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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래동 키키팬 Nov 09. 2020

05.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벌써 1년 전이다. 콩이를 문래동에서 처음 본 그때가. 나는 모든 계절을 온도로 기억한다. 집을 나서자 낯선 추위가 피부를 스치고, 어제와는 완전히 다른 세상으로 발을 내디딘 것만 같은 그런 온도. 가을은 이미 곁으로 성큼 다가왔고, 바쁘게 살던 내가 그 사실을 뒤늦게야 깨닫는다. 직감으로 그 계절이 다가왔음을 깨닫고, 달력을 보면 어김없이 11이란 숫자가 보인다. 나에게 가을이란 그런 계절이다.


콩이의 '캣파더'로 살아온 지 거진 1년이 지났다. '캣파더'라는 말에는 논란이 있을 수 있다. 무엇보다 나는 슬하에 자식도 없으며 기혼이 아니다. 그렇다고 스물일곱이란 나이는 어딜 가서 젊다고 말하기엔 뭐하고, 아주 어른인 행세를 하기엔 조금 민망한 나이다. 물론 나도 젊게 살고 싶다. 하지만 요즘은 어딜 가든 나를 꼭 아저씨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있는 탓에, 정말 내가 아저씨가 되어버렸나 싶은 생각도 든다. 지금 나는 '캣엉클'과 '캣파더' 그 사이 어딘가의 시간을 살고 있다. 사실 요즘 소설 초안을 궁리하느라 면도를 거의 못하며 사는 나의 거울 속 모습은 후자에 가깝다. 이런저런 사정을 종합해, 양심상 스스로를 '캣파더'라고 부르기로 한다.


콩이가 나를 보자 황급히 일어선다

요즘 콩이가 밥을 잘 못 먹고 다님을 직감으로 느낀다. 문래동 주민들이 날씨가 추워진 탓에 집 밖을 굳이 나서 콩이의 먹이를 챙기지 못하는 탓도 있을 테다. 나 또한 집 밖을 나서면 어느덧 너무나 추워진 날씨에, 옷깃을 여미고 몸을 웅크리고는 목적지를 향해 앞만 보며 걷는다. 이럴 때는 항상 주변에 추위 속에서 소외되는 이는 없는지를 떠올려야 한다. 추위는 모든 이들의 시야를 좁히고, 자신의 둥지 안에서만 웅크리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원래 콩이와 나의 관계는 논란의 여지가 없는 '갑-을'의 관계였다. 사실 고양이와 모든 인간의 관계는 갑-을 관계다. 가을이란 계절은 이 관계를 완전히 역전시킨다. 귀가하는 나를 보면 콩이는 황급히 일어나 다가온다. 혹시나 내가 먹을 것을 주지는 않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나는 거의 대부분 빈손인 때가 많다. 고용보험 피보험자격을 상실한 자의 지갑은 급격히 얇아졌고, 추위에 그가 꽁꽁 여매는 것은 겉옷만이 아니다. 그럼에도 집으로 들어서는 나를 바라보는 콩이의 눈빛을 보면 언제나 지갑을 열까 말까 고민이 든다. 고양이의 눈빛은 강제성 없이 사람들에게 돈을 갈취하는 합법적인 무기다.


오늘은 그 고민이 한계에 다다른 날이었다. 나에게는 조금 비싼 마일드 참치캔 한 통을 사들고 귀가했다. 단지 배고픈 콩이를 위한 마음만은 아니었다. 퇴사를 하고 요즘 부쩍이나 공허한 마음이 증폭했는데, 그 빈 공간을 무언가 의미 있는 순간들로 채워 넣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순간 콩이의 눈빛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집에서 작은 잔에 물을 채운 뒤, 참치캔과 함께 콩이의 앞에 놓았다. 콩이는 배가 무척이나 고팠는지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다. 참치의 살점들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콩이는 오래간만에 포식해 만족한 듯한 모습이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고 진짜 '아빠'가 된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우리의 부모님들은 흔히들 그러지 않았던가, 너네들 먹는 모습만 봐도 나는 배부르다고. 나는 그 말이 전래동화처럼 아주 오래전부터 전해져 내려온, 부모가 되면 가장 처음으로 배우는 그런 거짓말은 아닐까, 하고 늘 생각했다.


직장에 다니던 내 아빠도, 아들에게 그 흔한 애정표현도 거의 하지 않던 그 무뚝뚝한 경상도 남자도 가끔은 손에 무언가를 들고 귀가를 하는 날이 있었다. 아빠가 도어록의 번호들을 누르는 속도가 느린 경우는 딱 둘 뿐이었다. 새벽 늦게 술에 취해 귀가하거나, 아니면 손에 무언가 먹을 것을 들고 있거나. 대체로 전자의 경우들이 압도적으로 많았지만. 나는 콩이를 보며 그런 아빠에 대한 기억이 문득 들었다. 이제는 거의 없는 몇 안 되는 아빠에 대한 기억 중 하나의 파편.


어느덧 얼굴을 못 본 지 딱 10년째 되는 남자. 아내와의 결혼 생활이란 결코 저렇게 해서는 안된다는 교훈을 몸소 자식들에게 알려준 그 남자. 콩이가 참치캔을 바닥까지 싹싹 비우는 모습을 보면서, 갑자기 왜 그에 대한 기억이 떠오른 지 나는 알 수 없다.




가을이란 계절은 나 자신 속에 몰래 숨어있던 공허함을 깨닫게 만든다. 그런데 가을이 지닌 의미는 꼭 그것만은 아니다. 가을은 그동안 미처 알지 못했던, 다른 누군가의 안에 있던 공허함도 깨닫도록 만든다. 가을이 공허함의 계절로 불리는 까닭은 그 때문이 아닐까, 나는 콩이의 빈 참치캔을 보고 그런 생각을 했다.


추위는 모든 이들의 시야를 좁히고, 자신의 둥지 안에만 웅크리도록 만든다. 이럴 때는 기를 써서라도 주변 누군가에 대한 따뜻한 기억을 떠올려 내야만 한다. 기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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