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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업번역가 May 04. 2021

재수없는 번역가의 온기가 남아있는 글입니다

훈수두는 번역가

옛날에 썼던 글을 다시 보다가, 내가 너무 재수 없어서 비명을 질렀다. 회사와 번역을 멋지게 해내는 나에 취해도 너무 취했다. 글만 보면 지금쯤 유퀴즈에 나오거나 테드 강연대에 서 있어야 할 것 같다. 나보다 훌륭한 번역가들이 넘쳐나는데 무슨 짓을 한 거람. 하지만 유퀴즈에서 불러준다면 어쩔 수 없이 나가 볼까. DM주세요(찡긋).


세상을 살아가는 데는 자신감이 필요하지만, 자신감이 지나친 사람은 재수 없다. 재수 없는 사람을 마주하면 3년, 5년, 10년이 되어도 자꾸 그 사람을 욕하게 된다. 음, 또 누군가 생각나는군. 손가락이 근질근질할 땐 카톡창으로.


내가 싫어하는 남의 단점은 바로 나의 단점이라는데,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나는 조금만 잘 되면 심하게 우쭐하며 재수 없어진다는 단점이 있다. 번역가로서 제일 재수 없던 건 아마 데뷔 후 1년~2년 즈음이 아니었을까 한다. 아카데미를 졸업하기도 전부터 번역일을 받았고, 업체도 뚫었고, 회사를 다니면서 번역도 해냈으니까 주변에서는 다들 대단하다는 칭찬 일색이었다. 어깨는 점점 높아졌고 승모근이 치솟아서 숄더백도 못 드는 몸이 됐다. 번역을 하고 싶다는 사람한테 하찮은 조언도 참 많이 했다. 이 정도는 해야지. 이런 각오를 하고 뛰어들어야지. 그건 진정한 번역가의 자세가 아니얏!


영화 쪽 일을 할 때 만난 분이 해 준 이야기가 있다. 한 번역가에게 작품을 의뢰하며 미팅을 하는데 그 번역가의 발언이 다른 번역가를 깎아내리는 식이었다고 한다. 그리고는 납품한 번역물은 '그렇게까지 잘하지도 않은' 수준이었다고. 번역을 잘하지도 않으면서 왜 그런 말을 했대, 싶었는데 어쩌면 그 번역가는 자신의 실력을 자신 있게 어필하면서 나름 최고의 번역을 납품했던 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래 봤자 상대방이 보기에는 경솔한 언행이고, 이미 깎여나간 인상을 회복할 정도는 아니었던 거다.


번역가로 일을 하려면 자기가 잘하고 있다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업체의 피드백 한줄에도 와르르 무너져 어렵사리 데뷔한 길을 그대로 포기해버리기도 하니까. 침대에 누워 눈물을 훔치며 내 주제에 번역은 무슨. 컴퓨터 활용능력 자격증이나 따자, 흑흑. 이러는 거지.


하지만 나에 대한 내 믿음을 남에게 강요하면 안 된다. 이걸 자신감으로 받아들일지 재수 없음으로 받아들일지는 상대방이 결정한다. 자신감으로 봐주었다면 내 번역도 그렇게 봐줄 테고, 재수 없음으로 봤다면 앞으로 함께 일하기는 힘들겠지. 그래서 나는 재수 없는 짓을 잔뜩 저지른 후에 다음에는 그러지 말자며 이렇게 반성의 시간을 가진다. 진짜 부끄럽고 미칠 것 같지만, 매일 햇빛과 함께 비타민D를 쬐며 이겨내려고 하는 중이다. 하, 참으로 재수 없었던 나... 나대지 말자, 나야. 자신감과 재수 없음은 동의어가 아니며, 사회에서는 겸손함이 당당함을 만든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지.


근데 이러고 또 얼마 뒤면 나댈 듯. 갤럭시 워치에 나댐 방지 기능이 있어서 나댐의 심박수를 체크해 살짝 전기자극으로 알려 주면 좋겠다. 삐빅- 재수털리시네요, 키보드를 압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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