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정까지는 시간이 좀 남았다. 아직 늦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한 남자는 터질듯한 가슴을 움켜쥐고 가쁜 숨을 몰아쉬기 시작했다. 이제 조금만 기다리면 그녀가 이곳을 지날 테다. 이날만을 기다리며 지내온 수많은 날들이 남자의 머릿속을 빠르게 스친다.
남자는 그녀를 만날 수 있을까?
"또각 또~각"
멀리서 들려오는 소리에 남자는 떨리는 미소를 지었다. 이 하이힐 소리는 분명 그녀의 것이다. 남들은 잘 모르지만 그녀는 오른발을 내딛을 때 좀 더 힘을 주는 버릇이 있다. 이 미묘한 엇박자를 남자가 놓칠 리 없다. 소리가 가까워지자 남자는 천천히 숨을 고르고 그녀를 마주하기 위한 준비를 마친다. '기나긴 기다림도 드디어 오늘로 끝이구나'라고 생각한 남자는 그녀를 향해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단언컨대 육하원칙 중 가장 중요한 요소는 "왜"다.
같은 일을 묘사하더라도 그 이유가 달라지면 전혀 다른 풍경이 된다. 위 이야기에서 남자는 '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을까? 오랜 수소문 끝에 찾아낸 옛 연인을 만나기 위함이었다면, 이 이야기는 옛 연인을 그리는 남자의 애절한 마음을 담은 것이 될 것이다. 하지만, 원한을 갚기 위해 오랜 시간을 준비한 남자가 복수의 칼을 품고 그녀를 기다리는 것이라면 이야기가 매우 무섭게 바뀌어 버린다. 만약, 발소리만으로 그녀인지 확인할 수 있는 스토커의 기다림이라면 상상만으로 소름이 끼친다.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것은 결국 '왜'이다. 다른 이유를 가지고 같은 행동을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사람들은 각자의 '왜'를 가지고 살아간다. 무거운 출근길을 나서게 만든 것은 성스러운 직업의식일 수도 있지만, 누군가에겐 곧 사라지더라도 꼭 찍혀야만 하는 월급통장의 쥐꼬리만 한 숫자가 이유일 수도 있다.
우습지만 어릴 적 나의 말싸움 승률을 높여준 건 '육하원칙' 신공이다. 상대는 보통 왜"에서 말문이 막혔다.
왜인지 모르겠는데 도대체 어떻게 하라는 거지?
업무지시 유형에도 여러 가지가 있다. 단순히 할 일(what)만을 나열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기한(when)과 함께 이렇게(how)하면 좋을 것이라고 업무방법까지 알려주는 고마운 경우도 있다. 하지만, 왜(why) 해야 하는지 자세히 알려주는 경우는 드물다.
왜가 없는 업무지시는 이행자가 상황에 따른 유연성을 발휘하기 어렵다. 그때 상사의 판단이 아무리 정확했더라도 변수가 발생하면 그 판단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왜'를 알려준 지시였다면 목적에 도달하기 위한 다른 방법을 찾아볼 수 있겠지만, 이유를 모른 일은 조그만 변수 앞에서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른 체 문제를 만들기 십상이다. 전국이 붉은 물결로 뒤덮인 2002년, 어떤 대기업 본사에는 잠시 파란색 응원 현수막이 걸렸었다. 아마 왜에 대한 고민 없는 통상적인 업무지시와 이행이 낳은 웃지 못할 해프닝이었을 거다.
그래서 난 세상 중요한 것이 왜라고 생각한다. 왜는 사람들을 움직이게 만들고 행동에 의미를 부여한다. 서로의 왜를 모를 때는 같은 시간이 전혀 다른 추억으로 그려지기도 한다.
떠나간 사람은 말이 없다. 그래서 너의 이유를 상상으로 그려 추억하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이 없다.
그때 너는 왜 그랬을까?
다 지나갔는데 종종 너를 떠올리는 것은 그리워서가 아니라 네가 '왜'를 남기고 떠갔기 때문이다. 문득 돌아서던 너의 발걸음이 어느 때보다 씩씩했던 이유가 궁금해진다. 너의 핀잔은 항상 좀 아팠는데, 알면서도 나에게 그러했던 이유가 뭔지 이젠 물을 수 없어서 답답하다. 왜 그랬는지 왜 그렇게 힘들었는지 알려주던 친절한 네가 아니라서, 네가 이야기하기 쉽게 좀 더 가까이 다가가던 내가 아니라서 너무 많은 '왜'가 나에게 남아버렸다.
결국 너를 추억하는 것은 정답 없는 문제를 푸는 것 같다. 네가 왜를 남긴 이유가 그 안에 너를 담아 내가 너를 지우게 하지 못하게 하려고 그런 건지도 모르겠다. 오늘도 수많은 왜를 상상하면서 답 없는 너의 '왜'를 숙제하듯이 풀어본다. 이렇게라도 오늘을 너와 같이 살 수 있어서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