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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d Opener Oct 11. 2020

사랑에 꼭 필요한 균형감각

럽라벨까지 지켜지는 시대의 찐사랑에 대한 생각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에 균형을 유지하기란 꽤나 어려운 일이다. 마음을 다하는 사랑을 하는 경우는 더욱 그렇다. 깨어있는 시간도 모자라 꿈에서 까지 누군가를 그리는 것이 일상이 되어 버리기도 하고, 함께 할 수 있는 10분을 위해 아낌없이 수십 배가 넘는 시간을 투자해 버리는 바보가 돼버리기도 한다.


마음이 시키는 일이니 생각대로 조정하기 힘든 것이 당연할지 모른다. 내가 준 마음이 돌아오지 않는 그 고통스러운 위험까지도 감수하는 것이 사랑이니까. 하지만 요새는 그 어려운 것들을 해내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는 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된다.

럽라벨까지 지켜가는 대단한 사람들이 늘어가고 있다.

워라벨(work life balance)이란 말이 익숙한 시대라서 그런지 럽라벨(love life balance)도 잘 지켜나가는 것 일까? 적당히 손해 볼 사랑은 회피하고 자신의 마음을 미리 잘 재단한다. 썸 정도로 간을 보다가 과감하게 손절하는 것도 빠르다. 정말 대단한 사람들이다. 마음의 손익을 정확하게 계산하고, 사랑이 삶을 무너뜨릴 수 없게 균형을 유지하는 어마 무시한 일을 해나가다니 말이다.


너의 모든 순간 그게 나였으면 좋겠다
생각만 해도 가슴이 차올라 나는 온통 너로
니 모든 순간 나였으면
- 성시경의 <너의 모든 순간> 중에서 -


어쩌면 너의 모든 순간이 나이기를 바랐던 기대가 무너졌던 경험이 럽라벨을 지켜나가야겠다는 각오를 다지게 된 계기가 되었을지 모르겠다. 나는 온통 너로 가득 차 있는데 네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는 참 아프다. 그래서 다시 그 고통과 마주할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 생각이 마음을 제어하도록 내어버려 두는 것이겠지라고 생각해 본다.


아무리 그렇게 이해하려고 해도, 마음을 저울질해서 균형을 이루는 것이 온전한 사랑이라는 생각이 안 든다. 애초에 마음을 정확하게 계량할 수 있는 저울은 존재할 수 없으니까. 할 수 없는 것을 하려면 오히려 상처 받는 것은 본인이다. 마음에 나는 상처라 잘 안 보이고 곪아 터지기 전까지 모르는 것뿐이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정확하게 균형을 잡아내는 저 녀석처럼 내 사랑도 그러해야 할까?


넌 내 거야, 무조건 내편 해!


다만 사랑하는 이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균형감각은 필요하다. 사랑의 결과가 내 것인 무조건 내 편을 만드는 것이란 말을 종종 듣는데 굉장히 듣기 거북했다. 물건도 아닌 사랑의 대상을 소유하는 개념처럼 들려서 좀 이상하기까지 했다.  무조건 편을 드는 것, 잘못된 경우에도 편파판정까지 해야 하는 것이 사랑의 결과라면  이건 분명 잘못된 것이다.


똑같이 자녀가 사고를 저질러 학교에 불려 간 두 부모가 있다. 한쪽은 우리 아이가 그럴 리가 없다며 고성을 지르고 있고, 다른 한 부모는 무릎을 꿇고 자녀의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고 있다. 어떤 부모가 자녀는 사랑하는 것일까? 전자는 사랑해서 편을 드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렇게 키우지 않았으니 그런 결과가 나올 리 없다며 책임을 회피하는 것에 가깝다. 후자는 자녀의 잘못을 대신해서 책임지겠다는 마음이 더 앞선 행동이다. 단순히 편을 드는 것은 굉장히 하기 쉬운 일이고, 편을 드는 대신 책임을 지는 것은 훨씬 어려운 일이다. 사랑은 그 어려운 것을 하게 만든다.


그래서 사랑을 한다는 것은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네 곁을 떠나지 않겠어라는 의미여야 한다. 너의 잘못도 어려움도 나는 객관적으로 바라보겠지만 어떠한 경우에도 함께 일 것이라는 상호 신뢰가 그 결과이어야 한다고 믿는다. 그게 진짜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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