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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d Opener Sep 27. 2020

조용하게라도 해나가면 좋겠어

말썽 없이도 유별난 일들을 해나갈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

조용히 + 해


창 시절 수도 없이 들었던 말이다. 분명히 지금 하고 있는 행동을 하지 말라는 이야기 같은데, 단순히 문장의 의미를 곱씹어 보면 결국 하란 말이다. 단, 조용하게. 그래서 볼륨만 줄인 상태로 입을 쉬지 않으면, 여지없이 분필이 정확하게 날아와 내 이마에 꽂이 곤 했다. 왠지 억울했다. 차라리 "그 입 다물라!"라든지 " 한 번만 더 그 입을 열면 재봉틀로 네 입을 XXXXX "라고 말씀해 주셨다면 그리 하지 않았을 텐데 말이다.


이건 분명  Be quiet와 Keep it down으로 회자의 의도에 따라 언어적 표현을 분명히 구별하는 영어문화권과 달리 같은 말도 회자의 의도를 청자의 입장에서 해석해서 달리 들어야 하는 경우 많은 우리나라에서 더 흔하게 발생하는 혼란이다. 게대가 한쪽으로 기울어진 용도로 사용되는 경우를 상대적으로 더 많이 학습하게 되면 본래 언어의 의미와는 다르게 각인된다. "조용히 해"라는 말도 사실 "Keep it down"에 가까운 말인데 "Be quiet"처럼 사용하는 경우를  자주 겪다 보니 그 말은 어느새 본래 의미를 잃어버렸다.


선생님이 자리를 비우셨더라도 수업시간에는 조용해야 했다. 꼭 그래야만 했는지 모르겠다. 친구들과의 세상 진지한 이야기는 오히려 그 시간에  더 많이 나왔던 것 같은데 말이다.
조용히 [부사] 
1.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아니하고 고요히. 2. 말이나 행동, 성격 따위가 수선스럽지 않고 매우 얌전히. 3. 말썽이 없이 평온히  <네이버 국어사전>


하고 싶은 것도 하고 싶은 말도 많았던 그때 나는 꽤나 말썽 쟁이였을지 모르겠다. 그런 나한테 "조용히 해"라는 말은 도전이었다. 침묵을 강요하는 의미로 전달되는 말 앞에서 문자적 의미로 조용히 해나갈 요령이 없던 나는 꽤나 시끄러운 일들을 많이 만들어 냈다. 예를 들어 왜 꼭 모두가 야간 및 주말 자율학습을 학교에서 해야 하는 건지, 성적이 목표라면 자율학습 없이 해당 목표만 달성하면 괜찮은 것은 아닌지 등을 항변하다 짧은 스포츠 머리조차 소중했던 그때 민머리를 경험하기도 했다. 


이렇게 말썽쟁이들의 불이익을 보고 무난하게 사는 것이 정답이라는 반복 학습을 하게 되면,  뭔가 특별한 일을 아예 하지 않는 사람이 되어 버릴 위험이 높아진다. 말썽의 여지가 조금이라도 있는 일을 아예 안 하면 피곤한 일이 생길 리도 없으니 그게 최선인 것처럼 보이니까 말이다. 그리고는 튀지 않는 보통의 기준에 맞춰 살기 위해 꽤나 또 피곤한 삶을 살아간다.


나이가 먹어가니 인생의 여러 요령들이 생겨나니 좋다. 이전에는 시끄럽게 할 일들도, 조용히 할 수 있는 방법들을 알아간다. 아예 안 하는 게 덜 피곤한 것이라는 주변의 만류에도 말썽 없이 해나갈 수 있는 이 나이의 내가 참 좋다. 시끄럽게 해 나가기엔 창피하기도 한 나이기도 하니, 조용하게라도 멈추지 말고 계속해나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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