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에 균형을 유지하기란 꽤나 어려운 일이다. 마음을 다하는 사랑을 하는 경우는 더욱 그렇다. 깨어있는 시간도 모자라 꿈에서 까지 누군가를 그리는 것이 일상이 되어 버리기도 하고, 함께 할 수 있는 10분을 위해 아낌없이 수십 배가 넘는 시간을 투자해 버리는 바보가 돼버리기도 한다.
마음이 시키는 일이니 생각대로 조정하기 힘든 것이 당연할지 모른다. 내가 준 마음이 돌아오지 않는 그 고통스러운 위험까지도 감수하는 것이 사랑이니까. 하지만 요새는 그 어려운 것들을 해내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는 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된다.
럽라벨까지 지켜가는 대단한 사람들이 늘어가고 있다.
워라벨(work life balance)이란 말이 익숙한 시대라서 그런지 럽라벨(love life balance)도 잘 지켜나가는 것 일까? 적당히 손해 볼 사랑은 회피하고 자신의 마음을 미리 잘 재단한다. 썸 정도로 간을 보다가 과감하게 손절하는 것도 빠르다. 정말 대단한 사람들이다. 마음의 손익을 정확하게 계산하고, 사랑이 삶을 무너뜨릴 수 없게 균형을 유지하는 어마 무시한 일을 해나가다니 말이다.
너의 모든 순간 그게 나였으면 좋겠다 생각만 해도 가슴이 차올라 나는 온통 너로 니 모든 순간 나였으면 - 성시경의 <너의 모든 순간> 중에서 -
어쩌면 너의 모든 순간이 나이기를 바랐던 기대가 무너졌던 경험이 럽라벨을 지켜나가야겠다는 각오를 다지게 된 계기가 되었을지 모르겠다. 나는 온통 너로 가득 차 있는데 네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는 참 아프다. 그래서 다시 그 고통과 마주할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 생각이 마음을 제어하도록 내어버려 두는 것이겠지라고 생각해 본다.
아무리 그렇게 이해하려고 해도, 마음을 저울질해서 균형을 이루는 것이 온전한 사랑이라는 생각이 안 든다. 애초에 마음을 정확하게 계량할 수 있는 저울은 존재할 수 없으니까. 할 수 없는 것을 하려면 오히려 상처 받는 것은 본인이다. 마음에 나는 상처라 잘 안 보이고 곪아 터지기 전까지 모르는 것뿐이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정확하게 균형을 잡아내는 저 녀석처럼 내 사랑도 그러해야 할까?
넌 내 거야, 무조건 내편 해!
다만 사랑하는 이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균형감각은 필요하다. 사랑의 결과가 내 것인 무조건 내 편을 만드는 것이란 말을 종종 듣는데 굉장히 듣기 거북했다. 물건도 아닌 사랑의 대상을 소유하는 개념처럼 들려서 좀 이상하기까지 했다. 무조건 편을 드는 것, 잘못된 경우에도 편파판정까지 해야 하는 것이 사랑의 결과라면 이건 분명 잘못된 것이다.
똑같이 자녀가 사고를 저질러 학교에 불려 간 두 부모가 있다. 한쪽은 우리 아이가 그럴 리가 없다며 고성을 지르고 있고, 다른 한 부모는 무릎을 꿇고 자녀의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고 있다. 어떤 부모가 자녀는 사랑하는 것일까? 전자는 사랑해서 편을 드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렇게 키우지 않았으니 그런 결과가 나올 리 없다며 책임을 회피하는 것에 가깝다. 후자는 자녀의 잘못을 대신해서 책임지겠다는 마음이 더 앞선 행동이다. 단순히 편을 드는 것은 굉장히 하기 쉬운 일이고, 편을 드는 대신 책임을 지는 것은 훨씬 어려운 일이다. 사랑은 그 어려운 것을 하게 만든다.
그래서 사랑을 한다는 것은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네 곁을 떠나지 않겠어라는 의미여야 한다. 너의 잘못도 어려움도 나는 객관적으로 바라보겠지만 어떠한 경우에도 함께 일 것이라는 상호 신뢰가 그 결과이어야 한다고 믿는다. 그게 진짜 사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