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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리파토스 Jan 13. 2022

우울증

남편도 출근하고

아이도 놀러 가고

오롯이 홀로인 시간.



욕실 앞에

아무렇게나 널브러진

오염된 남편의 속옷과

뒤집어진 양말 짝을

주우며



나는 내가 하염없이,


하찮다.



10년 넘게 말해줘도

여전히 자신의 벗은 옷 하나를

빨래 바구니에 넣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걸,


몰랐던 내가

하찮다.



뭘 또 이런 걸 가지고

이렇게까지 내가

하찮을 일인가 싶은……

내가 또

하찮다.



생각을 멈추고

청소기를 돌리는,

그런 내가

또,

한참을

하찮다.




이 글을 쓰고 며칠 후에,

또 욕실 앞에 그냥 벗어놓은 남편의 속옷을 들고 남편에게 나지막이 읊조렸어요



"나는 이제 당신한테 화가 안 나.

그냥... 내가... 하찮아"


그랬더니


"당신이 하찮다고?"


"......"


"......"


그 뒤로 10년 넘게 안 고쳐지던

습관이 한 방에 사라졌습니다.

얼마나 갈는지는 모르겠으나

화내는 것보다 충격이었나 봅니다.


저는 저를 다시 사랑하기로 했습니다.

빨래도 기분 좋게 해 주기로 했습니다.

빨래따위에 마음 다치지 않기로

마음 먹었어요. 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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