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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편] 직장인과 대학원생 생활의 가장 큰 차이점

탄올라프

지난 브런치 글 작성이 12월이었다는 것을 새기다 벌써 2월 막바지를 향해가는 달력을 보니 코로나 이후 특히 박사 시작 이후 시간의 흐름이 달라졌다는 것을 새삼 다시 느낀다. 특별한 이벤트 없이 매일 같이 반복되는 일상들에, 달력의 숫자에 놀라는 것은 물론 조금은 경각심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지난달에는 처음으로 박사 논문을 제때에 제출하지 못하는, 앞으로 약 3년 반 동안 무수히 꿀 그 꿈을 처음으로 꾸었다. 일반 직장인에서 학생으로 신분으로 돌아오면서 가졌던 허니문 기간이 끝났다는 느낌이 들었다. 분위기를 파악하는 박사 초반 몇 개월 간의 적응기 및 과도기를 지나, 이제는 정말 학생이구나, 이제는 정말 논문을 완성시켜야 하는 박사과정생이구나 하는 감정이 크게 다가왔다. 이번 브런치에서는 그 과도기때 가장 크게 느꼈던 몇가지 감정 중, 같은 나라 같은 도시에서 직장인으로서 살다 다시 학생이 되면서 느꼈던 가장 큰 차이점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교통권은 물론전기세와 보험에도 있는 학생 할인


박사 시작 단계에서 가장 크게 느껴졌던 다른 점은 학생 할인이었다. 스웨덴은 사회 전반적으로 학생들에게 주어지는 기본적 혜택이 많다. 무료에 가까운 학석사 학비(스웨덴 및 유럽연합 시민에 한정됨)나 교통 서비스와 같은 공공기관이 제공하는 혜택은 물론이고, 일반 카페나 가게, 쇼핑몰 등에서도 학생 할인을 많이 제공하는 편이다. 직장인으로 일하며 소비했던 동일한 재화나 서비스를, 신분이 바뀌는 동시에 적게는 10프로 많게는 30프로 이상 저렴하게 소비하고 이용할 수 있다는 점은 큰 기쁨으로 다가왔다. 예를 들어 스톡홀름에서 75분간 무제한으로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는 교통권은 일반 가격으로는 38 크로나 (한화 약 5,000원)인데 반해 학생의 경우 25 크로나 (한화 약 3,300원)로 약 30프로 저렴하다. 


이런 학생 할인은 놀랍게도 전기세와 보험에서도 적용이 된다. 지난달 이사를 하게 되면서 알게 된 부분인데, 학생일 경우 같은 양의 전기를 사용하더라도 매달 전기세를 조금씩 덜 내게 되는 것은 물론이고 심지어 매년 6월부터 8월까지 3개월은 전기세를 지불하지 않아도 된다. 여름에 휴가도 많이 가고, 또 해가 완전히 지지 않기 때문에 조명에 사용하는 전기가 적다고 쳐도 상당히 놀라운 혜택이 아닐 수 없다. 이는 보험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집 보험을 새로 들어야 했는데 이 또한 나이에 상관없이 학생의 신분이라면 (심지어 월급을 받는 박사과정생이라도) 할인을 해주는 상품들이 많았다. 


생활비를 절약할 수 있는 부분에는 이러한 학생 할인도 있지만, 대학 내의 인프라를 이용할 수 있다는 것도 큰 혜택으로 느껴진다. 대학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거나 논문을 다운로드할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대학 내 여러 식당들에서도 외부 식당보다 가격은 물론이고 같은 가격이라도 훨씬 높은 질의 음식을 맛볼 수 있다. 스톡홀름의 경우 점심 특선과 같이 간단하게 나오는 단품 음식이 최소 100 크로나 (한화 약 13,400원) 정도로 잡아야 해서, 직장인이었을 때는 오히려 거의 매일 도시락을 싸서 다니곤 했다. 가격도 가격이지만 그 가격으로 나오는 음식의 질이나 양이 그다지 만족스럽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학 내에 있는 여러 식당에서 영양소 균형을 잘 맞춘 메뉴들, 특히 여러 음식을 담아 먹을 수 있는 점심 뷔페를 더 저렴하게 먹을 수 있기 때문에 오히려 직장 다닐 때보다 점심 도시락을 준비해서 다니는 경우가 현저하게 적다. 


자유로운 일상과 약한 소속감 사이


두 번째로 일상이 자유로워졌다는 점이 큰 변화다. 전 직장이 연구소였기 때문에 정해진 출퇴근 시간이 없는 등 비교적 자율적인 일과가 가능했음에도 불구하고, 박사생에게는 그와 차원이 다른 독립성이 주어진다. 전 직장에서 회의나 이메일로 업무 협의를 해야 하는 경우 실시간으로 할 수 있도록 일정 낮 시간에는 주로 사무실에서 근무하고 있거나 최소 온라인 상태에 있어야 했는데, 현재는 수업 시간이 아닌 이상 내가 일(혹은 공부)을 하고 있어야 하는 시간이 따로 정해져 있지 않다. 요즘에는 논문 작성보다 여러 수업들을 듣는 것에 집중하고 있는데, 수업 준비 및 참여에 소홀히 하지 않는 범위에서 내 마음대로 일상을 디자인할 수 있다는 점이 큰 장점이다. 예를 들어 지난달 이사 후에 아침마다 요가 스튜디오를 다니기 시작했는데, 사람이 많지 않은 시간대를 찾다 보니 결국 아침 9시에 가는 일정을 잡게 되었다. 10시 반이 넘는 시간에 학교 오피스로 출발하는데 출근 하기엔 다소 늦은 시간이기 때문에 직장인이었다면 포기해야 했을 것이다. 


하지만 자율성과 책임이 함께 주어지듯, 더 자유로워진 일상은 약해진 소속감과 연결되어 있는 듯하다. 그리고 이 소속감과 유대감이 생각보다 일상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수업 참여나 장기간에 걸친 논문 작성을 제외하고는 특별한 책임이 주어지지 않는 박사생은 학과와의 소통도 적을 수밖에 없다. 때문에 매일같이 동료들을 물리적으로 마주치거나 회의에 참여해야 하는 직장인에 비해 소속감이나 유대감이 상대적으로 약해질 수밖에 없는 것 같다. 물론 코로나의 영향도 크다. 코로나 이전에는 내 전 직장에서처럼, 학과 사람들끼리 런치 룸에서 점심 식사도 같이 하고, 매주 일정 시간에 모여 30분간 피카*를 하기도 했다고 하는데, 지금은 대부분이 재택근무를 하기 때문에 그런 자연스러운 소통의 기회가 거의 없어서 참 아쉬울 다름이다. 혼자 묵묵히 걸어가야 하는 박사생의 특성상 이는 앞으로 몇 년간 계속될 것이기 때문에, 이 문제는 차후 브런치 글에서 따로 자세히 다루게 되지 않을까 한다. 


실수해도 괜찮은 학생이라는 신분


마지막으로, 실수해도 괜찮은 신분으로 돌아왔다는 느낌을 크게 받는다. 전에 다녔던 직장에서는 더 잘 해내려는 노력을 정말 많이 했고, 석박사를 마치고 들어온 직원들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잘해야 하는 혹은 실수하지 않는 분위기가 어느 정도 형성되어 있었다. 그에 반해 배움을 목적으로 하는 대학이라는 공간은 실수나 어느 정도의 미숙함이 용인된다는 느낌을 받는다. 특히 다양한 배경을 가진 학생들이 많은 학과에서나 갓 입학한 신입 박사생들에게는 확실히 더 관대한 분위기가 있다. 내가 일을 하여 결과물을 생산해 내야 하는 위치에 있는지 배우는 것이 업인 위치에 있는지에 따라 소속 사회가 주는 기대감에 차이가 있는 듯싶다. 하나의 예로 박사생과 수퍼바이저(지도교수)의 관계는 직장 내 직원과 수퍼바이저(상사)의 관계과 확연히 다르다. 협력자와 평가자 중 누가 어느 역할에 더 치우쳐져 있는지는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이렇게 직장인에 비교했을 때 학생 신분이 갖는 (긍정적인) 특수성 이면에는, 사회생활을 하는 직장인에 비해 느리게 걸어가고 있다는 생각에 조금씩 생겨나는 불안감도 있다. 직장 다닐 때에는 일이 많거나 잘 해내야 한다는 압박이 있었어도, 무언가를 해내는 성취감이 있었기 때문에 내가 앞으로 나아간다는 느낌을 받을 수가 있었다. 하지만 최소 4년간의 박사 생활에서는 중간중간 논문을 내지 않는 이상 일상에서 내가 앞으로 나아간다는 느낌을 받기가 힘든 구조인 것 같다. 특히 내 분야는 논의 주제가 굉장히 빠르게 변하는 경향이 있어서 국제 뉴스나 세미나 등으로 최근 동향 따라가기에 바빴는데, 혹여 나중에 다시 직업 전선으로 뛰어들었을 때 논문에 집중한 나머지 그동안 여러 가지 놓친 것이 많지 않을까 걱정이 되기도 한다. 특히 늦깎이 박사생들이 이런 느낌을 많이 받을 것인데, 이제서야 왜 늦게 시작하는 박사가 더 어려운 선택일 수 있는지 새삼 더 느끼게 된다. 무사히 학위과정을 잘 끝내고, 그래도 박사 하기를 잘했다고 외치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피카(fika): 다과를 곁들인 커피/티 타임을 갖는다는 스웨덴 단어로, 아무리 바쁜 일이 있어도 일상에 쉼이 있어야 한다는 스웨덴 문화를 대표하는 특수한 개념이기 때문에 번역 시에도 단어 그대로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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