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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백설기 Dec 19. 2022

백마강 사람이 물을 무서워하랴

나를 살리는 추억에세이 쓰기. #1


나는 오리지널 백마강 사람이다. 백마강변에서 태어나 강둑을 마당 삼아 성장기를 보냈고, 지금도 부모님은 백마강 변의 어릴 적 동네에 사신다.


나는 수영을 아예 하지 못한다. 어쩌다 방문하는 호텔에서도 수영장은 알아볼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그저 잠이나 얌전히 자고 올뿐이라서 수영장 소독용 염소 값은 빼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학생 때인가 가족들과 대천해수욕장에 갔다가 무릎 높이 물속에서 빠져 나 죽는다고 허우적댔다. 큰일이라도 난 줄 알고 첨벙첨벙 구하러 온 오빠는 황당해서 실소를 터뜨렸다.       


내 고향 충남 부여는 고도(古都)가 주는 고풍스러움과 우아함과는 달리 매년 여름마다 두세 명은 족히 죽어나갔다. 백마강이다. 얼핏 보아도 강 모양이 S자로 굽어있고 강심(江深)이 깊어 사람이 빠지면 여간해선 찾기 힘들었다.


홍수가 나는 여름이면 할머니들이 봄부터 강이 우는 소리가 난다고 했다. ‘우~~’ 소리가 난다고 하는데 내 귀에는 그저 바람소리 같았다.     

   

집에서 강둑까지의 거리는 엎어지면 코까지는 아니어도 머리카락이 닿을 정도였다. 집을 벗어나 강아지풀 두어 개 뜯고 나면 딱 강둑 앞이었다.


강둑 바로 밑에 사는 날다람쥐 육촌 남동생은 사흘이 멀다 하고 작은 아빠에게 매를 맞았는데 잽싸게 강둑으로 뛰어오르면 찾기가 힘들었다.   

      

더운 일요일로 기억한다. 오빠와 버스 뒷자리에 앉아 부여 시내에서 백마강 다리를 건너 집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앞자리가 웅성거렸다.


다들 다리 아래를 내려다보며 한 마디씩 거들었다. 호기심에 찬 오빠와 나는 사람들을 따라 버스에서 내려 강성으로 향했다.      


어른들 틈을 헤치고 나아가자 어떤 신기한 형태가 보였다. 누워있는 사람은 동작이 정지된 듯 보였다. 허공으로 들뜬 다리는 마치 동태처럼 굳어있고 허옇다 못해 파란 피부는 군데군데 상처가 나있었다.


짧은 순간 너무 자세히 본 것일까. 지금도 그릴 수 있는 선명함은 내가 처음 만난 ‘살아있는 죽음’이었다.     


집으로 돌아가니 옆집 강 이장님 댁에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엄마는 아빠가 우릴 찾는 전화를 하셨다며 그런 걸 왜 보러 갔느냐고 하셨다. 서울에서 체고를 다니는 이장님 댁 오빠는 키가 훤칠한 농구선수였다.      


여름방학 친구들과 내려와 백마강에서 손에 익은 농구공으로 수구를 한다는 게 그만. 다리 아래서 만난 사람은 친구였고, 옆집 오빠는 동네 어른들이 밤을 새워 겨우 강어귀에서 찾아냈다.      


엄마가 형님이라고 부르던 이장님 댁 아주머니는 한동안 볼 수 없었다. 나는 사람이 그처럼 참혹한 일을 당하면 살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 압도적 슬픔에 나 혼자 사로잡힌 채 옆집을 건너다보곤 했다.


수년이 흐른 어느 날 마루에서 “안에 있어?”라는 소리에 문을 열자 빨간 관광 모자를 쓴 아주머니가 계셨다.


 “아버지 계신 감?” 우리 아빠는 여행사를 하셨다.

아주머니는 얼마 후 아빠와 동네 사람들과 단체관광을 떠나셨다. 그제야 마음속 슬픔의 감옥에서 아주머니를 내보내드렸다.      


여름의 백마강에서 유명을 달리한 사람 중에는 오빠 친구도 있었다. 왜 그런 별명은 지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똥배라고 불리던 그 오빠. 사람 좋던 웃음과 뺨의 여드름이 어렴풋이 기억난다.


순한 사람들은 왜 물을 택하고 마는가.    

  

홍수가 나던 어느 해에는 난생처음 피난짐을 쌌다. 전기가 나가버려 어두컴컴한 집안에서 엄마와 아빠는 보따리를 꾸렸다. 그칠 줄 모르고 내리는 비가 백마강 둑을 넘으면 우리는 피난민이 되는 것이다.


어둑한 조명과 동네의 뒤숭숭한 분위기 속에서 나는 비현실적인 설렘에 사로잡혔다.     


드라마에서나 보던 피난을 우리도 진짜 간다는 것인가. 당시 드라마나 영화에선 한국전쟁의 피난 풍경이 자주 나왔는데 꼭 사랑은 그런 데서 싹트더라 이거다.


불행히도 둑은 넘치지 않았고 엄마는 쌌던 짐을 도로 풀었다.      


대신 오빠와 난 둑에 올라가 장엄한 홍수의 뒤끝을 구경했다. 구름이 강에 얹혀 둥둥 떠오듯 강은 하얀 부유물로 가득했다.


누구는 돼지가 떠내려 오는 것도 봤다는데 소도 떠내려 올 판이었다.       


강은 그렇게, 물은 그렇게 내게 생의 전부를 한꺼번에 삼키는 초월적 존재로 남았다. 시간이 갈수록 공포는 증발하고 내 삶에 나만의 백마강을 있었음을 이 글을 쓰며 기쁘게 발견한다.


백마강(출처:부여군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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