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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조 Mar 22. 2016

헬조선 청년이 덴마크를 만났을 때 #10

덴마크에서 잘 나가는 고등학교의 모습이란

덴마크 로스킬데(roskilde)에는 큰 대성당이 있다. 빨간 벽돌로 쌓아 올린 높은 건물로 화려하지는 않지만 그 규모가 꽤 컸다. 세계 문화유산으로 되어있다는데 유명한 관광지나 유적지의 느낌은 전혀 없고 그저 이 동네의 터줏대감 같은 친근한 분위기였다. 오후에 방문하는 로스킬데 공립 고등학교는 이 성당 바로 옆에 있었다. 


로스킬데 대성당  ©내사진
뒤쪽으로 왕가의 묘실들이 이어져 있다. ©서예원


이번에도 학교의 입구는 의외의 장소에 있었다. 무심코 지나쳐버린 건물과 건물 사이에 있었는데 이곳에 다니는 사람이 아니고는 입구라는 걸 알 수가 없었다. 생각해보면 입구가 커야 한다는 건 고정관념일 수도 있다. 어차피 백화점처럼 불특정 다수를 상대하는 곳도 아니니 학교를 다니는 사람에게 편리하면 되는 건지도. (좀 더 자세한 모습은 제일 아래 구글맵을 통해 확인하시라.)


왼쪽에 눈 쌓인 곳이 입구. 오른쪽 벽에 작게 Roskilde Gymnasium 이라고 써있다. ©여신주현
안쪽으로 들어오면 캠퍼스가 나타난다. ©내사진

이번에는 먼저 학교의 시설들을 둘러본 후 이야기를 듣는 시간을 가졌다. 역시나 이곳도 밖에서 봤을 때와는 다르게 규모가 꽤 컸다. (나중에 들으니 학생수가 1100명이 되는 큰 학교였다.) 안내를 따라서 먼저 수업을 하고 있는 교실들과 도서관을 둘러봤다. 덴마크의 교실에서 보이는 가장 큰 차이는 책상과 의자의 배치였다. 우리나라는 개인별로 책상과 의자가 따로 있고 늘 선생님과 칠판을 바라보도록 전면을 향해 앉는 것이 기본인데, 이곳은 커다란 테이블에 학생들이 둘러앉는 것이 기본이었다. 그만큼 수업이 서로 소통하는 과정을 중심으로 진행됨을 알 수 있었다.


지구과학 시간 처럼 보이는 수업중 ©오마이뉴스 정민규


그 외에도 답답하지 않은 높은 천장, 은은한 조명, 편안한 의자, 스크린과 2단 칠판의 효율적인 배치가 눈에 띄었다.


또 다른 교실에 들어갔을 때는 다들 테이블에 모여서 뭔가를 하고 있길래 봤더니 수학 문제를 같이 풀고 있었다. 이 모습은 살짝 충격이었다. 나한테 수학은 언제나 귀에 이어폰을 꽂고 혼자 문제를 푸는 과목이었다. 수학 문제를 누군가와 같이 풀어본 경험도 없거니와 그런 상상도 해본 적이 없었다. 어차피 공식을 외워서 푸는 거라 서로 의견을 교환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함께 수학 문제를 푸는 덴마크 친구들을 보며 생각을 해보니 사실 수학이야 말로 함께 공부하기 좋은 학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서로가 논리적으로 부족한 것들을 채워주며 같이 완성해 나갈 수 있을 테니. 


설명을 듣고 문제를 푸는 시간 같았다. ©오마이뉴스 정민규
©내사진


학교의 도서관은 도서관이라기보다는 휴게실 같은 느낌의 공간이었다. 우리의 도서관은 수많은 책으로 가득 차 있고 진한 종이 냄새가 풍기는, 진지하고 묵직한 느낌의 공간이라면 덴마크의 도서관은 책은 많지 않지만 기분 좋게 책을 읽을 수 있는 쾌적한 공간이었다. 설명을 들어보니 학교도서관이 책을 다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필요한 책을 신청하면 지역 도서관에서 배달이 되어 온다고 했다. 이곳을 보며 학교도서관의 역할은 책을 보관하는 것보다 학생들에게 좋은 환경에서 책을 읽는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 더 맞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서관이지만 공간의 주인공은 책이 아니라 사람이다. ©오마이뉴스 정민규


학교의 커뮤니티 공간들도 눈에 띄었다. 학생 식당 혹은 카페테리아처럼 생긴 곳에 들렸었는데 (정확한 용도가 기억이 안 난다. 무대와 스피커도 있었다.) 공식적인 사용 외에는 학생들이 자유롭게 모여서 공부하거나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으로 열려있었다. 교실이 있는 복도의 중간에는 소파와 테이블이 있는 공간이 만들어져 있어 언제든 쉽게 모여 이야기할 수 있게 돼있었다. 이렇게 학교 이곳저곳에 모일 수 있는 공간을 가지고 있다는 건 그만큼 관계와 커뮤니티를 중요하게 여긴다는 의미였다. 공간이 사람의 관계에 미치는 영향은 엄청나게 크다.


이곳의 의자들 역시 책상 밑으로 걸쳐서 끼울 수 있게 되어있다. 편리한 시스템. ©여신주현
복도 곳곳에 이런 공간을 가지고 있다. ©내사진


하지만 학교에서 제일 인상적이었던 건 따로 있었으니 복도에 붙어있던 포스터였다. 두리번거리면서 복도를 걸어가다 벽에 너무 야한 포스터가 붙어있어서 깜짝 놀라 반사적으로 시선을 돌렸다. 놀라서 자세히 보지는 못했는데 나중에 이야기를 들어보니 성교육 포스터였다고 한다. 다른 분들도 보고 깜짝 놀라셨다고. (남녀 학생이 서로.. 여학생이 책상 위에서 다리를.. 음, 차마 쓸 수가 없다.) 


화장실 사진으로 설명을 대신한다. ©오마이뉴스 정민규


그렇게 공간들을 둘러본 후 큰 교실 같은 곳에 모여 교장선생님의 학교 소개를 듣고 이곳의 학생들과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 학교는 만족도에서 지역 1위 전국 5위인 학교라고 했다. 시설만 봐도 좋은 학교라는 것이 느껴졌지만 학교 생활이나 대학 진학이라는 측면에서도 분명 우수하다는 이야기였다. 같이 들어와있는 학생들을 소개할 때 자신 있게 미래에 의사, 변호사가 될 친구들이라고 소개를 했는데, 다들 웃기는 했지만 결코 농담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이곳은 우리의 고등학교와 매우 다른 시스템을 가지고 있었다. 한 학교에 2년제와 3년제의 두 과정이 있었는데 선생님과 상담을 통해 어떤 과정을 택할지 결정한다고 했다. 3년제의 경우 대학 진학을 위해 과학, 수학, 언어, 사회문화 등을 배우는 과정으로 우리의 고등학교와 비슷했다. 2년제 과정은 생소했는데 3년제 보다 낮은 중간 레벨의 학습으로 교사, 간호사, 보육사 등이 되려고 하는 학생들을 위한 과정이었다.(학교 홈페이지를 참고) 무상교육과 무상복지 제도의 핵심 직군인데 이들을 위한 교육과정을 따로 둔다는 것이 흥미로웠다. 여기에 군대를 지원하려고 하는 학생들을 위한 과정도 있었다.


이렇게 서로 다른 목표를 가진 친구들이 한 학교에서 어울려 지낸다는 것, 우리나라였다면 가능했을까? 덴마크 학교의 모습을 보면서 평등은 효율성과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두 다 똑같이 3년간 공부를 하고 시험을 봐서 성적순으로 진로를 정하는 것보다 각자의 진로에 맞는 걸 각자 필요한 만큼 공부하는 것이 훨씬 더 효율적인 교육인 것은 당연했다. 우리의 고등교육과 입시는 얼마나 많은 사회적 낭비를 만들어내고 있던가. 서로의 진로에 대해서 눈치를 볼 필요 없이 같이 어울릴 수 있는 평등 문화가 이런 효율적인 교육을 가능하게 했구나 생각이 들었다.


각자가 자기에게 맞는 수준으로 공부를 하면 공부에 스트레스를 받을 일도, 과제를 통해 학생들을 닦달할 이유도 없었다. 여기에 커뮤니티의 중요성을 이해하고 학생들이 겪는 관계에 대한 고민을 지원하는 학교라면 학교 생활이 행복한 건 너무나 당연한 결과였다. 덴마크에서 잘 나간다는 학교는 이런 모습이었다.


이곳 교장샘도 밝고 유머러스한 사람이었다. 덴마크 교장샘들은 우리와 전혀 다르다. ©여신주현


학교 소개 뒤에는 예상하지 못했던 메인이벤트가 남아있었으니, '덴마크'에서 '영어'로 '수학' 수업을 듣는 시간이 기다리고 있었다. 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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