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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나 작가 Jun 14. 2024

나무 친구처럼 견고한 사이

마음의 거리와 속도


오래된 나무 그루터기의 자투리, 즉 나무껍질이 땅에 남아있다면, 이것은 죽은 자투리일 뿐이다.

그런데 이 자투리가 살아있다면?

<<나무 수업>> 책에서 이 자투리가 생명을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는, 뿌리를 통해 이웃 나무들의 지원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나무들은 뿌리를 통해 서로 연결되어 있다. 자신의 영양분을 다른 나무와 함께 나누기도 하는 사회적 존재이다. 서로 돕는 이유는 함께해야 더 유리하기 때문이다. 인간 사회와 똑같은 이치이다.


나무들은 가지를 키가 같은 이웃 나무의 가지 끝과 맞닿는 곳까지만 뻗는다. 진짜 친구사이인 나무들은 애당초 상대가 있는 쪽으로 너무 튼실한 가지를 만들지 않는다. 서로에게서 무엇이든 빼앗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서로 부딪히지 않고 배려하려는 마음, 상대가 힘이 없을 때 나눠주고 싶은 마음과 행동이 인간뿐만 아니라 나무에서도 볼 수 있다니 참 놀라운 사실이다.

나무와 인간 모두 '홀로' 보다는 '함께'가 건강하다.


인간은 나무보다 소통하고 나누는 관계가 훨씬 다양하고 복잡하다.

함께 사는 가족, 매일 만나는 동료와 친구들과의 관계도 있지만, 온라인에서의 관계도 많다. 온라인에서의 관계는 한계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어떨 때는 오프라인보다 온라인에서의 연결이 더 가깝고 튼튼하게 느껴질 때가 많다.

서로 얼굴이 안 보이고 목소리가 안 들려도, 오고 가는 글자에서 상대방의 표정도 보이고 감정도 느껴진다. 단어 하나, 물결 표시 하나에 담긴 의미는 생각보다 크다. 그래서 글자 하나로 세상 가진 듯 즐거웠다가, 짜증도 났다가 슬펐다가 한다.



온라인에서 처음 만나고, 주로 온라인으로 소통하는 사람과 진짜 친구가 될 수 있을까?

매일 만나는 사람 속도 모르는데, 작정하고 속마음이나 의도를 숨기며 만나는 관계도 있을 텐데, 온라인은 더 어렵지 않을까?

그런데 글자가 주는 힘이 생각보다 크고, 인터넷의 연결망이 생각보다 빠르고 튼실하다.

나에게는 인터넷 연결망이 나무뿌리의 연결과 같다. 온라인으로 내가 성장할 수 있는 힘을 전달받았고, 나를 더 즐겁고 풍성하게 채울 수 있는 에너지를 받았다. 나 또한 상대방에게 내 에너지도 주고, 내 마음도 솔직하게 표현하곤 한다. 서로 오가는 가느다란 실 같은 연결망이 촘촘하게 얽히고설키며 두꺼워지고 단단해졌다. 그래서 상대방과 물리적으로 떨어진 거리가 지구 반바퀴 14,000km나 된다고 해도, 내 바로 옆 나무뿌리와 맞닿은 것처럼 가깝다. 내가 힘들 때나 즐거울 때나 마음은 이미 저 멀리 빛의 속도로 보낸다. 

어차피 오프라인으로 만나고 붙어있어도 상대의 속마음이 안 보이는 건 마찬가지다. 상대의 표정과 목소리로 내가 그럴 거라고 예상할 뿐이다. 그래서 이 마음이라는 연결은 물리적인 거리와는 상관없는 게 아닐까.


물론, 직접 만나서 같은 공간에서 부대끼는 교류를 할 수 없을 때는 아쉽다. 같이 맛있는 것 먹고 싶고, 팔짱 끼고 걸으며 잡담하고 싶기도 하다. 힘들 때는 "만나자."하고 말하고 싶을 때도 많다.

어쩌겠는가. 내 마음이 가 닿는 곳이 바로 옆집 사람이 아닌 만 킬로나 멀리 떨어진 곳인걸.


매우 감사하게도, 친구가 먼 거리를 날아왔다. 그리고 우리는 만났다.

그동안 하지 못했던, 하고 싶었던 소소한 일상을 함께 보내고 있는 중이다. 단 1초의 오차 없이 흘러가는 시간이 미울 뿐이다.

꿈같은 소중한 시간을 통해, 다 죽어가는 나무를 한참 동안이나 뿌리를 통해 영양분을 제공했던 나무들처럼, 우리의 연결망도 더 견고하고 예뻐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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