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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킴 May 09. 2021

추억 일기 : 중학생 이야기 28

다슬기 장조림


지금까지 살면서 다른 집에서나 식당에서나 친구들 집에서나 같은 유형의 반찬을 본 적이 없다.

제조과정을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우선 1급수에서 청정하게 자란 다슬기(지역별 명칭에 다소 차이가 있다. 고동, 대수리 등등)를 깨끗한 물에 씻은 후 간장을 물로 희석하여 다슬기를 넣고 약한 불로 장조림을 한다.


그전에 식칼 등날로 다슬기의 꽁다리를 잘라주어야 하는데 이게 손이 많이 간다.

낱개로 한 개씩 꽁지를 끊어내야 하므로 온전하게 인내심이 필요한 과정이다. 우리 엄마는 아버지와 자식들의 풍요로운 식탁을 위하여 단호하게 지루한 칼질로 우리들에게 손쉬운 취식을 제공하셨다.

밥 한 숟갈에 다슬기 장조림 한 개만 먹어도 자칫 방향을 잃었던 입 맛을 돌아오게 만드는 마성의 영역은 정말 특별한 반찬으로 둔갑하게 만든다.

내 글을 읽고 누군가는 뭐 그리 대단한 반찬일까 하고 궁금해할 수도 있겠다.

그렇지만 그대가 안 먹어본 음식을 글로 설명한다는 것부터 무리수가 작용을 한다.

궁금하면 직접 만들어 먹어보면 알게 되리라.


짭조름하게 검푸른 조림 국물 한 숟가락은 식전 훌륭한 애피타이저가 되어 주고 밥공기가 비워지는 시간까지 식욕을 유지시켜주는 풍미가 있다.

묽은 간장으로 적당하게 삶아진 다슬기 주둥이를 입에 앙증맞게 물고 배고픈 아이가 엄마 젖을 빨듯이 호흡을 집중하여 순식간에 흡입하면 다슬기 껍질 속 나선형을 따라서 곱게 초록의 알몸으로 숨어있던 다슬기 속살과 기분 좋은 흙향기가 입안에서 함께 방황을 시작한다.


최근에는 포차 안주로 마른 체형의 다슬기를 맛 볼 수 있는데 엄마의 손길과는 체급이 다른 위로를 받곤 한다.



연근조림


연근을 횡으로 잘 썰어서 조청과 간장을 적절하게 섞으면 단짠의 맛으로 사각거리며 입안을 즐겁게 한다.

본래는 흰색에 가까운데 간장색이 입혀진 갈색 톤도 왠지 잘 어울리고 썰려진 단면을 보면 송송하게 9개 정도의 구멍이 뚫려 있는 모습도 식감과 매우 조화롭다.


자료를 찾아보니 율곡 선생이 엄마 신사임당을 여의고 실의에 빠져 있다가 건강을 상하게 되었는데 그의 건강을 회복시켜준 음식이 <연근죽>이었다고 한다.

나에게 연근조림은 엄마가 우리 가정을 지키고자 노력했던 생명력으로 다가온다.


연근을 자르면 가는 실과 같은 것이 엉겨서 끈끈한 것은 뮤신mucin이라는 물질인데 강장과 강정에 좋다고 하니 남성과 여성이 나란하게 앉아 사이좋게 먹어도 좋을 음식이다.

갑자기 일본 영화에서 본 연근조림이 생각난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2003

감독/이누도 잇신, 주연/츠마부키 사토시(츠네오), 이케와키 치즈루(조제), 우에노 주리(카나에)


다나베 세이코의 단편 소설 [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을 원작으로 하는 작품이다.

‘사랑’이라는 주제로 글을 즐겨 쓰는 작가답게 그녀는 일상 속에서 일어나는 사랑의 움직임을 탁월하게 표현하고 있다.

특히 지금껏 보지 못한 독창적인 캐릭터, 울컥하게 만드는 스토리 등이 완벽한 조화를 이루어 나의 마음을 들었다가 놓곤 했다.

스무 장 남짓한 단편 소설을 각색해서 조제와 츠네오의 강렬한 첫 만남으로 설렘과 벅참이 공존하는 사랑이 시작되는 순간부터 빛이 바래져가는 사랑으로 인해 이들이 헤어지기까지의 이야기를 차곡차곡 쌓았다.

내 인생에 우연이 찾아온 보석 같은 일본 영화의 출발점이다.


명대사)

. 가란다고 진짜 가버릴 거면 가버려!!

. 이별의 이유는 여러 가지였지만.... 아니, 사실은 하나다. 내가 도망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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