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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d Opener Oct 30. 2020

숨겨진 다(多)행(幸) 발견하기

하나둘씩 사라져 가는 학창 시절의 기억 중 평생 남아있을 것이라 확신하는 강렬한 기억이 하나 있다. 스스로를 영화배우 홍금보를 닮았다고(특별히 그렇다고 주장하지 않으셨었도 이미 나는 너무 똑같았다고 생각했었다) 이야기하시던 한 선생님에 대한 일화다.


죄송하게도 나는 선생님의 이름도 가르쳐주시던 과목이 무엇인지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한다. 수업에 대한 기억도 담당하시던 과목이 대입 수험에 포함되지 않아 다른 시간에 비해 여유가 있는 편이었다는 정도만 남아있다. 수업에 여유가 있는 만큼 선생님은 수험준비에 지친 우리에게 종종 삶에 도움이 될만한 이야기를 들려주시곤 했는데,  항상 큰 눈을 활용한 풍부한 표정연기와 과장된 액션을 함께 보여주셨다. 내게 남겨진 강렬한 기억 속 이야기에서도 선생님은 그렇게 최선을 다하셨다.

#살아있다!!!!

갑작스러운 고함으로 모두를 놀라게 하며 이목을 집중시킨 선생님은 자신의 가족이 하루도 거르지 않고 시행하고 있는 일례 행사를 설명하셨다. 가족 구성원 모두가 아침마다 이렇게 소리를 지르며 오늘 아침도 여전히 살아있음을  알리는 것으로 시작되는 이 일례 행사는 각자 방에서 뛰쳐나와 "나도 살았는데 너도 살았니?"라는 대화와 얼굴을 어루만지는 스킨쉽 등으로 서로의 생사를 확인한 후에 함께 얼싸안고 도는 등의 감격에 겨운 세리머니로 마무리된다고 하셨다. 선생님은 설명 후에도 뭔가 부족하다 느끼셨는지 그 큰 눈에 벅찬 감격을 담고 소리를 지르면서 교실 안에서 뛰기 시작하셨다. 그리고는 놀라서 굳어있던 우리 중 몇 명과 격한 허그를 이어가시며 그날 아침에 있었던 일들을 재현하셨다. 어이없어하는 우리들을 향해 선생님은 잠자다가 죽는 일도 허다한데 그 일이 나를 지나가고 여전히 살아있으니 얼마나 기쁘냐며 반문하셨다.

 코로나 19 시국도 아닌데, 매일 살아있다를 외친 선생님이 요즘 인스타그램울 하신다면 해시태그는  "#살아있다" 가 아닐까?


오늘도 다(多)행(幸)이야~

한자 幸(행)[대행,행복]은  '어리다, 죽다 土(夭의 변형) 요 + 거스르다 屰 역'의 결합으로 죽음의 상황을 거슬러 목숨을 구하게 되어 '다행'이고 어려운 상황이 반전되어 '행복'하다는 뜻이다. 한자의 의미만 보면 아이러니하게도 죽음이나 불행을 가까이 두어야 다행스럽고 행복한 일이 늘어나는 것만 같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맞는 말이다. 아침에 눈을 뜨는 누구나 당연하다 생각할 일을 다행으로 여기는 것은 죽음을 항상 가까이 둔 선생님의 삶의 자세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그것이 일부러 나의 다행을 확인하기 위해 불행과 지근거리를 유지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닐 것이다. 다른 이의 불행을 나의 일상의 다행을 확인하는 도구로 쓸 수는 없는 일이니 말이다. 죽음을 가까이 둔다는 것은 오늘을 더 소중히 여기고 진지하게 살아간다는 것이고, 그러한 절망의 상황을 맞이한 이들을 가슴 가까이 둔다는 의미라고 생각한다.

네잎클로버가 행운을 뜻하는 이유는 행운이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올바른 삶의 자세를 가지고 발견하는 것이기 때문 아닐까? 

그러고 보면 보통의 하루처럼 보이는 오늘에도 수많은(多) 행(幸)이 숨어 있다. 하루를 찬찬히 돌려보니 참 나는 운이 좋은 녀석이었다. 바로 잡은 삶의 자세는 나의 눈높이를 높이고, 더 많은 행(幸)을 발견하게 만들어준다. 그렇다. 다행은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올바른 삶의 자세를 가진 사람들이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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