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아이 친구 엄마는 내 친구가 아니다
<전편에 이어서>
그렇다면, 나는 그 엄마가 나와 성격이 잘 맞지도 않고, 또 그 성격이 별로라고 생각했음에도 왜 계속 어울렸던 것일까?
처음엔 내 아이를 위해서 내가 그랬던 거라고 생각했다. 미취학 아이들의 경우 요즘은 거의 엄마 친구가 아이 친구가 되는 분위기고, 놀이터에서도 무리 지어 있는 아이들을 보면 죄다 엄마들 틈바구니에서 노는 아이들이었으니까. 내 아이가 혼자 놀이터에서 노는 것보다는 여럿이 어울리며 노는 것이 아이의 '사회성' 발달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이었다.
그런데 오랜 시간이 지나고 다시 그 시절을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내 아이를 위해서라는 것은 핑계일 뿐이고, 그냥 내가 외로웠고 친구가 필요해서였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었다. 외로움이 더 크다 보니 누구든 필요했고, 비록 나와 잘 맞지 않는다고 해도 옆에서 몇 마디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에 위안이 되었던, 스스로가 참 안쓰러운 지난날이다.
나는 첫 아이를 임신 했을 때 회사 일로 인한 스트레스가 너무 심해서 임신 중간에 일을 그만두었다. 그리고 두 살 터울로 두 아이를 낳아 길렀는데, 최소한 아이가 3살까지는 옆에 있어 주고 싶다는 생각에 어린이집도 최대한 늦게 보내며 아이를 돌봤다. 그러다 보니 동네에서 만나는 사람이 거의 없었고, 남편이 집에 오기 전까지 아이를 제외하고 일반 성인과 한 마디도 나누지 않는 날들이 많았다. 처음엔 그렇게 조용한 삶이 참 좋았다. 그런데 역시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어서 그랬는지, 갑자기 사무치게 외로운 순간이 찾아왔다.
아이가 3살 이후에 어린이집에 다니면서 알게 된 아이 친구 엄마들과 내가 먼저 나서서 관계를 맺기 시작한 것도 그 이유 때문이었다. 서로 집을 왕래하고, 아이를 데리고 키즈카페를 다니고, 맛집을 다니는 시간이 내겐 신세계 같았다. 일대일로 마음에 맞는 아이 친구 엄마와 어울리면서 확실히 난 덜 외로웠고, 친구 같이 느껴져서 하루하루가 참 행복했다. 그런데 좋은 사람들은 곁을 빨리 떠나간다고 했던가. 마음이 맞아서 더 많이 어울리고 싶었던 아이 친구 엄마들이 하나둘 이사를 갔다.
그러면 난 또 새로운 관계를 만들었다. 사람을 보고 관계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관계가 필요해서 만남을 가지는 그런 종류의 인간관계였다. 그때 알게 된 엄마가 바로 그 사람이다. 우연히 동네 놀이터에서 알게 되었고, 아이 나이가 같아서 가끔 교류를 하다가, 본격적으로 두 아이가 같은 기관에 다니게 되면서 급 친하게 된 경우였다. 나보다 나이도 어리면서 나에게 '누구 엄마'라고 아무렇지도 않게 부르던 여자랑 친하게 지낼 생각을 하다니, 지금 생각하면 나의 어리석음에 화가 나서 자다가 이불 킥을 몇 번 할 일인데도 말이다.
그때는 엄마들 세계에 대한 경험이 없다 보니 그냥 그러려니 받아들였다. 주변에서 나보다 나이 많은 언니들이 비슷한 고민을 얘기할 때가 많았기 때문에, '요즘 젊은 엄마들은 '누구 엄마'라는 호칭이 자연스러운가 보다?'라는 생각도 했다. 그러다가 그 엄마와 나를 포함한 몇몇이 모여서 하나의 그룹이 만들어졌다. 일명 '아이 친구 엄마 모임'이 형성된 것이다. 일대일로 아이 친구 엄마를 만난 적만 있지, 이렇게 모임으로 만난 것은 처음이었다. 그리고 이 모임에 들어간 것이 그 당시 나의 가장 큰 실수였다.
지금 생각해도 그 모임에서 만난 엄마들을 지켜보면서 그들의 유치하고 치졸하며 비상식적인 말과 행동에 신물이 난다. 당시 난 몇 달 정도 모임에 속해 있으면서, '다 큰 성인이 맞나?'하는 의문을 자아내는 그들의 사고와 대응을 보고, 빨리 이 모임에서 나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내 아이가 그 엄마들 아이와 같은 기관에 다니고 있기 때문에 최대한 조심스럽게 모임에서 나와야겠다고 생각하던 시기에, 그 일이 터졌다.
자신 아이의 잘못은 아이어서 그럴 수 있고, 내 아이 잘못은 아이라도 봐줄 수 없다는 기가 막힌 자기만의 논리를 내세우며, 내 아이를 많은 엄마와 아이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소리를 지르며 사과하라고 다그치는 비상식적인 행동을 한 것이다. 내 정신 건강을 위해서 감정을 다스리곤 있지만, 지금 생각해도 화가 많이 난다.
그리고 생각한다. 나는 그때 어떻게 대응했어야 할까? 나는 그 당시 왜 그렇게 침착하게 반응했을까? 가끔 나는 아주 심각한 상황에서 매우 차분해진다. 목소리도 높이지 않고, 조곤조곤 상황을 설명하며 내 생각을 피력한다. 그때도 그랬다. 화를 내고 소리를 질렀어야 할 상황이었음에도 난 그러지 않았다. 그냥 조용히 넘어갔다.
그러면서 깨달았다. 아이 친구 엄마는 내 친구가 아니고, 목적이 있어서 만난 관계는 그 목적이 사라졌을 때 막말도 할 수 있는 사이라는 것을. 그 엄마도 내가 그 모임에 큰 의미를 두지 않고, 거기에서 나오려고 한다는 것을 눈치채고 있었을 것이다. 내 연기력이 좀 부족했나 보다!! 그러니 그도 더 이상 나와 관계를 유지하려고 노력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그 엄마만이 아니라 나머지 모임 멤버들도 나의 마음을 눈치채고 있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니 그런 말도 안 되는 상황을 연출할 수 있는 것이다.
본인 스스로 얼마나 부끄러울까를 생각한다. 똑같이 되갚아 주지 않았으니 나는 잘못이 없다. 그래서 떳떳할 수 있다.
다음 편에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