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문화재단의 2021년 <창의예술교육랩 지원사업>은 4차산업혁명 시대를 맞이하여 문화예술교육의 패러다임을 전환하는 콘텐츠 모델을 연구‧개발‧실행하고자 기획되었습니다. 작년 AI(인공지능) 기반의 과학기술과 지역문화예술인 부산농악을 접목하여 빚어내어 <AI 농악> 프로그램을 개발했다면 올해는 이를 교육 현장에 접목, 확산시킬 것입니다. 이에 다양한 영역의 전문가들이 다시 한 번 의기투합하여 모였습니다. 브런치에서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에듀테크(edutech)를 구현하는 지난한 과정이 어떻게 나아가고 기록되는지 지켜봐주시기 바랍니다. 부산문화재단은 시민 여러분의 새로운 사고를 일깨우고 행복을 제공하는 데 보탬이 되겠습니다.
교육 현장에서 리터러시(literacy)란 말이 급부상하고 있습니다. 리터러시란 읽고 쓰는 능력, 문해력을 가리킵니다. 이는 단순히 문자화된 기록물을 이해하기 위한 개념이 아닙니다. 오늘날 기표는 언어와 같은 활자 텍스트뿐 아니라 다양한 형태로 코드화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림, 광고, 뉘앙스, 코딩언어, 서브텍스트 등 과거와 달리 세상은 복잡한 커뮤니케이션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잠깐 거리를 걸어도 온갖 언어와 소리, 이미지가 우리를 자극하는 오늘날입니다. 이 소음들 속에서 본질을 구분하고 받아들임으로써 현상에 적응하고 대처하는 교육이 필요합니다.
지난 브런치에서 부산문화재단 창의예술교육 랩(이하 창의랩)은 지나치게 추상적이거나 반대로 즉물적인 교육에서 벗어나 사물의 현현과 본질을 동시에 다루는 교육을 추구하고자 하는 문제의식을 밝혔습니다. 오전에 이어 오후 회의에서도 연구진은 교육을 위한 교육이 아닌 참된 깨침을 위해 다양한 콘텐츠의 옥석을 가려내고자 합니다.
남서아 네. 다시 회의로 들어가보겠습니다.
김태희 오늘은 구체적인 프로그램의 디테일을 만들어내주셔야 합니다. 못하면 오늘 집에 못 갑니다. (웃음)
최윤정 저는 저번 회의 때 낸 아이디어를 조금 쳐내보았습니다. 새로운 <AI 농악>의 레벨 1로는 ‘놀이로 배우는 부산농악’이라 일단 이름 지어봤는데요. 카드놀이라든지 방석놀이를 활용해 학생들이 몸으로 농악을 배우면 재밌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또 농악의 개념을 배우는 것도 좋지만, 연주하는 내 모습을 상상해보는 것도 유의미할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공연자로서 자신의 모습을 형상화하는 콘텐츠를 고안해보았습니다. 조그마한 농악 공연장을 구현해서 옷 있는 방법이나 상모를 쓰고 돌리는 법 등을 한번에 배우는 것이지요.
레벨 2는 ‘언플러그드 코딩을 이용한 부산농악’이라 지어봤습니다. 두 게임으로 나누어보았는데요. 하나는 햄스터 로봇이 라인을 따라가게끔 만든 다음 그 흔적을 코딩으로 따라함으로써 코딩 개념을 이해하는 게임입니다. 다른 하나는 악기 소리를 형상화하는 것입니다. 선과 색을 사용해 악기 소리를 이미지로 나타내는 것이지요. 컬러 점토를 사용해서 입체로도 만들어보고요.
발표 중 최윤정 공동연구원은 현대자동차의 광고를 예시로 들고 왔습니다. 진동을 통해 음악을 들을 수 있게끔 하는 놀라운 의자인데요. 이는 저번 회의에서, 사물에 무엇을 더하냐에 따라 정체성이 달라지게 된다는 김태희 책임연구원의 견해와 완벽히 일치합니다.
최윤정 보시는 영상은 청각장애인이 음악을 느낄 수 있게끔 진동이나 음파를 활용한 의자예요. 또 피쳐링 뮤직시트라고 해서 못 듣는 분들이 뮤직시트를 통해 음악을 즐긴다고도 하더라고요. 이런 식으로 감각을 다른 감각으로 전환하는 방식을 접목하면 어떨까 해요. 징이나 꽹과리, 소고 같은 음역대를 그림으로 구분해 그래픽 로테이션을 활용하면 좋겠거든요. 청각을 형상화하는 것이지요. 실제로 인공지능의 원리에도 이처럼 데이터를 단순화하거나 패턴화하는 과정이 있잖아요?
김태희 맞습니다. 지금 말씀해주신 부분이 AI하고 아주 밀접하게 연결된 데이터 이해 방식입니다. 스펙트럼 프로그램을 말씀하셨는데, 소리가 그림의 시퀀스로 형상화될 수 있다고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굉장히 의미 있는 교육이라 생각합니다. 데이터 개념을 이해하는 것이지요.
한 가지 덧붙이자면, AI가 징이나 꽹과리 소리를 인식할 때 그 모양이 다르게 표현되잖아요? 컴퓨터 내부에서 소리를 표현하는 색깔 등이 어떻게 다른지 확인해서 분리를 하는 것이지요. 소리를 통해서 데이터 개념을 이해하고, 그럼으로써 컴퓨터 논리체계를 경험시켜주는 것만으로도 괜찮을 것 같아요.
최윤정 네. 소리를 그림으로 그리는 등 음악을 형상화하는 과정이 그래서 필요할 것 같아요. 이처럼 데이터를 분류하는 것이 인공지능의 사고방식과 유사하다고 설명하기만 해도 학생들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지 않을까 합니다.
김태희 하나의 형태(Form)에서 다른 형태로 거듭나게 하는(Transformation) 측면은 사실 아주 예술적이라 할 수 있지요. 여기서 한 발짝 더 전진해서 AI가 표현한 스펙트럼을 다시 최초 소리와 비교해볼 수도 있겠고요. 이런 과정이 창의적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소리는 사실 운동이지 않습니까? 소리는 시간에 따라 변하는 데이터인데 이를 직관적으로 표현하는 AI를 통해 우리가 현상을 어떻게 리터러시할 것인가에 대한 교육적 측면이 분명 있을 것이거든요.
최윤정 그래서 학생들에게, 인공지능이 데이터를 이렇게 변환한다는 것을 설명해줘야겠지요.
김태희 보일러를 예로 들어볼까요. 집의 온도에 따라 보일러가 반응합니다. 온도가 높으면 높은 대로, 낮으면 낮은대로 구분하여 시스템이 하나의 일정한 온도 상태를 유지해줍니다. 그런데 이 원리를 그림으로 표현하면 부산농악의 진법과 비슷하지 않습니까? 어떤 진법을 펼치냐에 따라 사람들이 이곳에서 저곳으로 패턴을 그리며 이동하는 것이지요.
정만영 전자음악에서는 악보에 콩나물이 없어요. 스펙트럼이나 기울기 같은 형식이 차라리 있지요. 형식이 굉장히 다양한데요. 일테면 백남준은 머리카락을 붓 삼아 잉크와 토마토 주스를 섞은 물감으로 악보를 그렸거든요.
김태희 말씀하신 데서 한 가지 첨언해볼게요. 바로 저런 지점에서 Form의 개념이 중요합니다. 소리가 특정한 형태가 되고, 다시 소리로 되돌아오면 하나의 사이클이 만들어지지 않습니까? 우리가 주도한 변환 과정을 통해 다시 음악으로 돌아온 부산농악은 세상의 것과 분명 다를 텐데 어디에서 연관성이 있을지 그런 의문을 품을 수 있겠지요.
연구진 괜찮은 생각입니다. 소리를 듣고, 다시 그림으로 표현한 것을 또 음악으로 표현한다….
김덕희 이번에는 제가 발표해보겠습니다. 레벨 3까지는 학교 보급을 염두에 두었습니다. 그래서 게임에 필요한 재료와 교안을 데이터로 제공하여 각 학교 선생님이 출력하고 가공할 수 있게끔 가이드라인을 짜고자 했습니다. 그러려면 교안이 심플해야 하므로, 피지컬 컴퓨팅은 아예 생략해보았습니다.
김덕희 AI 사고방식을 읽어내는 리터러시와 관련한 게임만 러프하게 설명드리자면요. 탈출 게임의 경우 저번에 설명드린 대로, 5명이 모인 한 팀이 육성으로 ‘장구’, ‘북’ 등을 외쳐 오리를 이동시키는 게임입니다.
그리고 보드게임은 각 팀이 주사위를 던져 타일을 모은 다음 그 경로 타일을 활용해 최단거리를 달려, 특정 농악기에 대한 악기채를 획득하는 게임입니다.
그리고 분류 게임을 추가해보았습니다. 여러 가지 분류 기준 카드와 그림 카드를 통해 답을 유추하고, 결과적으로 농악의 아이콘인 꿩을 찾는 게임입니다.
이 모든 게임이 답을 찾아나섬으로써 다양한 질문에 대한 문해력을 키울 수 있을 것입니다.
김보람 한편으로는 여러 레벨, 스테이지를 어떻게 하면 유기적으로 이어지게 할 것인지 싶습니다. 처음 스테이지 1에서 퍼즐이나 진법을 맞춰서 획득한 보상이 스테이지 2에서 활용할 수 있도록 그러한 키트가 필요할 듯한데요. 그런데 이 페스티벌에 모든 콘텐츠가 다 전원을 꽂아야한다는 점이 보급에 큰 걸림돌이라고 생각해요. 소형화, 경량화해야만 교안을 보급이 가능한 모습으로 탈바꿈시킬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남서아 그것도 맞는 말씀입니다. 어쨌든 이번에는 기존 <AI 농악>을 교안의 형태로 보급하는 것이 하나의 목적이니까요.
김덕희 그런 점에서 유저가이드가 확실해야겠어요. 경량화와 더불어 모든 레벨의 교육에서 추구하는 의미가 이어지도록요. 일테면 과일에 전기가 통하는지 알아보는 실험을 같이 할 때, 여기서 과일을 농악에서의 풍년을 기원하는 그런 의미로 견인할 수 있지 않을까요?
최윤정 네. 학교 현장에서는 오렌지나 바나나와 같은 과일에다 메이키메이키 키트를 사용해 실험하는데, 단순히 전기가 통하는지 그렇지 않은지를 구분하기 위한 의미로만 활용하고 있는 듯해요. 우리가 교안에 의미를 확실히 부여할 수 있으면 참 좋겠습니다.
김태희 이제 실제로 뭔가를 만들어봐야 할 텐데, 교안에 의미도 동시에 부여해야 하는 어려운 작업이 되겠네요. 일단 당장 얘기하신 것들을 만들어야 하는 만큼 필요한 재료를 각각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남서아 추후 재료를 어떻게 분배하실지 알려주시면 정리해보겠습니다. 오늘 회의는 여기까지 하면 어떨까 합니다.
장시간에 걸친 긴 회의 끝에 연구진은 자리를 파했습니다. 교육의 본질을 추구하겠다는 마음을 다잡는 것과는 별개로 교육 콘텐츠의 현현을 위해 이제 각자 자리에서 놀이 형태의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합니다. 모쪼록 <AI 농악>을 즐기는 아이들이, 갖가지 레벨의 문제 앞에서 고유한 리터러시를 키울 수 있었으면 합니다. 어쩌면 그러기 위해서는 키트를 경량화할 뿐만 아니라 덩어리진 아이디어를 간추려서 심플한 형태로 탈바꿈시켜야할지도 모릅니다. 또 그래야만 보편적인 콘텐츠로 거듭나 다양한 학교에 한 가지 대안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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