 보다.




결국 뜨겁다 못해 따가운 햇볕을 피하기 위해 그늘에 들어섰다.


휴, 살 것 같았던 그늘 아래
나의 노년은 어떤 모습일지 문득 궁금해지게 만든 프랑스 할머니, 할아버지


길 따라 걷다 발견한 파라솔 대여하는 곳.. 다음에 니스에 오게 된다면 꼭, 파라솔과 함께하리라.



마지막 날 까지도 맑고 쨍하던 니스. 그렇지만 런던으로 돌아가는 길은 순탄치 않았다.


호텔에 맡겨둔 짐을 찾기 전 마지막으로 들린 화장실에서 휴대폰을 변기에 빠뜨린 것이 시발점이라고 할 수 있겠다. 뒷주머니에 넣어둔 핸드폰이 변기에 빠진다는 시나리오는 내게  없었는데, 역시 인생은 한 치앞도 모르는 것.


변기에 휴대폰이 빠졌다는 사람들 이야기를 들을 때면 그게 어떻게 빠지냐 했는데

내가 겪어보니 그래, 이렇게 빠지는 거구나 싶었다.

역시, 본인이 겪어보기 전까진 뭐든 쉽게 판단해선 안되고 누군가에게 쉽게 핀잔을 주어선 안 되는 법이다.


비행기 E-ticket이 들어있는 핸드폰을 잽싸게 구조했지만 이미 한 번 잠수한 핸드폰은 인사도 없이 이미 요단강을 건넌 듯했다. 나의 심폐소생술에 가까운 손놀림에도 폰은 응답하지 않았다. 이렇게 갑작스러운 이별이라니..

하지만 나는 슬퍼할 겨를도 없다. 공항으로 떠나야만 하는 시간이 다가와 심장이 쫄깃해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프론트 데스크 직원에게 구구절절 자초지종을 설명하며 프린트를 이용할 수 있었던 게 천만다행이었다. 


무사히 프린트한 티켓으로 공항에서 수속을 마쳤더니, 이번엔 비행기 지연 소식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뭐지? 이 연속적인 서프라이즈는?

4-5시간 정도의 지연이었는데,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으니 기다렸다. 


그리고 런던에 도착했을 땐 자정이 넘어 집으로 갈 수 있는 방법은 택시밖에 없었다.

택시라니? 택시비가 어마어마한 런던에서 택시라니?


결국, 공항 노숙이라는 말을 듣기만 했는데 내가 또 그걸 하게 된다. 


니스에서의 꿈같이 달콤하던 시간과 지금 이 짧은 시간에 일어난 모든 일들이 너무나도 상반되어 갑자기 현실로 돌아온 느낌이었다. 정신 차려야지!


밤새 뜬 눈으로 누가 내 짐을 건드리기라도 할까 봐 잔뜩 경계하며 그러나 겉으론 태연한 척 밤을 지새웠다.

쾡해진 눈으로 아침을 맞고 공항에서 런던 시내로 가는 첫 버스를 타기 위해 줄을 섰다. 온몸을 휘감는 차가운 그때의 공기. 같은 7월인데 니스에서와 달리 쌀쌀하게만 느껴지고 휴가는 끝났다는 게 실감 났다.


집에 도착해 벨을 눌렀더니 F가 제일 먼저 나를 맞이해 줬다.

밤새 한 숨도 못 자고 초췌한 몰골의 나를 보며 걱정스레 괜찮냐고 물어보던 그녀. 안 괜찮아 흑흑


어제 집에 도착하기로 한 내가 도착하지도 않고, 핸드폰으로 연락도 되지 않아 같이 살던 친구들은 경찰에 연락을 해야 하는 건지 고민하던 찰나였다고 한다. 그 말이 어찌나 고맙던지.. 일가친척도 없이 낯설고 먼 이 땅에서 누군가 나를 염려해 준다는 건 정말 감사하고 또 감사한 일이다.


그렇게 집으로 돌아오는 여정이 마무리됐다.

집 떠나면 고생이라더니.. 한국 집을 떠나 런던에 와서도 고생, 런던 집을 떠나 잠시 니스에 다녀오던 그때도 고생.


삶은 고생이 넘쳐 나지만 그래도 그 사이에 니스 같은 꿈같은 시간도 있기에 살만 한 거겠지.

오늘 힘들어도 내일에 대한 기대와 설렘은 늘 품고 삼기로, 그런 낭만 하나쯤은 갖고 살기로 다짐했다.


니스를 떠나면서 꼭 다시 올게라고 혼잣말로 인사를 건네었는데 언젠가 다시 니스에 가는 날이 오길 바란다.

그럼 그때 보고 싶었어 니스!!라고 외쳐야지.


그리운 니스,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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