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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지하 Sep 22. 2020

후진국에서 본 미래의 풍경

한국이나 다른 선진국에서만 살다가

처음으로 후진국에 와서 본 현실은 참담하다.

4차 산업혁명, 인공지능과 생명공학이 만들어낼

새로운 미래는

이곳의 현실과는 너무나 먼 이야기다.


그런데, 요즘 한국이나 일본, 미국 등 선진국들을 보면 불평등이 일상적으로 극명하게 드러나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태생이 계층을 결정하는 이 나라에 점점 더 가까워져 가는 것 같다.


내가 보는 이 나라의 풍경이 우리의 미래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아찔하다.


이 나라에서 계층은 태생적으로 결정된다.

백인이거나 백인에 가까운 혼혈이거나,

둘 다 아니거나.


백인으로 태어난 아이들 대부분은

한 달 학비만 수천 불인 국제학교에 다니고

방학 때면 미국이나 유럽으로 떠난다.

대부분 미국이나 여타 유럽 국가의 이중국적자다.


백인에서 먼 혼혈 가정이나, 원주민 가정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책걸상도 제대로 마련돼 있지 않은 공립학교에 다니고, 매년 수만 명의 아이들이 초등학교 과정에서 학교를 관둔다.


교육을 통한 계층이동 가능성은 복권에 당첨될 가능성보다 낮다. 평균 교육 수준은 초등학교 3학년 수준이고, 대학 졸업자 비율은 1% 미만이다.


원주민들과 혼혈인들은 백인 고용주 밑에서

점원, 경비, 가사도우미, 정원사, 운전기사 등 단순 노무직으로 일한다.


사회적 계층은 지역적으로도 고착화되어 있다.

수도의 안전한 몇 개 지역에 살거나, 수도권에 살거나, 지방에 살거나. 

수도 내의 안전하고 부유한 몇 개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페라리, 포르셰, 마세라티를 몰고 피부 관리숍, 짐이나 요가 샵, 오르가닉 레스토랑에 다니며 개인 가사도우미와 경비원이 있는 안락하고 넓은 집에서 산다.


지방의 원주민 거주지역은 기초적인 교육, 보건, 치안 서비스에서 완전히 소외되어 있다.

매일 다음 끼니를 걱정하며 사는 사람들이 태반이고, 가족 중의 누군가는 수도에서 가사도우미나 경비원 등으로 일하거나 미국에서 사회 최하층으로 살면서 고향에 돈을 부친다.


지역과 인종으로 고착화된 계층은 질병으로도 확인할 수 있다.  수도권의 병원에는 비만과 연계된 질병으로 인한 환자가 넘쳐나고, 지방의 병원에는 빈곤과 기아로 인한 영양실조 환자가 넘친다.


전 국민의 50% 이상이 빈곤(일 수입 12불 이하) 내지 극빈(일 수입 5불 미만) 상황에 처해 있고

만 5세 이하 아동의 50% 이상이 만성 영양실조 상태다.


계층은 일자리 시장에서도 극명하게 갈린다.

일자리를 걱정하는 건 원주민이나 원주민에 가까운 혼혈들 뿐이다. 취업 가능 인구의 3/4 비정규, 비공식 일자리에서 일하고 있고, 취업시장에 매년 신규 진입하는 20여만 명의 인구 중 1/5 만이 정규직으로 취업한다. 일자리도 없고, 임금 차별도 심하고, 치안마저 좋지 않으니 많은 이들이 미국을 향해 떠난다.


계층은 생물학적 격차로도 나타난다.

백인과 원주민의 평균 키는 10cm 이상 차이 난다.

원주민 아이들은 만성적인 영양실조의 영향인지

제대로 자라질 못해 실제 나이보다 몇 살은 어려 보인다.


그런데 문제의식이 없다. 이 나라가 독립하기 전부터 그래 왔다. 내 부모의 부모의 부모도 가난했고, 차별받았고, 기만당했고, 빼앗겨 왔다. 내 자식의 자식의 자식도 그렇게 살 것이라고 받아들이는 것 같다.


잠시, 그럼 우리나라를 비롯한 선진국들은 상황 다른가? 물론 기초적인 치안, 의료, 교육 서비스는 비교 불가할 정도로 선진국이 좋다.


그러나, 선진국에서도 계급은 점점 더 태생적으로 결정되는 것 같다. 부모의 직업, 학력, 재산 그리고 거주지는 아이의 미래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개인적인 노력과 운으로 계층 사다리를 올라탄 사람들도 있지만 드물다. 부모가 배경이 되어주지 못하는 아이들은 교육 기회에서 차별받고 더 좁은 취업문을 맞닥뜨리게 된다.


우리 사회가 앞으로 이대로 계층 간 격차가 고착화되는 방향으로 간다면 과연 내가 사는 이 나라의 풍경이 우리의 미래가 되지 않으리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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