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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앤느 Feb 02. 2023

아들이 화를 낸 이유


어제는 모처럼 아들과 딸을 데리고 동네 도서관에 다녀왔다. 수줍은 많은 아들이 학교에서 곧 발표를 해야 한다며 내게 도움을 요청해 왔다. 이 주제를 할까, 저 주제를 할까, 몇 번의 주제 변경 끝에 아들이 고른 주제는 '상어'였다.


남들 앞에 서서 발표를, 그것도 프랑스어로, 아들에게 이 일은 거대한 프로젝트였다. 그걸 알기에 더 잘 도와주고 싶었다. 그렇게 나선 도서관 나들이였다.


동네에 꽤나 큰 도서관이 있다는 건 큰 행운이었다. 그리고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심지어는 외국인이라 할지라도 프랑스에 정착했다는 사실만 입증되면 열 권이 넘는 책을 한 달씩이나 턱 하고 빌려준다는 사실도 행운이었다.


도서관에서 어린이 실을 찾아 올라간다. 성인을 위한 책들이 빼곡히 꽂힌 서가를 지나서 한참을 걸어 들어가면 마치 다른 세상처럼 어린이 실이 펼쳐진다.

두 공간이 한 건물에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어린이실은 특별하게 아늑했다. 단이 낮은 서가들이며, 아기자기한 소파와 매트, 그리고 작은 계단을 이용해서 복층으로 만들어 놓은 이 공간은 아이들에겐 안전하게 그리고 마음껏 모험하기에 안성맞춤인 공간이었다. 적어도 엄마의 눈에는.


아이들과 나는 종종 이 도서관을 이용했다. 책을 빌리기도 했고, 보드게임을 할 수 있는 공간에서 한참 게임을 하기도 했다. 그러니 어제의 방문이 딱히 처음도 아니었던 셈이었다.


나에게 이 나들이는 여러모로 흡족했고, 그 어느 곳보다 안전하게 여겨지는 나들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전혀 엉뚱하게 일어났다.


아들이 보고자 하는 책들은 모두 복층 위에 있었다. 상어에 관한 책도, 또 만화책도 그 위에 놓여 있었다. 그곳은 조금 더 큰 아이들을 위한 공간인 셈이었다.  


그런가 하면 딸이 보고자 하는 책들은 모두 아래에 있었다. 그럴만했다. 계단이라는 요소가 주는 분리감을 이겨낼 수 없고, 그리고 그것이 위험의 요소로 여겨질 나이의 아이들은 아래층에 머물게 하는 것이 상식적인 일일 테니까.

 

둘 다 엄마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엄마와 함께 책을 골라야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둘 다 지금 당장이라고 말했다.


육아에서 힘든 순간은 늘 이런 순간이었다. 그러나 나는 잠시 숨을 고르고 아들의 손을 들어주었다. 우리는 발표 준비를 위해 도서관을 왔으니 아들의 책을 먼저 고르자는 것이 나의 주장이었다. 딸은 순순히 엄마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정작 딸의 책을 고르러 내려왔을 , 1층의 책들은 시시하게만 느껴지는 아들이 같이 2층을  달라고 떼를 쓰면서 문제가 터졌다.


그때까지 인내심을 발휘하고 있던 내 눈에 혼자서도 잘 올라가서 스스로 자기 책을 고르고 알아서 자리를 찾아 앉아있는 아들 또래 아이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나는 한두 번 타이른 끝에 조금은 강압적인 목소리로 '스스로 해볼 것'을 권했다. 먼저 올라가서 책을 고르고 있으면 '3분' 뒤에 올라가겠다는 나와 '2분' 뒤에 올라오라는 아들 사이의 실랑이가 겨우 끝났음에도, 아들은 계단을 몇 걸음 올라가다 돌아와선 만화책이 어디에 있는지 기억이 안 난다고 핑계를 댔다. 위치를 알려주자, 거기에 사람들이 있어서 못 가겠다고 했다. 그랬다. 그 모든 것은 분명히 핑계였다. 그 순간 나는 인내심에 한계를 마주하고 말았다.


"너는 이제 엄마 치맛자락을 붙잡고 같이 해 달라고 할 나이는 지나고 있어. 이런 걸 스스로 할 수 있어야 해."


아들과 함께 2층을 향해 걸음을 옮기면서, 결국은 내 기대대로 행동하지 못한 성에 안 차는 아들을 향해, 굳이 그런 말로, 자존심을 건드리고 말았다. 아들은 눈시울이 조금 붉어졌지만, 울지도 짜증을 내거나 화를 내지도 않았다.


찾아야 하는 책 외에도 보고 싶은 책까지 한가득 빌려 집으로 돌아왔고 우리는 도서관에서의 그 일을 다시 입에 올리지 않았다. 아들이 왜 그랬는지를 캐묻고 싶지 않았고, 아들의 진짜 불편함을 알고 돕기 위해 무언가를 해 보기엔 내 마음이 너무 불편한 상태였다.


문제를 덮어둔, 어제저녁은 평소와 같았다. 함께 저녁을 먹고, 아이들은 빌려온 책을 읽었다. 잠들기 전에는 함께 발표 준비도 잘했다. 그렇게 그 미묘한 마찰은 없던 일처럼 지나갈까 싶었다.




그러나 오늘 아침, 아들은 극도로 예민했다.

작은 일에 성질을 버럭 냈다. 아침이면 현관 앞에서 가방을 메고 엄마에게 읽어주던 말씀도 오늘은 힘들어서 못 읽겠다 했다. 동생의 작은 부딪침에도 왜 미냐고 짜증이었다. 미안하다는 동생의 사과에도 진심이 안 느껴진다며 트집을 잡았다. 내 마음은 다시 한번 부글대기 시작했다. 어제의 그 불편함이 다시 나를 찾아왔다. '너는 왜 그러니?'



조금 꾸짖고 조금 달래서 일단 수습해서 내려갔지만, 상한 마음과 감정까지 내가 수습해 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도 딸은 스스로 마음을 추스르고 엄마 손을 냉큼 잡고 품으로 뛰어드는데 아들은 저기 한 걸음 떨어져서 걸어온다. '어이구 저게, 뭐 잘했다고' 싶은 마음을 애써 누르며, 손을 내밀어도 여전히 시큰둥하다.


끝까지 고집을 부리며 자존심을 부리는 아들의 손을 잡아 꼭 잡고서 걷는데, 문득 아들의 움츠러든 어깨가 느껴진다. 그랬다. 아들은 지금, 내가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화를 내고 있는 중이었다. 엄마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한 자신에게, 그 얼마 높지도 않은 그 계단을 넘어서지 못했던 자신에게, 그래서 이토록이나 마음에 들지 않는 자신에게.


그러고 보니 그랬다.


내 눈에 들어왔던, 마음껏 자유롭게 오다니던 아이들이 아들의 눈에도 보였을 터였다.


그 아이들이 하는 그것을, 아니 심지어는 동생도 해내는 그것을 자신은 아직도 주저한다는 사실이 스스로도 속상할 터였다. 어쩌면 나보다 아들이 더 속상할 터였다. 그러나 그런 순간에 엄마는 내 편이 되어주지 않은 셈이었다.


"괜찮아, 그럴 수 있지" 대신에 "그럴 나이가 지났다"라는 엄마의 말은 아들에게는 조언이기보다는 비난에 가까웠을 터였다. '기준 미달'이라는 느낌, 그리고 아들은 그렇게 모자란 자신을 미워하기 시작했을 터였다.    


마음이 짠했다.

아침부터 건건이 태클을 거는 태도가 영 거슬렸는데, 그게 자기가 미워서 내지르는 비명이었을까 생각하자 미안했다.


그게 뭐라고. 도서관에서 계단 올라가서 책을 찾는 일이, 그걸 혼자 하는 일이 뭐 그리 중요하고 의미 있는 일이라고, 나는 또 어떤 기준 앞에 아들을 세우려 했던가.


아들의 귀에 속삭인다.

"어제 엄마가 도서관에서 너 혼자 해야 한다고 강요했던 게 속상했어?"


아들은 고개를 젓는다.

어쩌면 이것도 결코 들키고 싶지 않은 아들의 한 조각 남은 자존심일지도 모른다.

"만약 그랬다면 미안해. 엄마는 안전한 공간이라서, 네가 한 번 시도해 보면 했던 건데, 네가 원하면 엄마가 같이 가 줄게. 그리고 아들.... 나는 네가 늘 자랑스러워."


의지에서인지 진심에서인지 모를 한 마디 '자랑스럽다'는 단어가 목구멍을 울려퍼지자 마음에도 자랑스러움이 가득찼다. 그랬다. 나에게 이 아들은 너무나 소중하고 자랑스러운 아들이었다. 그가 가진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세상에 하나뿐인 내 아들이 아닌가.

 

아들의 눈가에 눈물이 핑 돈다. 내 눈에도 눈물이 핑 돌고 말았다.




  언저리,  없는 어린애인  알았던 아들에게서,   인간의 연약함을 본다.


보이고 싶지 않고, 들키고 싶지 않은 어떤 마음들, 어떤 모습들. 그리고 나조차 도무지 사랑하기 힘든 어떤 면들까지 받아주고 안아줄 누군가가 필요한 연약한 한 인간의 모습말이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지만 사실은 완벽하지 않은 내 모습일지라도 괜찮다는 말이 듣고 싶은 그 마음. 사실은 나를 정말로 사랑하고 싶고, 내가 정말로 괜찮은 사람이라고 느끼고 싶은 우리 모두의 욕구를,


아들도 가지고 있었다.

그도 나와 같은 인간이었다.

나보다 조금 키가 작은.




혼자서 계단을 못 올랐지만,

아들의 성숙되어 감을 이렇게 또 느끼게 된다.


그 순간에 아들의 자존심을 잘 지켜주지는 못했지만이렇게 한 걸음 늦게나마 아들의 마음을 읽어줄 수 있을 만큼 나 자신도 성숙되어 감을 느낀다.


그러니 되었다.

자책은 그만,

나에게도 말해줘야겠다.

다 괜찮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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