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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움을 청하는 목소리


도움을 청하는 목소리


어느 날, 협회에 익숙하지 않은 목소리로부터 연락이 왔다. "저 좀 도와주세요"라는 그의 표현은 담백하면서도 절박했다. 일반적으로 긴급상황에서 청년들이 연락을 주면, 우리 협회는 즉각적으로 긴급 지원금을 지원하곤 한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르게 느껴졌다. 그의 목소리는 평소 도움을 청하는 청년들의 말투와 달랐다. 보통 지원금을 요청하는 이들의 목소리는 힘이 빠지고 뭔가 모르는 부끄러운 듯하다. 그런데 이 청년은 당당하면서도 극도로 절박했다. 필요한 도움이 무엇인지 물었을 때, 그는 돈이 아닌 장학신청서 작성을 위한 보호자가 되어달라는 도움을 청하였다.


그는 보육원을 떠나고 나서, 장학금을 받기 위해 한 자선단체에 신청서를 제출하고 있었다. 지냈던 보육원에 도움을 청하면 안 되느냐는 나의 질문에, 그는 "그곳의 선생님들이 싫어하니까요"라고 대답했다. 그런 청년의 대답은 나를 놀라게 했다. 일반적으로 보육원은 청소년들이 퇴소 후 5년 동안을 신원 보증을 책임져야 한다. 물론 그 범위나 수준은 담당 선생님에 따라 그 정도가 크게 다르다. 그와의 대화를 통해, 퇴소한 보육원의 선생님들이 자신들의 역할을 넘어선 책임은 피하고 싶어한다는 것을 느꼈다.


그가 보육원에서 퇴소한 후 보육원과 어떤 관계를 유지했는지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알 수 없다. 하지만 장학금 신청서에 보호자가 될 수 없다고 이야기한 것에서 어느 정도 예측해 볼 수 있었다. 장학증서에는 자기소개와 앞으로의 진로 및 각오 등을 적는 항목이 있는데, 그것을 확인해줄 사람이 없는 것이었다. 사실 협회에는 이런 요청이 들어온 것이 처음이어서, 시설을 대신해 확인해줄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그는 시설에서 그를 도와주지 않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욕까지 먹었다고 말했다. "니가 무슨 그런 장학금을 받아. 신청해도 안 될 거야. 만약 받아도 넌 아무것도 못 할 거야." 그 시설의 보육사들은 그가 게으르고 소통이 부족했다며 그를 믿지 않았다고 한다. 나는 청년의 이야기가 지극히 공감되었다. 나 자신도 비슷한 상황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단체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면, 사회생활도 어렵다는 편견에 자존감을 잃은 적이 많다. 하지만, 그 청년은 조금도 꺾임 없이 스스로 장학금을 신청하려 했으며, 그렇기에 우리 협회는 그를 돕지 않을 수 없었다.


몇 차례 상담을 거쳐 그의 신청서를 추천했다. 도와준 것은, 몇 차례의 상담과 신청서를 확인하고 도장을 찍어준 것에 불과했지만, 그 청년은 그것에 크게 감사하였다. 결국, 그는 몇 백만 원의 장학금을 받아 해외 유학의 길에 오르게 되었다. 그는 도움을 청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새로운 길을 개척하려는 의지를 보인 것이다. 그런 그의 앞날을 기대해 본다.


이 일을 통해 보육원을 비난하고 싶지는 않다. 그들의 상황과 그에 따른 인식이 그들의 행동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그저 모두가 처한 현실이 도와줄 수 없는 상황을 만들어냈음에 대해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 한편으로는, 협회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나아가 보육원과 민간단체가 함께 청년들의 자립을 준비하고 돕는 것의 중요성을 다시 인식하게 되었다. 보육원에는 그들만의 역할이 있고, 민간단체에도 그들만의 역할이 있는 법이다. 이 두 부분이 잘 조화되어야 청년들이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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