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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앤느 May 10. 2024

최악이 최선일 줄이야

심리학은 인간에 대한 학문이다. 그래서일까, 1학년 1학기에는 생물학 수업이 2학기에는 생물학 + 뇌과학 수업이 떡하니 버티고 있다. 대학에 입문하기도 전에, 시간표를 보고 나는 두려움이 확 몰려왔다. 생물학이라니....


학교 드라이브에 올려진 수업 파일을 열어보고는 그냥 살포시 닫았다. 뭘 어떻게 해 보려고 해도 엄두가 나질 않았다.


그래도 델프 달프 시험공부를 몇 년간 해 왔기에 사회과학 쪽 어휘는 이제 나름 익숙해진 편이었다. 그러나 생물학적인 용어들은 전혀 다른 차원이었다. 개강이 다가올수록 마음 한편에 근심이 커져만 갔다.



첫 수업 날, 나는 시작부터 끝나고 나올 때까지 여긴 어디, 나는 누구? 하다가 식은땀을 닦으며 나왔다.


그런데 진짜 문제는 3주에 한 번씩 시험을 본다는 것.


유전자와 세포, 수정과 멘델의 유전 법칙... 고등학교 때, 벌써 20년도 더 전에 들어본 적이 있는 것 같은 개념들을 불어로 따라가야 한다는 것은 그리 낭만적인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3주에 한 번 시험이라니, 한 학기 동안 나는 네 번의 쪽지시험과 한 번의 거대한 기말고사를 치러야 했다. 고작 12주의 시간 동안....


이건 분명 최악의 상황이었다.



그래도 불행 중 다행인 것은, 다른 프랑스인 친구들의 표정도 나 못지않게 당혹스러워 보였다는 것. 난감해 보이는 그들의 표정과 어려워서 헤매는 듯한 그들의 제스처...  그게 그나마 위로였다.


그래... 나만 힘든 건 아니다.

내가 조금 더 불리한 건 당연하지만...



친절한 친구 한 명이 나눠주는 노트를 붙들고, 유튜브에서 한국어로 된 생물학 수업들을 찾아 들으며 개념을 이해하고 불어로 다시 외우는 지난한 작업이 시작되었다. 나는 분명히 이 학교에 심리학을 공부하겠다고 들어왔는데 일주일 내내 틈만 나면 생물학을 공부를 해야만 했다. 3주마다 보는 시험의 그 부담감은 그렇게 나를 생물학의 세계로 훅훅 밀어 넣었다.


주중에 시간을 쪼개고 쪼개어도 겨우 이해만 하는 정도밖에 시간이 나지 않았다. 이해만 해서는 시험을 볼 수 없으니  시험 전날은 밤을 새우다시피 복습을 해야 했다. 그렇게 외워지지 않는 어려운 용어들을 겨우겨우 머리에 집어넣은 채 잔뜩 지치고 피곤한 얼굴로 학교를 향할 때면, 이거... 내가 지금 뭐 하고 있는 건가... 뭐 이렇게까지 사서 고생을 하나... 싶기도 했다.


그러나 그렇게 지쳐 보이는 내게 친구들은 간혹 위로의 말을 건네곤 했다.


우리에게도 어려운 이걸, 네가 이렇게 해 내고 있다니, 그걸로도 대단한 걸! 멋져. 힘내!


나보다 스무 살은 어린 친구들의 그 위로가 왠지 마음을 따뜻하게 해 주곤 했다.


모두에게 어려운 길, 그리고 나에겐 배나 더 어려울 수밖에 없는 길을, 피하지 않고 이렇게 가고 있다는 그 사실로 나는 내가 어쩐지 조금 짠하고 조금 자랑스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왠지 어깨를 토닥토닥 두드려주고 싶은 마음이 그리고 동시에 어깨를 쭈욱 펴고 걷고 싶은 마음이 동시에 들었다.  


그렇게 두 번의 시험을 지나고, 한 학기에 중간을 넘어설 무렵 불현듯 조금씩 수업이 들리고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용어들을 이해하고자 노트를 달달 외우다시피 했던 노력이 이제야 조금씩 효과를 발휘하는 듯했다. 생물학 수업의 꽃이었던 맨델의 유전법칙을 배울 쯤에는 이해를 어려워하는 프랑스인 친구에게 더듬더듬 개념을 설명해주기도 했다.



그리고 마침내 기말고사 기간,

나는 생물학 시험이 더는 두렵지 않았다.


가장 두려웠던 수업, 최악이라 명명했던 수업이 가장 편안한 수업이 되어 있었다.


이미 한 번 힘들게 지나왔던 시간들이, 길을 내어 놓았기 때문일까? 조금은 가벼운 마음으로 시험을 치를 수 있었고, 최고는 아니지만 나쁘지 않은 점수를 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2학기 다시 생물학 수업을 들을 때 나는 한결 편안했다. 뇌과학은  다른 시작이었고,  다른 최악이었지만 나는 왠지 나라면, 지난 학기도 그렇게 견뎌온 나라면, 이것도  해낼  있을 거라는 믿음이 조금 생겨있었다.


적어도 지난 학기 백지에 가깝던 나보다는 지금의 내가 가진  많지 않은가? 게다가 적어도 지난 학기처럼 자주 시험을 보지는 않으니까...


나는 그렇게 지나온 시간을 근거 삼아 나를 도닥일  있었다. 



그랬다. 처음 시작도 하기 전에 이 모든 상황은 내 편에서 최악이었다.


그러나 그 최악의 상황 앞에 포기하지 않고 계속 전진해 가는 시간을 통해서 이것이 내게 최선이 되어 있었다.  가장 혹독했던 과정은 어느새 내게 적당한 편안함을 안길 정도의 적응을 선사했다. 그리고 나는 그 과정에서 포기하지 않은 나를 조금 더 사랑하게 되었다.



나는 어디선가 보았던 꽃길만 걸으라는 누군가의 말이  좋았다.


그리고  말을 읇조릴   편에선, 힘든 일이 하나도 없는 길을 떠올리곤 했다. 그러나 언제나 인생이 내게 힘든 이유는, 그런 길이, 그런 순간이   번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언제나 무언가 하나는 어려웠다. 언제나 무언가 하나는 힘들었다. 그러나 이제서야 깨닫는다. 언제나 나를  힘들게 했던 것은 이것만 없으면  좋을 텐데 하는  마음이었다는 것을.



지나고 보니 그 힘든 시간들이 다 꽃길이었다.


그 힘들고 어려운 순간들이, 나를 조금 더 강하게 만들었고, 내 속에 또 다른 꽃을 피워내고 있었다.

죽이지 못하는 고난은 우리를 더 강하게 만든다는 말처럼, 나는 그렇게 조금 더 강해지고 있었다.

최악이라 여기는 그 모든 것들과 함께 더불어 살아오면서... 그렇게 나는 두려움을 딛고 앞으로 앞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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