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는 아니고요. 초코 소라빵입니다.
배덕의 초코 소라빵
"에.. 코로나에 걸린 건 아니시고요. 장염이시네요. 요새 유행하고 있어요. 도시락 시켜 드시고 걸리신 분들 하루에도 몇 분씩 다녀가세요."
아.. 한 시름 놨다.
엊그제 오후부터 열이 오르기 시작해서 혹시 이거 코로나 걸린 거 아닌가. 완치될 때까지 입원하면 냉장고에 있는 음식들 다 썩을 텐데. 냉장고부터 정리해야 하나. 나 때문에 회사 사람들 다 검사받고 사무실 단기 폐쇄해야 되는 거 아닌가 등등등 무진장한 고뇌에 휩싸였었다.
9.24(목) 오후 3시 38.2도
오후 5시 38.5도
한국에 있는 아내에게 연락했다.
"여보 나 열나. 회사랑 집 말고는 밖에 다니지도 않는데 설마 코로나는 아니겠지?"
"ㅇㅇㅇ 의사 선생님한테 연락해서 왕진 와달라고 해. 검사를 받아봐야 알지."
평소 애들 아프면 다니던 병원 선생님께 연락을 드렸다. 설사, 복통, 발열, 무력감, 근육통 등의 증상을 설명드리고 왕진을 부탁드렸다.
"미리 연락을 좀 주시지. 오늘은 어렵고요. 내일 오전에도 예약이 꽉 차 있긴 한데 오전 8시까지 일반 진료시간 보다 일찍 오시면 진찰해 드릴게요. 우선 타이레놀 하나 드시고 주무세요."
"네.. 제가 지금은 운전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닌데, 내일 아침에는 왠지 가능할 것도 같습니다. 그 시간에 갈 수 없게 되면 연락드리겠습니다."
연락을 마치고, 너무 배가 고파서 아이들과 영상통화를 하면서 사과를 베어 물었다. 아내가 배 아플 때 과일 먹지 말라더라면서 말리는데, "식이섬유가 소화에 좋다며 그냥 먹던 것만 먹을게."하고 고집을 부리며 껍질째 다 씹어 먹었다.
하루 종일 먹은 거라곤 아침에 먹은 김치찌개에 밥 한 공기, 사과 1개뿐이었다. 복통과 허기가 동시에 느껴지는 오묘하고 고통스러운 상황이었다. 입은 멀쩡한데 배가 아파 먹지를 못하니 뭔가 서럽기도 하고 우습기도 하고 그랬다.
우선 내일 해야 할 일들을 정리하는 척하다 말았다.
코로나면 자가 격리하자. 여기 병원은 믿을 수 없어. 아직 호흡기 증상은 없으니까 처방약 먹으면서 버티다가 증세가 악화된다 싶으면 사립병원 병실을 잡자. 아니 여기 사립병원에 음압실도 없는데 코로나 환자 가면 집단 발병되는 거 아냐? 아 어쩌지.
아 코로나만 아니면 좋겠는데, 그럼 그냥 약이나 먹고 집에서 쉬면 되는데 말이지.
그래 우선 지사장께 연락드리자.
"기침, 콧물은 없지만 열이 오릅니다. 혹시 모르니 내일 아침에 병원 진료받고 보고 드리겠습니다."
"그냥 쉬세요. 혹시 요즘 헬스장 갔나요?"
"안 갔습니다. 현지인을 접촉한 건 회사와 자택 엘리베이터, 그리고 자문 변호사밖에 없습니다."
"그래요... 결과 나오면 연락 주고, 푹 쉬도록 해요."
내가 운동을 좋아하시는 걸 아시니 혹시 이 녀석이 헬스장 재개장했다고 또 좋다고 가서 현지인들과 더불어 헐떡거리다 감염된 거 아닌가 걱정하셨나 보다.
그렇게 연락을 돌리고 나니 저녁 9시다. 체온 38.3도 이게 유지되는 건지 올라가는 건지 모르겠다. 머리가 지끈지끈 아프기 시작했다. 의사 선생님 말씀이 기억나 타이레놀을 찾았다. 유아용 밖에 없다. 하.. 이거라도 두 개 씹어 삼켜야겠다.
몇 시간이나 잘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내일 아침 일찍 병원도 가야 하니 일단 눕자. 평소엔 배고프면 잠을 못 잤었는데, 피곤했는지 눈이 절로 감겼다.
그리고 잠든 지 1시간도 안돼서 명치 아랫부분을 칼로 쑤시는 것 같은 고통에 비명을 지르며 일어났다. 위를 보고 누워있다가 비명 한번 지르고, 옆으로 돌아누워 배를 감싸고 흐느끼면서, 고통이 잦아들 때까지 심호흡을 했다.
'아 이거 이러다 죽는 거 아냐. 이거 너무 아픈데. 왜 병원 갈 생각을 안 했지. 근데 복통이 너무 심한데 이거 그냥 장염 아닐까 아님 식중독? 전에 굴 먹고 식중독 걸렸을 때 증상이 비슷했던 거 같은데...' 생각을 이어나가려고 해도 몸이 너무 피곤해서 인지 고통이 잦아들면 바로 잠에 빠졌다.
한 시간에 한번 정도 간격으로 비명, 돌아눕기, 심호흡을 반복하다가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서 새벽 1시쯤 일어났다. 소화에 좋은 거니까 먹으면 좀 나아지겠지 하는 생각에 요구르트 2병, 프로바이오틱스 2봉을 먹고, 다시 열 손가락을 땄다.
속이 조금은 편해진 것 같기는 개뿔이나, 두시쯤 다시 누웠는데 고통은 좀 잦아들었으나 수분이 들어가서 그런지 설사가 계속됐다.
그렇게 6시까지 잠들었다 깼다 화장실 갔다 잠들었다 깼다를 반복했다. 다행히 아침이 되자 체온이 37.5도까지 내렸다. 어제 먹은 타이레놀 때문인지 뭔지 모르겠다.
병원까지 30분은 운전해야 하고 진료 대기 시간 진료시간, 귀가 시간 따지면 넉넉잡아 두 시간은 걸릴 텐데 차 속에서 설사기가 느껴지는 것만큼은 피하고 싶었다. 그래서 물도 안 마시고 가만히 누워 있다가 간단히 세안을 하고 집에서 나섰다.
예약 시간보다 20분쯤 일찍 도착했다. 병원이 위험지역에 있어서 그냥 차 안에 있었다. 탄띠를 두른 경비 두 명이 산탄총을 들고 경계를 서고 있었지만, 구부정한 허리와 깡마른 팔다리에 별로 믿음이 가지 않았다. 병원 옆에 붙어있는 한식당에선 돼지고기 김치 두루치기 냄새가 거하게 흘러나왔다. 참기름을 넉넉하게 둘렀는지 고소한 향이 진동했다.
"증상은 어제 설명드린 바와 같고, 추가적으로 오늘 새벽부터는 명치 아래를 찌르는 것 같은 통증을 느꼈습니다. 다행히 열은 좀 내렸습니다."
"기침 콧물도 없으시고, 열도 내리셨고, 다행히 코로나는 아닌 거 같고요. 장염이신 것 같습니다. 요새 도시락 시켜먹고 걸리신 분들 많이 찾아오세요. 증상이 수요일 저녁부터 나타나셨다니까 그때부터 72시간 안에 뭐 의심 가는 거 드시지 않으셨나요"
"에.... 수요일 저녁에 제육덮밥 먹었고요, 음.. 요즘 사과를 대충 씻어서 먹었고요, 아. 일요일에는 그 마라 소스에 고기랑 야채 볶아 먹었습니다. 음.. 그러고 보니 수요일에 제육덮밥 먹을 때 며칠 전에 시켜먹고 남아서 냉장고에 넣어뒀던 어묵 같이 먹었습니다."
"사과도 아래 윗부분 다 잘 씻어 드셔야 하고요, 주문 음식은 며칠 씩 냉장고 넣어두지 마시고 남은 건 그냥 버리시는 게 낳아요. 어제는 뭐 드셨나요."
"아침에는 김치찌개 먹었고요, 그러고 더 아파서 아무것도 안 먹다가 저녁 무렵에 사과 하나 먹고, 새벽에 자다 깨서 요구르트 먹었습니다"
"장염에 야채나 과일 드시면 안 되고요, 요구르트 같은 유제품도 장 내 가스를 만들어서 상태가 악화될 수 있으니 드시지 마세요. 한인마트 가면 3분 죽 같은 거 팔잖아요 그거 좀 짜니까 물 좀 타서 드시면 돼요."
그리곤 누워있는 내 배를 여기저기를 누르면서 아프냐고 묻는데, 어 배가 빠방 한데 누르면 당연히 아프지. 네 아파요. 누를 때요 뗄 때요? 뗄 때가 더 아파요. 왼쪽이요 오른쪽이요? 왼쪽이요. 아이고 장이 많이 부으셨네. 혈압도 좀 있으시고. 장염 다 나으시고 따로 병원 한번 오셔야겠어요. 가족력에 고혈압, 고지혈증이 있으시다니 주기적으로 체크하셔야 해요. 아 네. 출근도 하셔야 할 테니 항생제랑 소염제들은 링거 맞고 가세요. 네.
링거를 맞으며 누워 있으려니 별 생각이 다 들었다.
' 역시 마누라 말을 들어야 했는데.. 과일이 장염에 안 좋은 거였구나. 마누라가 병원 가보라고 안 했으면 분명 집에서 참다가 어찌어찌 운 좋게 낫거나 아니면 상태가 나빠져서 엠뷸런스 부르고 난리 났을 거다. 앞으론 마님 말씀을 잘 들어야겠다'
'이야. 그나저나 코로나가 아니라니 정말 다행이다. 휴 입원해야 한다 그랬으면 정말 최악인데, 회사도 폐쇄해야 되지 어휴'
'아 빵 먹고 싶다. 어제 애들이랑 영통 할 때 마누라가 먹고 있던 베이글 말고, 그냥 속에 다부지게 꽉꽉 채워놔서 한입 물면 크림이 양옆으로 삐져나오는 크림빵. 땅콩크림빵 먹고 싶다. 한국 빵집도 슬슬 영업할 시간인데 빵 먹어도 될라나. 의사 선생님한테 물어보면 정신 나간 놈이라고 생각하실라나'
'아 돼지고기 김치 두루치기 먹고 싶다. 아침부터 돼지고기랑 김치를 볶다니... 아 고문이잖아. 이거 링거 맞고 약 먹으면 좀 나은 거 아냐. 아. 아냐. 저거 먹어도 되냐고 물으면 정말 미친놈 보듯 할지도 몰라'
결국 물어봤다. 빵 먹어도 되나요.
- 식빵 정도는 괜찮은데 어지간하면 죽 드세요.
- 크림빵 안 되나요.
- 크림도 유제품이라 그건 안 드시는 편이 좋아요.
- 네....
괜히 물어봤다. 나도 크림이 유제품인 거 아는데.
링거를 맞아서 그런지 몸이 한결 가벼웠다
처방전을 받아 차로 돌아와 마누라한테 전화를 걸었다.
- 여보 나 장염이래. 코로나 아니래. 야채랑 과일, 기름진 거 먹지 말고 죽 먹으래.
- 어 다행이다. 그러게 내가 사과 먹지 말라고 했잖아. 그리고 또 내 말 안 듣고 병원 안 갔으면 어쩔 뻔했어. 또 몸에 안 좋은 거 먹지 말고.
- 어 미안. 그래도 링거 맞아서 그런지 몸이 좀 괜찮아. 집에 가서 또 연락할게. 죽이나 좀 사가서 한 이틀은 죽만 먹으려고.
지사장께도 연락을 드렸다.
이미 진찰 결과 어떠냐고 문자가 와 있었다.
- 어 그거 내가 보낸 거 먹고 걸린 거 아냐?
- 아프고 나서 보내셨으니 그거 먹고 걸린 건 아닌 거 같습니다.
- 어 그래. 그래도 쉬어. 회사 나오지 말고.
- 네 감사합니다.
통화를 마치고 링거를 맞을 때부터 생각해둔 슈퍼(겸 빵집)를 네비로 찍었다.
크림빵은 한 시간 정도 후에 나온대서 대신 초코 소라빵 하고 녹차 롤케이크를 샀다.
링거도 맞았으니까 이거 하나 정도는 괜찮겠지.
시동을 걸며 초코 소라빵을 크게 한입 베어 물었다.
배덕감과 어우러진 달콤함에 취하는 것 같았다.
아.... 너무 맛있다.
흥흥흥~ 콧노래가 절로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