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차이가 모여 큰 차이를 만든다.
어제 합정에서 유명한 옥동식에 다녀왔다. 전부터 가보고 싶었는데 마침 메세나에서 영화를 보고 나니 딱 점심시간 + 가깝기도 해서 먹으러 갔다. 다행히 조금 일찍 간 덕분에 많이 기다리지는 않았다. 한 20분? 기다리면서 일단 주변을 둘러봤다.
합정역 근처는 이런저런 식당과 상점이 많다. 옥동식은 큰 골목에서 한 번 더 들어간 작은 골목 주택가에 있다. 겉모양과 위치를 보면 빌라의 주차장이었던 곳을 개조한 게 아닐까 싶은 모양새다. 이 골목에 옥동식과 맞은편에 작은 가게 하나뿐. 덕분에 조용했다. 후쿠오카에서 갔던 이마이즈미 같은 느낌이 났다. 나는 한 골목에 가게 한 두 개 정도의 밀도가 딱 좋다고 생각한다. 좋은 동네를 이루기 위한 거주자와 외지인의 황금비율이랄까.
가게 안을 슬쩍 보니 미슐랭, 블루리본 등 인증판이 보인다. 안으로 공간 구성이 보였는데 칵테일바처럼 되어 있었다. 주방 앞에 손님들이 줄지어 앉아 먹도록 되어 있는데 일본 작은 식당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구조다. 겉에 입구나 간판도 그렇고 내부 구성이나 인테리어도 그렇고 일본 느낌이 많이 난다면 편견일까.
다만 그냥 일본을 따라 했다기보다는 효율성을 고려한 선택이라고 본다. 1인 1그릇의 단일 메뉴를 가지고 가장 빠르게 음식을 세팅하고 치울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많은 손님을 많이 받을 수 있다. 좋은 재료로 값싼 음식 만들려면 이렇게 해야만 한다.
안에 들어가 자리에 앉으니 먼저 노랗게 빛나는 작은 놋그릇과 김치를 담는 작은 접시를 놓아준다. 테이블에 그릇을 놓는데 소리가 크게 나지 않아 자세히 보니 표면이 얇은 고무 매트*였다. 갈색 칠을 해서 테이블 위에 깔아 놓았다. 소리와 내구성, 편의성을 고려한 것이리라. 옆에서 계속 음식이 나와도 그릇 놓는 소리가 적게 나서 참 좋았다.
메뉴는 돼지 곰탕 하나. 보통이냐 특이냐만 선택하면 됐다. 주문을 하고 음식이 나오는 동안 주변을 둘러봤다. 일단 의자와 테이블 높이가 잘 맞아서 편했다. 바 테이블은 제작을 했을 텐데 고급 목재를 쓰거나 넓지는 않았지만 공간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쓰기 위해 딱 필요한 크기로 만들었음을 알 수 있었다. 의자를 당겨서 붙여 앉으면 무릎이 앞에 닿지 않으면서도 많이 남지도 않았다. 별거 아닌 거 같아도 이런 사이즈 설계 제대로 안 된 가게가 훨씬 더 많다.
테이블의 디테일이 심상치 않기에 눈을 돌려 인테리어를 둘러봤다. 먼저 조명. 매장 내부 크기가 작지만 답답한 게 아니라 아늑하다는 느낌을 주도록 노란빛을 이용해 너무 밝지 않게 되어있었다. 가게 전면이 유리로 되어있어서 낮에는 밖에서 적당한 빛이 들어오기도 한다. 부엌 안은 레일 등으로 간단하게 했고 손님 등 뒤로 있는 큰 벽은 보통 에디슨 전구라고 부르는 필라멘트 선이 보이는 전구로 레트로 느낌의 포인트를 준 정도였다. 언뜻 보면 그리 큰 신경을 안 쓴 듯 보인다.
대신 손님 눈에 들어오는 테이블 조명은 세심함이 보인다. 테이블 조명은 곰탕 그릇인 놋그릇과 같은 황동 빛 금속 재질이었는데 천장부터 봉으로 내려와 달려있었다. 그 아래 놋그릇이 놓여 있으면 자연히 같은 톤으로 맞춘 포인트 인테리어가 완성된다. 위에는 황동색 봉과 전등갓이라면 아래는 황동색 수저와 그릇. 손님이 와서 식사를 하면 인테리어가 더 완성되는 구조랄까.
등의 높이도 딱 좋았는데 손님의 시선을 고려하여 광원의 눈부심이 눈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 그러면서도 너무 낮아서 시선에 걸리적거리지 않는 정도에 맞춰져 있었다. 디자인만 고려하는 경우는 흔해도 이렇게 사람의 행동을 고려한 배치까지 하는 경우는 드물다.
시선을 돌려 부엌을 보니 안쪽에서 토렴 하는 모습이 보였다. 역시 토렴. 김치를 덜어놓고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자니 곧 돼지 곰탕이 나왔다.
놋그릇에 담긴 맑은 국물 속으로 얇게 썬 고기가 담겨있고 위에는 쪽파들이 동동 떠다녔다. 바로 국물 한 숟갈을 떠서 먹었는데 돼지 특유의 향이 살짝 나지만 곧 깊은 감칠맛이 확 밀려왔다. 긴 설명 필요 없이 깔끔하고 맛있었다. 맛도 맛이지만 국물 온도가 딱 좋은 온도로 맞춰서 나와 후후 불면서 기다리지 않아도 돼서 더 좋았다.
밥을 한 숟갈 떠서 먹었는데 오! 탱탱하게 씹히는 밥알이라니. 국물에서 느낀 감탄이 밥알과 만나니 감동으로 변했다. 고기는 따로 나온 앞접시에 건져서 미리 들어있는 고추지를 더해 먹었는데, 담백한 고기를 먹기 좋도록 얇게 썰어놓아 퍽퍽하지 않게 먹을 수 있었고 살짝 더한 고추지가 느끼할 수도 있는 맛을 딱 잡아주었다. 김치랑 같이 먹으면 당연히 ㅈ맛!
처음 돼지 곰탕이라는 메뉴를 들었을 때는 이 단순한 음식에서 맛이 뭐가 크게 다를 수 있을까 생각했다. 직접 와서 먹어보니 그 비밀은 작은 디테일에 있었다. 맑고 깊은 국물 + 잘 지은 밥 + 토렴 + 담백하고 얇은 고기 + 고추지 + 서서히 그 향으로 존재감을 느끼게 되는 쪽파 + 김치. 작은 차이가 모여 큰 차이를 만들었다. 화려한 조리와 양념으로 맛이 없을 수 없는 음식보다 이런 단순한 음식이 진짜 맛을 낼 때 더 드라마틱하다.
한동안 맛에 빠져 그릇만 보고 먹다가 정신을 차리고 다시 공간을 감상하며 밥을 먹기 시작했다. 밥 먹는 테이블 안쪽으로는 항상 셰프님과 직원들이 일을 하며 서있었는데, 밖에서 봤을 때는 밥 먹는데 앞에 사람이 서있어 시선이 마주치면 어색할 거 같았다. 막상 앉아보니 테이블 안 쪽은 바닥이 높아서 사람들이 생각보다 위에 있었고 덕분에 몸은 보여도 얼굴이 마주할 일은 없었다. 요런 디테일도 마음에 들었다.
빨리 먹기 아까워 그릇이 비어갈 때쯤부터는 일부러 천천히 먹으며 주변을 둘러봤는데, 처음엔 존재감이 없다고 생각했던 뒷벽이 눈에 들어왔다. 대학시절 오래된 강당에서 보았던 나무 벽과 비슷한 모양이었다. 마감이 투박하고 낡아 보이지만 차분하고 편안한 느낌을 주는 색과 패턴이었다. 생각해보면 곰탕이라는 음식에 놋그릇, 의자와 테이블 모두 투박함과 편안함이라는 컨셉으로 맥락이 연결되어 있었고 뒷벽은 그런 컨셉에 중심을 잡아주는 느낌이었다. 그러고 보니 레트로 한 등기구가 참 잘 맞는다.
한편으로 벽면의 이런 입체 모양은 소리 울림을 막아줘서 음향면에서도 유리하다. (특히 다른 벽면이 노출 콘크리트 거나 타일로 된 평면이라면 이런 마감을 가진 벽면이 매우 도움이 된다.) 음향 이야기하니까 생각이 나는데 옥동식에서 유일하게 아쉬운 점은 선곡이었다. 볼륨이 크진 않았지만 한국 발라드가 종종 나왔는데, 사운드와 감정선이 심하게 오르락내리락하는 음악은 식사에 집중하는 걸 방해한다. 음악까지 다듬어지면 진짜 좋은 식당이 될 거 같다.
이런저런 디테일에 감탄하며 정말 맛있게 식사를 하고 왔다. 맛도 맛이지만 만약 작은 점포를 낼 계획이 있는 사람이라면 꼭 가서 음식과 공간의 디테일을 봐야 하는 집이다.
집에 와서 찾아보니 바 테이블은 고무매트가 아니라 한지 140장을 덮고 그 위에 옻칠을 해서 직접 마감을 하셨다고. 대단하시다. 가게 외부는 앞서 영업하던 가게의 모습을 그대로 살려서 하신 듯.
사진에 안 나왔지만 수저받침도 마음에 들었다. 일반 받침보다 좌우가 넓어서 더 쓰기 편했다.
고기는 버크셔 K라는 흑돼지고기라고 한다. 물론 모르고 먹어도 맛있다.
공간 설계는 Studio-writers라는 팀. 이분들이 만든 다른 공간에도 가보고 싶어 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