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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d Opener Sep 13. 2020

'헐~' 리액션에 마음이 담기기까지

그녀(her)들과의 소통을 위한 마법 같은 비법은 나에게도 유효할까?

헐~, 대박, 진짜, 웬일이야, 정말!!


언제든지 이 다섯 단어를 적절하게 활용할 수 있는 리액션 연습만 완벽하게 되어있다면, 난제라고만 생각했던 그녀들과의 대화도 손쉽게 풀린단다. 이 마법 같은 비법을 전하는 유명한 실전 연애학 강사는 예시 상황을 재미있게 설명하며, 여성과의 소통은 참 쉬운 것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나도 이 쉬운 것을 한번 해내 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어려운 일도 아무렇지 않게 척척 해내는 송중기는 아니지만, 이 쉬운 일쯤은 나도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면서 말이다.

 "그 어려운 것을 또 해냅니다. 제가"외 각종 유행어를 탄생시킨 그는 남자가 봐도 예쁘다.  ⓒ드라마 <태양의 후예> 갈무리


사전 준비에도 여전히 어색한 내 '헐' 리액션


연기자들처럼 거울을 보면서 연습하는 정성까지 쏟진 않았지만, 나름 평소 이미지 트레이닝을 통 언제든지 마법의 단어들을 꺼낼 수 있도록 준비했다. 하지만 실전은 그렇게 만만한 것이 아니었는지, 내가 준비한 '헐' 은 미묘한 엇박자를 낼 때가 많았다. 어쩌다 굳 타이밍에 '헐'이 내 입 밖을 탈출했더라도 평소와 다른 동공의 흔들림과 조금은 긴장된 안면근육의 차이를 그녀들은 기가 막히게 칮아냈다. 역효과로 무거워진 공기는 나를 다시 고민에 빠뜨렸다.


그래서 다시 몇 가지 가설로 문제점을 분석해다. 내가 송중기가 아니라는 아주 분명한 사실이 문제일 수도 있다.(지금도 일부 그런 점이 없지도 않지만 있지도 아니한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전문가는 보편적으로 적용될 수 없는 비법을 대중들에게 설파한 것이라는 말이 된다. 하지만, 굉장히 많은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있는 그 해법을 그렇다고 단정 짓기도 어려웠다. 결국 연습 부족이라고 결론을 내려보지만,  올림픽 종목도 아니고 사람과의 관계가 리액션 연습으로 개선된다는 것은 그냥 싫다. 애초에 처세술의 하나로 이 비법을 내 삶의 적용하는 것은 내가 내가 아니게 되는 것 같아 더 그렇다. 나의 '헐'은 그래서 항상 뭔가 어색했나 보다.

 완벽하게 준비된 리액션으로 그녀들을 웃게 할 수 있다면, 혹 영혼이 담기지 않았더라도 괜찮은 걸까? ⓒpixabay


'헐' 리액션은 공감을 위한 과정


그렇다고 쉽게 포기할 수도 없으니 방법을 찾아야 했고, 결국 이 비법을 적용하기 위해 나는 스스로를 다시 설득했다. 리액션을 하는 이유를 영혼 없는 소통을 위한 것이 아닌 그녀들의 마음을 이해하고 공감하기 위한 과정으로 생각하기로 말이다. 그녀들이 다섯 단어를 통한 리액션에 반응하는 것은 결국 '공감'을 원하는 마음 때문일 테고, 나의 '헐'에 버퍼링이 걸리는 이유는 공감하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추가 정보가 필요하기 때문이니 꽤나 설득력 있는 이유였다. 이렇게 이유를 찾은 내 리액션은 개선되기 시작했고, 이제 그녀들도 종종 공감에 필요한 추가 정보를 주곤 한다. 정보가 늘어날수록 자연스럽게 나의 '헐'에도 마음이 담기기 시작했다.



에필로그

어머니는 평범한 음식이라도 도시락에 그냥 넣어주시는 법이 없었다. 항상 가장 예쁜 모양의 것만 담아주셨는데, 예를 들어 모양과 상관없이 맛이 정해지는 김밥도 조금만 칼질이 잘못되면 가차 없이 탈락이었다. 이처럼 정성이라는 세상에서 가장 비싼 조미료가 들어간 엄마의 음식은 항상 최고였다. 어렸을 적부터 이런 호사스러운 음식을 끼니마다 대해온 나는 웬만한 음식엔 리액션이 나오지 않는다.   
항상 건강을 위해 살도 좀 빼라고 말씀하시는데, 왜인지 어머니의 밥상은 추가 주문이 없어도 끊임없이 리필된다. ⓒpixabay

리액션에 대한 생각을 바꾸고 난 후에 어머니 집에 들렀었다. 제대로 신경 쓰지 못했다는 밑밥을 잔뜩 늘어놓으신 후에야 엄마는 밥상 한가득 음식을 내놓으셨다. 여전히 최고의 음식이었지만 너무 익숙한 맛이다 보니 큰 맘먹고 준비한 리액션에 예상치 못한 버퍼링이 걸렸다. 


아차 싶었지만, 어머니는 애교 없는 아들의 느닷없는 리액션이 반가우셨는지  술술 추가 정보를 풀어놓기 시작하신다. 음식을 만드는데 걸린 시간이며, 남들과 다르게 넣은 재료와 좋은 식재료를 고르는 법, 조리 시 주의해야 할 점 등 이 나이 되도록 한 번도 듣지 못했던 어머니만의 요리비법들이었다. 그렇게 뜻밖에 시작된 레시피 전수는 한참 뒤에야 끝이 났다. 내가 그 요리들을 직접 해서 먹을 날이 올진 잘 모르겠지만, 분명한 것은 다음번 리액션은 좀 더 괜찮을 거라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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