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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편] 코로나 시대 스웨덴 박사 유학 적응기

탄올라프

나는 북유럽 국가 스웨덴의 수도 스톡홀름에 위치한 스톡홀름대학교 (Stockholm University)에서 2020년 9월부터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입학 직전까지 이 나라 이 도시에 어찌저찌 4여년간 살기는 했지만, 이 사회에서 학생의 신분으로 사는 것은 처음이고, 또 코로나가 생활에 많은 변화를 가져오기도 하여 여러 면에서 적응 과정을 거치고 있는 중이다. 


스웨덴 입국 과정


싱가포르와는 달리 스웨덴으로 입국하는 과정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더군다나 나는 이미 이전 직장의 고용 조건으로 발급 되었던 거주증을 갖고 있었던 터라, 국경에서 자국민/유럽연합시민 (Swedish/EU citizen)이 아닌 그 외 (non-EU citizen) 입국자 줄에 선 것만 제외하면, 마치 자국민이 귀국하는 일정처럼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오히려 유럽연합 국가 출신 입국자보다 비유럽연합 국가 입국자가 상대적으로 또 절대적으로 (특히 코로나 이전과 비교하면) 적다보니 입국 절차를 밟는 시간도 평소보다도 짧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한국이나 싱가포르 같은 필수 자가격리 정책이 없어 해외에서의 유입이 상대적으로 쉬운 나라라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역시나 코로나 때문에 공항 전체가 한산한 것도 한 몫했다.


초가을 스톡홀름 대학교 프리스카티 캠퍼스 전경. 아무도 마스크를 쓰지 않는 것이 보인다.   @탄올라프



온라인 및 오프라인에서 참여한 박사과정  일정들


박사과정 공식 시작일이었던 9월 1일 화요일, 우리 학부의 박사과정생 환영회가 열렸다. 경제사학과(Economic History)의 세 명의 새 박사과정생과 국제관계학과(International Relations)의 유일한 새 박사과정생인 내가 각 학과의 책임교수들과 함께 했던 첫 박사과정 일정이기도 했다.* 배우자가 항암치료 중이라 각별히 조심하고 있는 교수 한명과 개인적인 이유로 조금 늦게 스웨덴에 도착하게 된 나를 제외하고는 모두 학부 회의실에 모였고,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결합한 하이브리드(hybrid) 형태로 환영회를 진행하게 되었다. 


(스웨덴 국내에 있건 해외에 있건) 사정이 있다면 실제로 대학에 오지 않고도 멀리서도 참여할 수도 있다는 장점이 있다는 점과 동시에, 정식 프로그램 내에서는 하기 어려운, 피카나 점심시간에 캐주얼하게 자기소개하고 이야기를 나누는데에 참여할 수 없었다는 단점이 좀 더 컸던 것 같다. 학기 시작 거의 두 달이 지난 지금까지, 두 명의 박사 동기를 아직까지도 실제로 만나본 적도 개인적으로 이야기해 본 적도 없다는 사실에,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어색함을 없애고 앞으로 친분을 쌓기 위한 토대를 만들기에는 역시 오프라인 교류가 필요하구나 싶다.


온/오프라인 하이브리드로 개최된 교직원 컨퍼런스날 @탄올라프


9월 7일 월요일, 스웨덴에 도착 후 처음으로 ‘진짜로’ 출근 하는 날. 공교롭게도 학부의 온 교직원들이 모이는 교직원 컨퍼런스 날이었다. 평소에도 잘 신지 않지만 코로나 이후 줄어든 공식 행사와 나의 행동 반경으로 지난해 12월 출장 이후 거의 10개월만에 처음 꺼낸 구두까지 신고, 오랜만에 새내기의 들뜬 마음으로 지냈던 하루로 기억한다. 실외와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있었던 컨퍼런스 장소에서는, 스웨덴 정부가 발표한 (거의 유일한) 코로나 지침인 50명 이상 참석하는 실내 모임 금지를 가까스로 위반 하지 않는 선에서 꽤 많은 인원들이 모여있었다. 행사가 끝난 후 있었던 간단한 뒷풀이 때 학부 사람들을 실제로 만나 인사할 수 있어서 좋았고 앞으로 새 동료들과 함께 할 시간들이 기대된다는 내 첫날 소감에 한 교수가 '이 날이 (올해는 있을지 여부도 모르는) 크리스마스 파티를 제외하고 학부 전체가 모이는 1년 중 유일한 날'이라는 그 말이, 그 후 두 달이 지나도록 그날 스쳤던 대부분의 사람들을 다시는 보지 못 했고 앞으로 몇 달간을 그러할 거라는 의미라는 것은 그 때는 알지 못했다. 


2020년이 아니었다면 1박 2일동안 학부 내 친목도모의 목적을 충실히 이행했을 이 교직원 컨퍼런스 행사. 다행히 앞으로 4년 간을 같이 할 이 사람들에게 잠깐이라도 인사할 수 있었다는 사실, 그 사람들이 학부 연구실 복도에서 나를 우연히 마주치더라도 이상한 외부인으로 취급하지 않을 수 있게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마련했다는 사실 만으로도 감사해야 했던 시간이었다. 



얼굴 없는 소통이 가져온 변화들 


9월 중순에 참여한 인문사회계열 전체 박사과정생 환영회. 평소 같았으면, 이번 학기 박사를 함께 시작하는 그리고 앞으로 4년간 스톡홀름대학교라는 장소에서 비슷한 생활을 할 다른 학부 동기들을 만난다는 마음에 설렘을 갖고 참여했을 행사였을 것이다. 대학 내 큰 강당 같은 곳에서 만나 하루를 같이 지내다 어쩌면 뒷풀이로 맥주 한 잔 했을 그 날. 학생들은 환영회 장소 주소가 아닌 Zoom 미팅 링크를 받아들고, 서로의 얼굴도 확인할 수 없는 상태에서 환영회 진행자들이 말하는 정보를 일방적으로 받아들일 뿐 이었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비디오와 오디오를 꺼놓고 수동적으로 듣기 만을 계속했고, 이에 행사를 조직하는 사람들과 진행하는 사람들에게 정말 힘들겠다 싶었던 시간이었다. 쌍방향의 대화식 커뮤니케이션은 물론이고 단순한 리액션 조차도 확인 할 수 없는 세팅에서 행사가 잘 진행이 되고 있는건지, 이 새 학생들이 오리엔테이션 내용을 이해 하고는 있는 건지, 혹은 듣고 있기는 한 건지 알 길이 없었을 것이다. 나 역시 오후 내내 비디오, 오디오를 꺼놓고 스피커만 크게 켜놓은 채, 미뤄왔던 집 대청소를 했다는 이 브런치에 하는 비밀스런 고백. 


오리엔테이션 내용을 듣는 둥 마는 둥 하는 동안 놓친 중요한 정보가 있으면 어떡하나 하는 스스로에 대한 걱정은 잠시, 예기치 못한 문제가 발생했다. 한쪽 화면에는 행사 진행 화면이, 다른 한쪽 화면에는 청각장애인을 위한 수화 통역 화면으로 매끄럽게 진행이 되다가, 한 발표자가 동영상 재생을 위해 본인 화면 공유 (screen share) 기능을 사용하자 마자 수화 통역 화면이 사라져 버렸던 것. 몇 십분을 우왕좌왕하다 결국 없던 커피 휴식시간을 만들고, Zoom 세미나로 진행하던 행사를 Zoom 미팅으로 바꿔서 다시 시작하게 되었다. 올해 3월에서야 갑작스런 사용량 증가와 함께 서비스 개편을 계속한 Zoom이 미처 생각지 못 했을 부분일 것이다. 


우리 모두 코로나로 크고 많은 변화를 겪고 이에 나름대로 적응을 해나아가고 있지만, 그 누군가는 이에 더 큰 타격을 받고 더 힘이 들어가는 적응 기간을 갖고 있을 것이라는 점을 상기시켜준 시간이었다. 이번에는 우야무야 넘어갔지만, 머지 않은 미래에 이렇게 하나하나 쌓인 사용자 데이터로 뉴노멀 환경에서의 갭을 줄여나갈 수 있기를 바란다.



 변화가 박사생들에게 어떤 의미를 가져올까?


그렇다면 코로나가 가져온 이 변화들이 내 박사생활에 어떤 의미를 가져올까? 한번도 만나보지 못한 동료들에게 1년 후에야 자기소개를 해야할 기회가 오는 것은 아닌지. 이렇게 모든 것이 명확하지 않은 시작으로 적응 기간이 계속 되는 것은 아닌지. 혹은, 오랫동안 계속 해야하는 외로운 싸움인 박사 생활에서 필수적이라는 동료애를 쌓을 기회가 있긴 한 것인지. 모든 것이 불확실하고, 이 시기를 거친 선배들이 없기에 물어볼 수 조차 없다. 


연구 초기 단계에 아이디어를 공유하거나 마지막 단계에서 결과를 공유하며 생산적인 피드백을 받고, 또 내 연구 관련 분야에서 인맥을 쌓을 수 있는 학술회의도 대부분 Zoom으로 대체된 코로나 시기. 이것이 멀리 여행하지 않고도 연구실에서 혹은 심지어 집에서 여러 국제 학술회의를 참여할 수 있는 '기회의 확대'를 의미하게 될지, 혹은 핵심 역할과 의미를 잃게 된 학술회의에 참여할 수 밖에 없는 '코로나 박사 세대의 불운'을 의미하게 될지. 모두에게 비슷하게 주어진 이 전례없는 환경에서 박사생으로서 하루하루를 충실히 살아내는 것 밖에는 답이 없고, 또 그렇게 한해두해를 지내다보면 이 변화가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자연스럽게 알게 되지 않을까. 그렇게 하다보면 2024년엔 트로피칼 디프레션도 나도 박사 논문과 함께, 코로나 박사 유학이 어떤 것이었는지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 이 브런치의 글들이 우리가 오늘 겪고 있는 변화와 고민의 흔적들이 되어, 훗날 소중한 기록으로 남기를 바란다. 


* 우리 학부는 Economic History와 International Relations 등 두 학과로 이루어져있고, 수업이 많이 겹치지는 않지만 같은 학부로서 행정 처리가 함께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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