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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감자 Apr 11. 2022

04. 아빠의 차

아빠의 애착물


아빠는 자동차를 참 좋아했다.

남의 차나 비싼 자동차를 좋아한 게 아니라. 자기가 운전하는 자신의 차를 참 많이 아꼈다.

남들이 볼 때는 별 볼일 없는 차였지만 항상 차를 소중하게 생각했다.


아빠는 내 기억 속에서 좋은 드라이버는 아니었다.

항상 거칠게 운전대를 잡았고, 가능하다면 교통법규도 많이 위반을 했다.

적어도 내가 본 바로는 그랬다.

그 시절의 아빠들이 모두 그랬기 때문에 큰 잘못이 아니라고 정당화할 생각은 없지만

술을 마시고 운전대를 잡는 경우도 있었다.


나의 아버지는 운전을 업으로 삼는 사람이었다.

내가 아는 아빠의 첫 직업은 음료 배달 트럭 운전수이다.

아빠와 나는 정확히 30년의 나이차가 있기 때문에 아빠의 20대 후반 또는 30대였을 때 직업을 잘 알지 못한다. 또한 아빠가 그전에 어떤 직업이 있었는지

아니, ‘직업’이 있었는지 역시 모른다.


적어도 길에서 처음 만난 엄마에게 반해서 추파를 던졌을 때는 그 직업이었다고 들은 것 같다.

아빠는 엄마에게 잘 보이기 위해 엄마의 집에 음료수를 몇 박스씩 가져다주기도 했다고 한다.

음료 배달부가 어떻게 그렇게 음료수를 편안하게 사적으로 이용했는지는 의아스럽기도 하지만

그랬다고 한다.


그리고 내가 유치원을 다니고 있을 때는(엄밀히 말하면 어린이집이었던 것 같다. 내가 어릴 때는 어린이집과 유치원의 경계가 없었던 것 같다. 오히려 무슨 무슨 학원으로 많이 불렸던) 레미콘을 운전했다.

그 자동차의 이름이 트럭믹서truck mixer 라는 걸 얼마 전에야 알았다.

그게 나에게 가장 기억에 남은 아빠의 직업이었다.

그 시절에는 항상 어린이집이나 학교에서는 부모님의 학력이나 직업을 물어보거나 제출해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Photo by Mitchell Luo on Unsplash


아빠는 자신의 직업을 항상 ‘운전수’라고 소개했다.

선생님들은 도대체 어떤 운전수인지를 매번 물었고, 어느 순간부터 나는 아빠의 직업을 그냥 회사원으로 적거나 아예 회사 이름을 적어버리기도 했다. 지금도 내 아빠가 무슨 차를 운전하는지, 직업이 무엇인지가 왜 그렇게 중요했는지 모르겠다.


아빠는 평생 내비게이션의 존재를 어렴풋이 알았을 뿐이고

오토식 자동차를 운전한 시간은 6개월이 채 되지 않았던 것 같다.

직업의 특성상 전국 팔도를 몇 날 며칠 동안 내비게이션도 없이 표지판을 보고 다닌 사람이다.

그때 아빠와 함께했던 건 싸구려 테이프 몇 장과 심플 담배였을 테다.


사람은 저마다 자기가
가장 애착하는 물건이 있다.
나에게 한때 만년필이 그랬던 것처럼
아빠에게는 자동차가
평생 그 자리를 차지했다.

아빠가 돌아가셨을 때도 우리 가족이 가장 먼저 찾은 건 사라져버린 아빠의 자동차였다.

갤로퍼 숏바디 타입의 차였던 것 같다.

아빠는 소형 트럭, 대형 트럭, 레미콘 등 많은 차를 운전했다.

그 차가 아빠의 마지막 자동차가 되리라고는 아빠도 나도 생각해 본 적은 없었지만

운명이란 놈은 갤로퍼를 아빠의 마지막 자동차로 택했고, 아빠가 임종을 맞이하는 그 순간,

아빠의 곁에 머무르지 못하도록 했다.


아빠의 장례를 마친 후, 우리는 모두 그 차를 찾아 헤맸다.

그 차를 강탈 또는 훔쳐 간 놈이 누구인지는 알았지만 그놈에게서 아빠의 차를 찾아오는 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우리는 다른 모든 죄를 묻지 않을 테니 제발 차를 돌려달라고 애원했고, 부산의 어느 강변에 방치되어 있는 아빠의 차를 되찾아왔다.

차를 찾아서 가져온 작은 아버지는 부산에서 진주로 운전 해오는 길에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어느 때인가 아빠가 낡은 왜건 차량을 가지고 온 적이 있다.

그 차는 내 아버지의 평생에서 유일한 오토 자동차였고 아빠답지 않게 작고 아담한 차였다.

사실 볼품없는 자동차였다.

그날 아빠와 동네 마트를 같이 갔었다. 뭘 사러 갔는지도 기억이 안 나지만 그날 내가 엄청 투덜댔던 기억은 난다.

아빠가 내가 제일 싫어하던 마트 입구에 파는 싸구려 옷을 이리저리 살피며 나에게 권했다가 거절당한 기억도 나고, 무엇보다 차에 올라타던 아빠와 했던 대화가 기억에 남는다.

아주 잠깐 타는 자동차라고 했다. 실제로 얼마 지나지 않아 아빠의 차는 갤로퍼로 바뀌었다.

아빠는 나에게 열심히 살겠다는 다짐을 했다. 실제로 열심히 살지 않은 시간이 많았기에 아들에게 그런 다짐을 종종 하던 아빠였다.

열심히 일을 해서 다시 좋은 집으로 이사도 하고, 차도 큰 차를 살 것이라고 했다.

그때가 되면 이 차는 내가 타라고 했다. 나는 웃으며 이런 차로 되겠느냐, 나는 더 좋은 차를 탈 것이라고 말했고 아빠는 크게 웃었다.


아빠는 분명 웃었다. 조금의 불편함이나 거부감이 섞이지 않은 웃음이었다.

가끔 그때 내가 한 말이 후회 된다.

열심히 살겠노라 아들에게 다짐하고 있는 아버지를 상대로 앞으로의 나는 지금의 당신처럼 살지 않겠다는

다짐 같은 기분이 들어서다.

분면 내 머릿속에는 그런 생각이 있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그것을 알기에 당시의 내 말이 악의가 없었더라도 계속 떠오르고 미안한 생각이 든다.


사람은 저마다 자기가 가장 애착하는 물건이 있다.

나에게 한때 만년필이 그랬던 것처럼 아빠에게는 자동차가 평생 그 자리를 차지했다.

아빠가 모셔진 납골당에 걸려 있는 음료 배달을 할 때 아빠와 자동차가 함께한 사진과 우리가 힘겹게 찾아낸 아빠의 자동차 독사진을 볼 때면 아빠에게 자동차가 어떤 의미였는지 생각해 보곤 한다.


어쩌면 아빠는 외로웠던 것 같다.

자동차가 아빠에겐 유일한 안식처이자 친구였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내 머릿속을 가득 채우곤 한다.

그럴 때면 조금은 불편한, 어쩌면 안타까운 마음이 들고는 한다.


지금 아빠의 곁에는 우리가 없다.

우리의 곁에도 아빠는 없다.

30년 전에 돌아가신 할아버지를 만나고 있을까?

아빠는 그곳에서 할아버지를 태우고 하루 종일 운전을 하고 있을까?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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