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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조 Jul 16. 2017

옥자와 유정란

육식에 대한 단상

한동안 SNS 타임라인에 옥자를 보고 난 후 사람들의 반응이 많이 올라왔었다. 영화를 보며, 특히 후반부를 보며 많이 울었다는 후기부터 마트에서 햄을 보고 오열하는 웃기는 영상까지 여러 가지가 있었는데 다들 육식에 대한 반성과 공장식 축산 시스템에 대한 슬픔(분노?) 같은 것들이었다.


나는 넷플릭스를 쓰고 있어서 노트북 화면으로 옥자를 봤는데 기대감에 보기는 했으나 막상 보고는 별 다른 감동이 없었다. 식탁에 앉아 노트북으로 보다 보니 영화에 제대로 몰입하지 못했던 것이 컸고, 여러 가지 의미 있는 장면이나 패러디, 오마주들이 많았다고도 하는데 영알못이라 그런 것들을 알아볼 안목이 없기도 했다. 


무엇보다 잔인하고 생명에 대한 존중이 없는 공장식 축산의 모습도 이미 다 알고 있었던 것이라 도살장 장면에서 '결국 옥자를 구하겠지'라는 생각으로 건조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도살장의 도축 과정을 처음 알게 된 것은 전혀 예상치 못한 장소에서였는데, 세상에서 가장 지루한 장소인 예비군 훈련장에서였다. 스마트폰이 세상에 나오기 전이었으므로 그곳은 너무나 심심해서 정말 누구와라도 이야기를 하게 되면 감사한 마음이 드는 곳이었다. 거기서 그 친구를 만났다.


남자들이라면 비슷한 경험이 꽤 많을 텐데, 동네에서 예비군 훈련을 받게 되면 같은 동네에 살고 있는 안 친했던 초중고 동창을 우연히 보게 된다. 다른 곳이라면 그냥 ‘쟤는 얼굴이 저렇게 변했구나’ 생각하며 스쳐 지나갔을 테지만 우리는 예비군 훈련의 황량한 시간 속에서 이야기 꽃을 피우게 됐다.


친구는 한동안 도축장에서 일을 했던 이야기를 들려주었는데 정말 내 주변에 누구에게서도 들어보지 못한 이야기라 엄청 열심히 들었던 기억이 난다. 돼지를 어떻게 한 방에 죽이는지, 거꾸로 매달아서 칼인지 뭔지를 꽂으면 피가 마구 쏟아진다는 이야기 등등 다 엄청 끔찍한 이야기였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그 피 냄새가 엄청 지독한데 그게 몸에 배면 씻어도 씻어도 잘 빠지지 않는다는 이야기였다. 생각만으로도 숨을 쉬고 싶지 않았다. 어쩌면 육식을 하는 존재에 대한 저주 인지도 모를 그 피비린내를 모르고 살 수 있는 건 누군가 몰아서 대신하고 있기 때문이란 걸 깨달았다. (10년도 더 전 이야기라 지금은 많은 부분 기계가 대신하고 있겠지.)


피비린내 나는 육식을 하는 존재라는 걸 자각하며 살게 된 것이 그때쯤부터였던 거 같다. 


그 후로 광우병 파동이 있으면서 도축 과정이 이슈가 됐고 도축 현장을 볼 수 있는 자료를 많이 볼 수 있었다. 옥자에 나오는 그런 모습들이었다. 그럴 때면 특히나 육식을 하는 나라는 존재에 대해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릴 적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를 보고 감동받은 후부터는 작은 생명이라도 죽이지 않기 위해 노력해왔고, 집에 들어온 벌레들도 가능하면 살려서 밖으로 내보내며 살고 있지만 끊임없이 육식을 하는 나에 대해서.  




나는 고기가 좋고 육식이 좋다. 돼지, 소, 닭, 오리, 양, 수많은 생선 다 좋아한다. 존 쿡 델리미트의 소시지를 사랑한다. 나는 내가 공장식 축산의 공범이라는 것을 명확하게 인식하며 살고 있다. 나는 그런 운명이다.


채식도 고민해 봤지만 나는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고기가 필요한 사람이었다. 어쩔 수 없이 주어진 운명 안에서 최선을 다하는 방식으로 살기로 했다. 내가 택한 최선이란 세 가지다. 적당히 먹는 것, 미안해하는 것, 남기지 않는 것.


최선을 다 한 덕분에(?) 한동안 육식에 대해 의식 안 하면서 살아오다가 최근 들어 다시 나의 마음을 콕콕 찌르는 것이 생겼으니 바로 유정란이다. 정확히는 자연방사 유정란. 나름 닭들을 위해본다고 좀 비싸도 자유란(자연방사 유정란)을 사서 먹고 있는데 덕분에 나 역시 종종 도축을 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다.


요리를 위해 자유란을 깨면 흰자 속에 노른자와 연결된 작은 실뭉치 같은 것이 달려있다. 알끈하고 좀 비슷하지만 좀 더 복잡하게 뭉쳐있고 때때로 빨간색 점 같은 것을 가지고 있다. 예상했겠지만 병아리로 자라날 부분이다. 아니 병아리라고 하는 게 맞는지도 모르겠다.


차마 먹을 수는 없어서 늘 젓가락으로 제거해서 조용히 음식물 쓰레기봉투에 넣는데 그때마다 마음이 무겁다. 어쩔 수 없는 운명이라 생각하지만 그렇다고 미안함이 다 사라지지는 않는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좀 더 의식적으로 감사해하며 맛있게 먹는 것뿐. 


오늘도 아침 반찬으로 계란말이를 먹었다. 옥자도 미란도도 멀리 있지 않다. 공범은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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