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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J Anne Aug 16. 2024

호주에서 태어난 내 아이에게 한국은 어떤 나라일까?

자신만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아이의 여정

사실 좀 부끄럽기도 하지만 남편과 나는 전 세계적으로 열광하고 있는 올림픽에 별 관심이 없다. 그저 간간히 주변 사람들이나 인터넷에 올라오는 기사로 접하는 것이 전부다.


반면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나 어린이집에서는 올림픽 개최 전부터 열기가 들썩였다. 아이들에게 이번엔 어느 나라에서 개최하는지, 올림픽 유래와 성화 봉송 등 다양한 방면으로 아이들은 올림픽을 즐기고 있었다.

호주 초등학교 1학년을 다니고 있는 1호는 학교에서 숙제가 많지 않다. 학교마다 교육열이 달라서 공부도 제법 많이 시키고 숙제도 많이 주는 학교가 있는 반면 우리 아이가 다니고 있는 학교의 분위기는 중간 정도 랄까? 책을 읽어오는 리딩 숙제도 일주일에 책이 2권이고 종이 한 장에 잘 정리되어 있는 숙제를 완성하는 기간은 2주나 된다.


아이는 한 번에 몰아서 하기도 하고, 조금씩 나눠서 하기도 하는데 꼭 해야 한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좋아하지 않는 것을 해야 할 때는 다른 아이들보다 집중력이 더 많이 필요한 1호는 숙제를 잊지 않도록 자주 상기시켜줘야 한다. 가끔은 우리 아이 학교는 너무 놀기만 하는 건 아닐까? 걱정을 한 적도 있지만 이렇게 적은 숙제 만으로도 잔소리가 입가에 근질근질하니 학구열이 높은 학교가 아니라는 게 다행이기도 하다.


지난주 월요일에 아이와 숙제를 하자고 노트를 펴고 앉았는데 그날 해야 하는 숙제는 올림픽에 관한 것이었다.

가장 좋아하는 올림픽 종목을 그리기.


나는 내심 궁금했다. 아이는 올림픽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을까? 어떤 종목들이 있는지는 알까? 나보다 더 많이 알고 있는 것 아닐까? 관심 있어하는 종목이 있을까? 있다면 그걸 그림으로는 어떻게 표현할까?


남편과 나는 아이의 숙제에 전혀 관여하지 않는다. 해야 하는 것들만 상기시켜 줄 뿐 숙제를 어떻게 완성하는지는 오로지 아이에게 달려있다. 그리고 설사 완성도가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아이가 판단해서 끝낸 것이기에 그러려니 한다. 2주에 한 번씩 해야 하는 숙제에는 꼭 드로잉이 포함되어 있다. 아이가 킨디 때부터 지금까지 학교에서 매일매일 하는 수업은 내가 알기로 딱 3가지가 있다. 책을 읽고,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는 것. 아침 9시에 시작해 3시에 마칠 때까지 도시락 3개를 모두 먹고, 이 세 가지를 모두 하려면 그냥 학교가 끝나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매일매일 조금씩 그리다 보면 아이들마다 성격이 나오는 것 같다. 그리고 우리 아이는 잘 그리는 것보다는 자기가 생각한 것을 정확히 상세하게 그리는 것을 좋아한다. 아이를 알기에 숙제 노트에 그려질 그림은 때때로 아이를 조금 더 다른 시각으로 볼 수 있게 해 준다.


올림픽 종목이라… 이번엔 어떤 그림을 그릴까? 궁금한 마음을 뒤로하고 나는 저녁을 준비하고 있었다. 다행히 2호는 놀이방에서 자신이 선택한 애피타이저로 바나나를 먹으며 유튜브 키즈를 보고 있었기에 형이 무얼 하는지 1도 관심이 없었다. 만약 형이 무언가를 그리고 있는 걸 알았다면 당장 달려가 연필을 움켜쥐고 사방팔방으로 뻗쳐 나가는 선들의 무아지경에 빠졌을 것이다.


주방에서 채소를 볶고 있는데 1호가 다가왔다. 한국 국기가 어떻게 생겼냐고. 나는 핸드폰으로 태극기를 찾아서 보여줬다. 그걸 보더니 아이는 토요일마다 다니고 있는 한글학교에서 그린 적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 냈다. 핸드폰 액정에 띄워진 태극기를 식탁 위에 놓고 1호는 다시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머지않아 엄마를 불렀다.


다 볶아진 채소를 접시에 덜어 놓고 식탁으로 다가와 아이가 그린 작품을 보았다.

그리고 나는 잠깐 동안 말을 하지 못했다.

남편과 나는 종종 궁금했다. 한국인의 부모에서 태어난 우리 아이들은 한국인일까? 호주인일까?

국적은 호주지만 정체성은 한국인에 더 가까울까? 태어나서 자라난 호주에 더 가까울까?

언젠가 아이들이 느낄 이민 2세대의 갈등은 또 어떨까?


아이는 그림에 양궁을 그렸고, 관객들의 중앙에 태극기를 그려 넣었다. 활을 겨누고 있는 선수의 머릿속에 펼쳐져 있는 과녁을 보면서 아이의 표현력이 기특했다.


집에서는 시청한 적이 없는데 어디서 봤을까? 학교에서 봤을까? 가끔 수업과 경기 시간이 맞을 때면 선생님과 아이들 모두 모여 앉아 경기를 시청한다고 했는데 그때 보았을까? 양궁 경기 장면을 보았다면 그때 아이는 어떤 감정을 느꼈을까?


나의 궁금함이 이 그림 속에 모두 녹아있었다.


아이는 아직 자랑스럽다는 감정을 잘 모를 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온몸으로 좋아하고 있었고, 그것을 표현하고 있었다. 그 사실을 확인하는 순간 나는 마음이 뭉클해졌다.


그거면 되었다. 엄마 아빠가 태어나서 자란 나라. 할머니 할아버지와 친척들이 살고 있는 나라.

사랑하는 가족들이 모여 살고 있는 따뜻한 나라.


내 아이가 느끼는 한국이 이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왠지 내 바램이 아주 조금씩 아이에게 스며들고 있는 것 같아 고마웠다.


그래… 우리는 우리대로,

우리의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다양한 색깔이 입혀진 대한민국 그리고 호주를 사랑하면서…


그렇게 살아가면 참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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