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심하게 고민하고 마음을 담아.
기억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감동받는 것이라고 합니다.
(책은 도끼다에서 발췌)
언제부터인가, 사람을 만나고 오면 영상을 선물했다.
만날 때 대화하고 웃고 떠드는 등 함께 하는 모습을 동영상으로 찍는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음악도 넣고 자막도 넣어서 그날을 기억할 수 있는 한 편의 영상으로 만들었다. 상대방에게 보내주면 무척 좋아했다.
"보고 또 보게 되네요."
"왜 눈물 나요?? 전율 쫙 너무 감동이에요."
"덕분에 우리의 추억이 돋보여졌어요~"
영상을 만든 나도 좋고 함께 추억할 수 있는 상대방도 좋고, 나중에도 꺼내 볼 수 있는 기록이다.
힘에 부칠 때도 있다. 인원이 꽤 많은 모임이라면, 편집할 부분도 많고 한 명씩 모두 골고루 넣어야 하고 기획과 스토리가 재밌어야 하고.... 신경 써야 할 게 한두 개가 아니다. 시간이 꽤 많이 걸린다.
'나는 왜 이걸 하고 있나...' 싶다가도 막상 만들어 놓고 나면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다.
우연히 시작한 게 1년을 넘게 지속해오고 있다.
내가 영상을 만드는 이유는 내가 미처 몰랐던 내 무의식에 있었다는 걸 몇 달 전에야 알게 되었다.
4월에 책 출간 저자특강을 준비할 때, 가볍게 스치고 간 '공황 장애'에 대해서 얘기를 꺼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떠오른 기억이다.
둘째 임신 중 단 며칠간 잠을 못 자는 공황 장애 증상이 있었는데, 당시 스튜디오에서 만삭 사진을 찍고 나서 그 증상이 사라졌다. 스튜디오에서 뭉클한 배경음악을 깔고 사진을 모아 영상으로 편집해서 보여줬다. 계약을 하기 위한 마케팅 전략이었다. 나는 그 영상을 보고 눈물을 뚝뚝 흘렸다.
'남편과 첫째 아들, 그리고 뱃속에 둘째 딸까지 이렇게 행복한 가정이 있는데 나는 뭐가 무서워서, 뭐가 불안해서 그런 증상을 겪고 있는 거지? 이렇게 사랑하는 가족이 내 옆에 있는데!'
영상을 보며 마음이 벅차올랐고, 그 순간 이제 공황 장애 따위는 오지 않을 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리고 정말로 그날 밤부터 두 다리 쭉 뻗고 잤다.
내 무의식 중에 영상이 주는 큰 감동이 계속 자리하고 있었나 보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계속 영상을 만들어서 선물하고 공유했나 싶다. 언제든 재생할 수 있고, 그날의 느낌을 다시 느껴볼 수 있는 게 얼마나 큰 행복인가.
나는 선물하는 걸 좋아한다. 그리고 나름 선물을 '잘' 한다고 생각한다.
선물을 잘하려면 상대방에 대해서 잘 알아야 한다. 무조건 값 비싼 게 더 좋은 선물이고 더 기억에 오래 남는 건 아니다. 내 마음이 그대로 상대에게 전달된다면 그것이야말로 가장 좋은 선물이 아닐까.
"사람들이, 뭘 받아도 고마워할 줄도 모르더라고."
지인에게 들은 말이다.
어떤 사람은 받는 것 자체를 당연하게 여기거나 감사함을 잘 느끼지 못하기도 한다. 그런 사람은 선물을 주고받는 경험을 많이 안 해봤을 수도 있고, '선물'이라는 것 자체에 큰 의미와 가치를 못 느낄 수도 있다.
선물을 잘하는 사람은 잘 받을 줄도 안다. 그리고 받는 즐거움만큼 주는 즐거움도 크다.
그 사람을 생각하면, 어떤 선물을 해야 할지 떠오른다.
한때는 쿠키를 직접 구워서 선물을 많이 하곤 했다. 그리고 최근엔 부담 없이 마음을 표현하고 싶을 땐, 카카오톡 기프티콘도 많이 사용한다.
전부터 선물을 주고 싶은 사람이 있는데, 난관에 봉착했다. 내 마음을 담은 뭔가를 주고 싶은데, 도대체 무엇을 줘야 할지 모르겠다. A와는 관계가 그렇게 가깝지 않은데, 떠올려보면 내가 받은 게 너무 많다.
'이 고마움을 어떻게 표현해야 하지?'
내 책에는 내가 혈당이 높은 편이라서 음식을 주의해야 한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내 책을 읽었다고 해도 막상 만나면 그 사실을 잊는 경우가 많다. 본인 얘기가 아니니까 당연히 잊어버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A는 그 사실을 늘 기억하고 있었다. 내 생일에도 케이크는 혈당에 안 좋으니, 다른 선물을 보내겠다며 꽃다발을 보내왔다.
온라인에서만 볼 때는 그저 밝고 활발한 줄로만 알았는데 실제로 만나 보니, 속이 깊고 세심한 사람이었다.
나름 세심하다고 자부하는 나 자신을 보는 것 같기도, 아니 나보다 더 세심하고 잘 챙겨주는 사람인 것 같았다.
며칠 전에도 나는 뭐 하나 물어봤을 뿐인데 내게 정보와 방법을 한 바가지 보내줬다.
"헉 이렇게까지요?"
나는 또 상상 이상으로 받기만 했다. 고마움을 넘어 감동받았다.
나도 주고 싶은데... 그러고 보니 나는 A에 대해서 아는 게 별로 없다. 이번에는 카톡 기프티콘을 보내고 싶지는 않고, 특별한 뭔가를 기억할 수 있는 것을 주고 싶어서 며칠 째 고민 중이다.
선물이란 마음의 전달이다. 어떤 것이든 다 소중하다. 가볍고 무거움은 없이 소중할 뿐이다.
다만, 때에 따라서, 사람과 상황에 따라서 그에 맞게 마음 전달이 잘 될 수 있는 것으로 고르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기억에 남는 선물이 될 수 있을 테니까.
받는 이가 좋아할 만한 것으로 세심하게 고르고 마음을 표현하는 것, 이것이 내가 잘 선물하는 방법이다.
며칠 동안의 고민을 끝내고 이제 하나씩 선물 준비를 해봐야겠다.
아마 A는 내가 무엇을 주어도 다 좋다고 하며, 깊이 고마워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