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도 출근하고
아이도 놀러 가고
오롯이 홀로인 시간.
욕실 앞에
아무렇게나 널브러진
오염된 남편의 속옷과
뒤집어진 양말 짝을
주우며
나는 내가 하염없이,
하찮다.
10년 넘게 말해줘도
여전히 자신의 벗은 옷 하나를
빨래 바구니에 넣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걸,
몰랐던 내가
하찮다.
뭘 또 이런 걸 가지고
이렇게까지 내가
하찮을 일인가 싶은……
내가 또
하찮다.
생각을 멈추고
청소기를 돌리는,
그런 내가
또,
한참을
하찮다.
이 글을 쓰고 며칠 후에,
또 욕실 앞에 그냥 벗어놓은 남편의 속옷을 들고 남편에게 나지막이 읊조렸어요
"나는 이제 당신한테 화가 안 나.
그냥... 내가... 하찮아"
그랬더니
"당신이 하찮다고?"
"......"
"......"
그 뒤로 10년 넘게 안 고쳐지던
습관이 한 방에 사라졌습니다.
얼마나 갈는지는 모르겠으나
화내는 것보다 충격이었나 봅니다.
저는 저를 다시 사랑하기로 했습니다.
빨래도 기분 좋게 해 주기로 했습니다.
빨래따위에 마음 다치지 않기로
마음 먹었어요. 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