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우리 집은 중산층이야?”
그때가 아마 중학교에 입학했을 무렵이었다. 사회 시간에 처음으로 들었던 중산층이라는 용어와 정의가 생소하게 마음에 와닿았고, 나는 한 번쯤은 엄마에게 확인을 받고 싶었던 것 같다.
어렸을 적 오랫동안 단칸방에 살았고, 여전히 방 두 칸에 작은 부엌이 딸린 집에서 살고 있지만. 박물관은 고사하고 영화관 한 번 엄마아빠랑 가본 일이 없지만.
중학교 들어갈 때에야 겨우 공부방은 고사하고 부엌과 연결된 작은 방에, 내 방이라 부르고 주방처럼 사용하던 그 방에 책상 하나 넣을 수 있었던 눈물겨운 형편이었지만....
그렇지만 나는 내심
내가 중산층이길 바랐던 것 같다.
그래도 이 오래된 양옥집은 우리 할머니의 소유였으니까. 그래도 엄마는 여러 개의 통장을 가지고 있었고, 시간이 날 때마다 통장 내역을 확인하러 은행에도 자주 들리곤 했으니까.
그러니까 어딘가에 숨겨놓은 재산이라도 있는 게 아닐까. 설마 이게, 고작 이게, 눈에 보기에도 초라한 이것들이 우리 가족이 가진 전부는 아니겠지.
그러나 나의 바람과 달리 엄마는,
"뭐?”하며 토끼눈을 뜨더니 코웃음을 쳤다.
이게 무슨 귀신 시나락 까먹는 소리냐는 듯이 웃는 엄마 앞에서 나는 인생의 첫 막막함을 느꼈던 것 같다.
어쩌면 그때 나는 깨달았는지도 모르겠다.
나의 한계를.
이 낡고 오래된 2층 양옥집, 공부방은 기대할 수도 없는 이 처지가, 이번 생에 내게 주어진 운명이자, 굴레일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으로 그렇게 어린 내 마음 한 귀퉁이에 자리를 잡게 되었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그러려니 할 수 있었다.
옆집에 사는 수영이를 봐도,
길 건너에 사는 한별이를 봐도, 다 고만고만했다.
우리 학교에서 공부를 제일 잘하는 두리도 공부방이 없어서 기숙생활이 가능한 외고에 진학한다고 했다.
내가 겪는 현실과 내 친구들이 겪는 현실에는 사실상 큰 온도차가 없었고, 그 사실은 그런 상황 속에서도 결코 내가 기죽지 않고 견딜 수 있는 유일한 이유였다.
그나마 지은이네가 가장 좋은 집에 살고 있었지만, 아버지가 물장사를 하신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이쯤 되자 직업이 없는 우리 아빠가 자랑스러워지기까지 할 정도였다.
어디 그뿐이랴, 엄마나 아빠가 없는 친구들까지 보태어 이야기를 해 보자면, 나는 내가 처한 현실에 황송해야 할 지경이었다.
그렇게 나는 내게 주어진 현실, 무언가 상당히 부족해 보이는 여건을 받아들이고 살았다.
어쩌면 중산층, 이라는 사람들은 드라마 속에만 있는 사람들 인지도 모른다고... 내 좁은 세계 속에서 나는 그렇게 섣부르게 결론을 내리고 마음을 편안하게 먹었다.
엄마가 없거나, 아빠가 없거나, 돈이 없거나, 혹은 그 모든 게 없는 게 당연한 사람들의 동네에서
그래도 엄마도 있고, 아빠도 있고, 돈도 굶어 죽지 않을 만큼은 있는 나는 쉬이 모범생 혹은 우등생이 될 수 있었고, 그런 포지션이 싫지 않았으니까.
그러나 그것도 중학교를 떠나면서
산산이 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