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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아들과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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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리파토스 Jan 03. 2022

BTS 입문에서 스우파까지.

심장아 나대지 마! 쉰둥이의 일탈 육아


오늘도 아들은 뱅글뱅글 돈다. 밥을 먹다가도 돌고, 패드를 보다가도 돌고 기분 좋아도 돌고, 심심해도 돈다. 블록 조립할 때 혹은 책을 볼 때만 앉아있는다. ADHD라는 걸 몰랐을 때는 왜 저러나 싶어 혼내기도 했었다. 아무리 가르쳐도 불쑥불쑥 일어나 뱅글뱅글 돌거나 발차기를 해대며 장난을 쳤다. ADHD라는 걸 안 다음부터 많이 혼내지는 않지만 한 번씩 이성을 상실하고 꼭지가 돌 때가 있다. 소리치고 나서 이내 몇 분 만에 후회가 치밀어 오르지만 울고 싶을 정도로 감당하기 힘든 건 사실이다.


요즘처럼 바깥활동도 못하고 24시간 붙어서 실내생활을 하다 보면 머릿속에 탑재된 육아 지식들은 그저 산산이 부서지는 활자일 뿐이다. 하루에도 수십 번 감정을 추스르고 아이의 행동 원인을 복기하며 그 "이유 있음" 을 통해 위안을 찾으려 노력한다. 그래도 뱅글뱅글 도는 아이를 바라보고 있으면 무작정 긍정적일 수 없는 건 사실이다. 가능하면 식사 중일 때나 수업시간에는 움직이지 않도록 주의를 주고 있지만, 저라고 그러고 싶어 그러는 게 아니니 크게 화내거나 혼을 내는 건 의미가 없다.






며칠 전,

숙제를 하다가 뭔가  ~~  왔는지 일어나 뱅글뱅글 돌기 시작했다. 움직이고 싶어 안달이난 녀석에게 무작정 가만히  있으라고만  수는 없었다. 그래, 어차피 한시도 가만히 있는  힘들다면 차라리 사지를  흔들어대는 춤을  보자 싶었다. 혹여나 산만함을 예술로 승화시키는 재능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너튜브의 도움이 필요했다. 티브이를 켜고 너튜브로 BTS를 검색했다. 내가 아는 유일한 요즘 댄스 아이돌은 BTS 뿐이었기 때문이다. 무수히 많은 곡들과 뮤직비디오가 검색되었지만 아는 제목이 하나도 없.... ㅋㅋ

그냥 아무거나 눌러보았다. 다행히 워낙 유명한 분들이라 오며 가며 주워 들은 귀에 익은 음악들이 흘러나왔다. 아~~~ 이게 이분들 노래였구나... 내가 한 번씩 들어본 멜로디라면 분명 지구 상의 모든 인류가 들어보았을 음원들인 것이 자명하다.


일명 <퍼투댄(퍼미션  댄스)> <뻐러(버터)> 뮤직 비디오가 재생되었고 아들은 댄스가수 빙의되어 잘생긴 형들에게  1 주눅들지 않고 춤을 따라 추었다. 그래, 뱅글뱅글 도는것보다는 막춤이 낫다.


10분쯤 흘렀을까... 티브이 속으로 빨려 들어갈   몸의 상체가 앞으로 기울어져 있었고 동공은 확장되었으며 나도 모르게 입이 벌어져  타액이 흐를듯한 의식 상태로 그들에게 시선이 고정되었다. 손에 쥐고 있던 리모컨이 바닥으로 떨어진 것도 모른  영혼이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이래서 50대 아미들이 존재하는 거구나......


멋있다, 잘생겼다를 넘어선,

차원의 경계를 넘나드는 혼미함으로 뇌의 주름들이 다 펴지는 느낌이었다. 어느새 춤추던 아들이 내 옆에 앉아 같이 침을 흘리며 몰입하고 있다는 것도 한참 후에 알았다. 남자 아이돌이라서 강렬한 비트의 파워풀한 댄스를 상상했었는데 감미로운 보이스와 수화를 접목한 <퍼미션 투 댄스>의 뮤직비디오는 감동스럽기까지 해서 아들 몰래 울컥울컥 하며 눈물을 훔쳐야 했다.


뭐지? 이 뜨끈뜨끈하고 물컹물컹한 감정은??


BTS 음악은  몰랐지만, 그들의 데뷔 과정이 일반 아이돌과 달랐다는 점과 그들의 팬클럽인 아미의 충성도가 남다르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런 긍정의 선입견이 작용해서 일까. 뮤직비디오를 보는 내내 

"... 이래서 BTS BTS 하는 거구나, 이래서 아미들이 그들을 사랑하고 지지할 수밖에 없는 거구나"

하고 혼자서 신나게 뒷북을 두드렸다.


>>> BTS Permission to dance


그렇게 다이너마이트와 퍼투댄, 뻐러를 반복해 듣는 동안 너튜브의 알고리즘이 그새 나의 관심사를 파악하고 추천 영상들을 막 올려주고 있었다. 썸네일을 넘기던 중, 센 언니들의 범상치 않은 기세가 화면을 뚫고 나올 듯한 영상을 발견했다. 스트리트 우먼 파이터 (이하 스우파)라는 프로였다. 나는 또 뇌에 다림질을 해가며 홀리듯 클릭을 하고 말았다.



웁스!!! 이 언니들 뭐임???


나이키인지 아이키인지 립제이인지 립밤인지 기 세고 멋진 언니들이 떼샷으로 나와서 군무를 추고, 상대를 지목해 배틀을 벌이는 장면은 쉰둥이 육아맘에게는 가히 문화 충격이라 할만했다.


대한민국에 저런 믓찐(립 제이 오마쥬) 언니야들이 실존한단 말이야???


나는 또 종영된 프로그램에 세게 뒷북을 치며 시계를 올려다보았다.


이런, 아들 태권도 학원 갈 시간이다. 침을 닦고 정신을 차려야 했다. 티브이를 끄고 아들 옷을 갈아입혀 태권도 학원 차에 얼른 태워 보냈다. 그리고 혼자, 다시 은밀하게 너튜브를 켰다. 어느 방송국에서 하는 프로그램인지 몇 시에 하는지도 전혀 모르기에 그냥 짤로 볼 수밖에 없다. 시간도 없다. 아들이 오기 전에 조금이라도 더 보고 싶었다.


이거 뭐냐. 사춘기 청소년이 야동 보는 심정도 아니고. 이게 뭐라고 이케 떨림???  설렘??? 내가 춤을 좋아했던가??  기억에 20 시절 나이트클럽이나 락카페를 다닌 경험은  손가락 안에 꼽는다. 지독한 몸치라 서서 박수만 치거나  추는 사람 보는 걸로 만족했던 사람이었다. 이혼 직후에트라우마 극복 차원에서 잠시 살사에 쳤었다.  6개월 발바닥을 비벼댄 적은 있으나 이렇게 까지 흥분된 적은 없었다.


아들이 오기 전에 한편이라도  보고 싶었다. 미친 존재감 뿜어내는 그녀들을 얼른 만나고 싶었다. 콩닥콩닥 나대는 심장을 진정시키고 숨죽여  시간을 즐겼다. 짧지만 강렬한  시간이었다. 아들이 돌아왔고 저녁을 차려주고 잠자리 독서를 서둘렀다. 평소보다 1시간은 일찍 재운  같다.


자, 다시 스우파를 만나보자. 은밀하게 위대하게.


새벽녘까지 그녀들의 영상을 섭렵했다. 순서도 뒤죽박죽이지만 그게 뭣이 중요한가. 내 심장이 아직도 뛰고 있는데.

 





새벽......폰을 끄고 생각에 잠겼다. 쉰둥이 아줌마가 스우파에 정신줄을 놓은 이유가 뭘까. 단순한 재미가 아닌 건 분명했다. 심장이 쿵쾅거려 머리카락까지 파르르 떨렸으니까. 나대는 심장에게 물어야 했다. 쉬이 잠들지 못하는 이 밤의 흥분이 무엇 때문인지.


나, 정말 늙은 걸까? 그녀들의 젊음이 부러운 거야? 그녀들의 열정?? 아니면 한도 초과된 자신감??


 이 모든 요소들에 얹어 한 가지 더 선명한 이유가 있었다. 내가 이 나이 먹도록 한 번도 가져보지 못한 눈빛이 그녀들에게는 있었다. 춤이 좋아 죽겠다는 그 눈빛. 춤을 추지 않고는 내가 아니라는 춤아일체의 마인드. 자신들의 삶에 춤이 존재했다는 걸 증명하듯 남기는 열정의 화상 자국 같은. 너무 사랑해서 서로의 몸에 문신을 남기듯 자신들의 삶 깊숙이 춤에 덴 상처를 남기는 집착 같은 거. 춤을 추면 세상에 무서울 것이 없어 보이는 그녀들. 그리하여 오랜 시간 주인공 뒤에 서서 스포트라이트를 양보하며 다져진 단단함으로, 그녀들을 알아주지 않던 엿같은 세상을 향해 다시 춤으로 당당하게 중지를 날리는 대범함.


스우파 그녀들을 보며 내가 흥분되고 설레었던 이유가 바로 이런 이유들이지 싶다. 나는  번도 가져보지 못한  모든 이유들.

이제서야 아이돌이 되겠다고 댄스학원에 다니며 여기저기 오디션을 보고 다니는 열여섯 조카의 마음을 알아버렸다.


나는 단 한번도 '내 일이 좋아 죽겠다. 이 일이 아니면 못 살 것 같다' 해본 적이 없다. 나에게 직업은 생계의 수단이지 애정의 대상이 아니었다. 늘 나의 욕망보다는 타인의 욕망에 기여하는 삶이 옳다고 착각하며 바보같이 살아서. 난 그녀들의 활화산 같은 열정이 무척 멋지다. 한도 초과되어 아무 때나 비집고 흘러나오는 자신감도 부럽다.


ADHD 아들 덕분에 오래간만에 가슴이 뛰었다. 그렇다고 당장 왁킹이나 팝핀을 배우겠다는  절대 아니다. 오우 ~ 생각만 해도 웃기다. 그녀들에게 2 볼트짜리 에너지를 받은 것만으로도 10년은 회춘한 듯하다. 짜릿한 일탈이었다.


그 뒤로 다시는 스우파를 보지 않는다. 끝내 아이키처럼 라틴댄스를 배우겠다고 수강증을 끊고 있을지도 모르기에.


>>>> 스우파 모니카 배틀

>>>> 스우파 헤이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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