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간 교육이 있어서 고향에 갔다가 고속터미널 근처에서 저녁을 먹자고 불친이 잡은 식당은 코다리를 주 요리로 막걸리가 무한리필이 되는 곳이었다.
일반적으로 무한리필이 된다고 하면 전반적인 품질이 하향 평균화로 생각하는 경향들이 있는데 이 날은 이러한 편견이 산산조각이 났다.
오히려 나는 식사를 했으니 배가 불러와서 막걸리가 많이 들어가지 않겠구나 싶었고 어제 과음으로 정신줄을 놓고 마신 숙취는 아직 해소가되지 않아서 불친과 약속을 잡을 때 음주에 소극적일 수 있다고 미리 양해를 구했다.
나는 친구들과 만남을 정할때 우선 예상되는 음주 분위기와 음주량에 대한 기준을 나름대로정립한 후 출정에 나선다.
예를 들어서 음주가 강한 성격의 모임은 며칠 전부터 몸만들기에 들어간다.
헬스나 근육질을 만든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모임 2-3일 전부터 절주를 실시하고 모임에서는快飮쾌음을 할 수있도록 심신을 만든다는 것으로 이해하시라.
술을 배운 고3 겨울부터 지금까지 음주에 대한 나의 즐거운 가치관이 있다.
뭐 대단할 것은 없지만 이 자리를 빌어서 소개를 하는 것도 나름 의미가 있겠다.
첫째, 저녁 식사를 겸한 만남은 웬만하면 유쾌한 음주를 조건으로 만난다.
둘째, 될 수 있으면 낮술은 피한다.
셋째, 일단 마시면 서로가 긴장이 풀릴 정도로 즐겁게 마신다.
넷째, 취했다고 주사나 민폐는 만들지 않도록 노력한다. 등등
어제 전작의 영향으로 막걸리에 대한 소극적인 자세로 시작되었으나 점차 상쾌한 여운이 입안에서 맴돌더니 남겨지는 물맛이 달랐다.
서빙 이모한테 어디에서 공수된 막걸리인지 출처를 물었더니 진안에서 온 막걸리라고 한다.
예로부터 鎭安진안은 삼이 많고 산도 많고 물이 좋기로 유명했는데 역시나 술맛이 착착 감겼다.
혹시나 무더운 여름에 시원한 막걸리가 생각이 나는가?
전주에 유명한 막걸리 골목과 식당도 많이 있지만 터미널 근처 <미담 덕장>을 추천한다.
물맛 좋은 진안 마이산 막걸리가 무한리필이라고 허리줄을 풀고 마시다가 정신줄마저 놓아버리는 경우가 있으니 이것만은조심하자.
초2 추억
그렇게 불친과 막걸리가 몇 주전자가 비워지자 나와 불친은 생각나는 추억 속의 몇몇친구들에게전화를 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통화가 되는 친구를 불러서 나오라고 했다가 사전 예고없이 연락을 받아서 못 나온다는 친구들은 통화만 하고 마침 나올 수 있다는 귀한 친구가 있어서 늦은 합석이 이루어졌다.
아마도 7-8개 주전자를 비우다 보니 기분좋은 취기가 약간 올라오기도 했다.
코로나 영향으로 열 시에 식당 문을 닫아야 하므로 불친은 먼저 간다며 자전거를 타고 귀가를 하겠단다.
위험할 수 있겠다 싶어서 식당에 놓고 가라고 했는데 그래도 밤바람이 좋아서 그런지 타고 가겠다고 고집을 부리더니 정말 훌쩍 바람결에 자전거는 출발했다.
아마도 막걸리 음주 정신과 자전거 운전 정신은 따로 작동을 하는가 보다.
고맙게도 불시에 부름을 받아 나온 친구와 한 잔 더하기로 하고 길 건너편에 보이는 가맥형 포장마차로 들어갔다. 영업시간을 물어보니 다행이 늦게까지 한단다.
그럼 맥주로 입가심만 하자며 들어갔는데 안주로 나온 다슬기 조림도맛났고 슬슬 옛날이야기들을꺼내들었다. 초3 시절 학구조정으로 집은 그대로인데 다른 초교로 전학을 갔었던 내 오래된 추억도함께 소환되었다.
그러다가 내가 기억하는 초2 시절 담임 선생님과 몇몇 친구 이름들을 말하자 그 가운데 자기도 아는 친구가 있다면서 그시절 초2 친구 엄마한테 전화를 하는 것을 보며 꽤 가까운 사이라고 이해를 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친구 엄마가 나를 기억하셨고 미국에 있는 초2 친구와 바로 카톡으로 연결이 되는 것이었다.
덕분에 오랫동안 기억 속에 남아있던 정말 귀한 친구와 연결되는 추억여행을 할 수 있었다.
이게 웬 횡제란 말인가?
물질적으로 얻게 되는 횡재도 있지만 추억 속에서 그려보던 오래된 친구와 우연한 만남도 정서적으로는 상급 횡재였다.
더군다나 이 친구는 그윽하고찰지게 익어가고 있는 모습이라서 더욱 멋졌다.
듣자니 서예에도 일가견이 있어서 아호도 있었고 사진으로 비친 작품도 운치가 넘쳤다.
이 모든 행복과 호사는 좋은 친구들과 좋은 막걸리가 만들어 준 행복이 아니겠는가.
친구야. 언제 시간 되면 너와 초2 시절 고우셨던 담임 선생님을 모시고 막걸리를 함께 나누고 싶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