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글씨 콤플렉스에 대한 자위였으리라
나는 글씨를 잘 못쓴다.
맞춤법도 자주 틀리고, 내 글씨를 다른 사람이 보는 게 싫었다.
알몸으로 세상 밖에 던져진 기분이랄까?
역설적으로 나는 펜 같은 필기구에 유난히 집착을 하게 됐다.
좋은 펜을 쓰면 창피한 내 글씨가 반듯해질 것 같은 근거 없는 믿음이자
나의 글씨 콤플렉스에 대한 자위였으리라
시간이 흘러 적절하게 값비싼 만년필을 살 수 있는 나이가 되자
내 집착은 좋은 종이에게 옮겨갔다.
종이 뒷면에 글씨가 비치지 않아야 하며, 거미줄 현상이 일어나지 않는 종이가 있어야만
만년필을 제대로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다이어리를 직접 만든다.
만년필에 잘 어울리는 좋은 종이를 구해서 직접 구멍을 뚫고, 다양한 양식에 맞춰서 인쇄를 한 후
나만의 바인더에 그 속지를 넣는다.
얼마 전 다이어리를 정리하다 보니 아무것도 쓰여 있지 않은 종이가 훨씬 많았다.
나는 글씨에 집착하고, 펜에 집착하고, 좋은 종이에 집착을 했지만
결국에는 아무것도 쓰고 있지 않았다.
어릴 때부터 누군가가 내 글씨를 볼 때 느꼈던 창피하고 불안한 마음이
누군가가 나의 펜을 만질 때 똑같이 느껴졌다.
그 불안한 마음은 나의 종이를 누군가가 볼 때도 마찬가지로 나타났다.
비록 그것이 아무것도 쓰여 있지 않은 종이일지라도 말이다.
나는 글씨가 창피했던 걸까, 아니면 글 속에 비친 내 마음이 드러나는 게 창피했던 걸까
좋은 글은 키보드가 아니라 잉크를 사용해서 쓰는 손글씨에서 나온다는
이상한 고집을 부린 내가 창피해졌다.
키보드로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쓸 수 있는 지금, 너무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