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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조 Mar 05. 2016

헬조선 청년이 덴마크를 만났을 때 #7

호텔방의 비밀을 소개합니다. 

※ 이번화는 주로 인테리어 이야기입니다. 바로 북유럽 인테리어!


호텔방은 북유럽 느낌의 2인용 고시원이 있으면 이렇겠다 싶은 곳이었다. ‘숙소’라는 단어가 잘 어울리는 곳이었다. ('너무 작다'는 이야기다.) 방에 돌아와 샤워를 하고는 바로 테이블에 앉아 노트를 펼쳤다. 이번 탐방 목표 중 하나는 최대한 기록을 열심히 하는 거였다. 같이 방을 썼던 최 선생님에겐 좀 죄송했는데, 덴마크에 있는 동안 나는 숙소에 들어오면 테이블에 앉아서 글만 써댔기 때문이다. 친절하게 말도 걸어주시고 챙겨주셨는데 아마 나 때문에 재미는 별로 없으셨을 듯.


‘어서 날 정리해줘!’라고 생각들이 날뛰고 있었기에 부지런히 일기를 쓰려던 그때, 문득 눈 앞에 있는 전기 콘센트에 눈이 갔다. 보통 전기 콘센트는 바닥 쪽에 있는데 이곳은 테이블과 선반 사이라는 좀 특이한 지점에 콘센트가 있었다. 시작은 이때부터였다.


드디어 대 공개! 문을 열고 들어오면 이런 풍경이었다.
침대에서 본 모습
평면도를 그려보면 이렇다.

나는 공간에 관심이 많다. 그간 이런저런 일을 하면서 공간이 사람의 마음과 행동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는지 배웠기 때문이다. 청소년들의 아지트인 유자살롱을 운영하면서도 제일 신경 썼던 것 중 하나가 사무실의 분위기였다. 우리가 주로 하는 일은 어른들에게, 또래들에게 마음을 쉽게 열지 못하는 친구들을 만나는 일이었다. 마음을 여는데 도움이 되는 공간이길 바랬고 어떤 친구라도 이곳에 오면 따뜻함과 아늑함을 느낄 수 있게 하고 싶었다. 


유자살롱 사무실. 다락방과 동아리방의 중간쯤이었다.
정말 엄청 청소를 하고 찍은 설정샷이긴한다.

이런 관심은 계속 이어져 덴마크에 오기 전에는 강당 리모델링 공사에 참여했었다. 나는 강당에서 사용할 음향, 영상, 조명 시스템을 설계하는 일을 맡았는데, 덕분에 각종 파트들이 어떻게 설계되어서 만들어지는지 전 과정을 옆에서 볼 수 있었다. 설계의 핵심은 공간 안의 사람들에게 어떤 경험을 줄까 - 사람들이 평소에 어떻게 움직이고 사용하는지를 분석하고 거기에 어떤 경험을 더해줄 것인가 - 를 고민하는 과정이었다. 의외로 결정하기 힘들었던 것들은 작지만 자주 쓰는 것들이었다. 조명 스위치를 어디다 달 건지, 콘센트는 어디에 달 건지 등등. 이런 것들이 실제 와닿는 편리함이기 때문이다.



콘센트가 눈에 들어온 건 필연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콘센트가 테이블 위에 한가운데 있다는 걸 깨닫고는 설계자가 여기서 작업을 할 사람들을 고려했음을 알 수 있었다. 노트북을 사용하거나 혹은 스마트폰을 충전하며 쓰거나. 한국에선 보통 테이블이 있다 해도 아래쪽에 콘센트를 만든다. 그런 경우 플러그를 연결하려면 허리를 숙여야 하고 선도 늘어져야 해서 불편하다. 작은 차이지만 사용자를 배려함이 느껴졌다.


그런데 더 자세히 보니 보여지는 것도 고려했음을 알 수 있었다. 위쪽에 작은 선반을 두어서 작은 물건들을 올려놓을 수 있게 하면서 평소에는 이 벽면 콘센트가 잘 보이지 않도록 해두었음을 알 수 있었다. 기능과 멋을 모두 놓치지 않고 고려한 설계였다. 이쯤 되니 슬슬 방안을 자세히 둘러보게 됐다. 


내가 앉아있는 테이블은 투명한 유리에 반원형이었는데, 작은 공간을 최대한 넓게 느낄 수 있도록 시야를 막지 않는 유리로 테이블을 만들고, 좁은 공간에서 동선과 효율 적인 사용을 고려해 반원형으로 만들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의자도 거기에 맞게 등받이가 둥글게 되어있는 의자로 되어 있었다. 


테이블 바로 옆에는 쓰레기통이 있었는데 이 역시 잘 디자인되어있었다. 일단 위치가 테이블에 살짝 겹치며 아래에 있어서 테이블에서 먹을 것을 먹거나 무언가를 하다 쓰레기를 버릴 때 움직임을 최소화할 수 있었다. 그냥 쓸어다 떨어트리면 됐다. 


쓰레기통의 구조는 공간을 차지하지 않으면서도 관리가 쉽도록 스프링 형태의 철판에 비닐 봉투를 끼우게 돼있었다. 치우기도 쉽고 통이 없으므로 관리도 쉬웠다. 쓰는 사람이나 관리하는 사람이나 모두에게 편한 디자인이었다.


제대로 봐야겠다는 생각에 입구에서부터 하나씩 공간을 살펴보기로 했다. 일단 들어오자 마자는 당연히 카드키가 있었고 조명을 켜는 스위치가 있었다. 특이한 건 스위치 밑에 콘센트가 달려있다는 거였다. 

카드키는 눈 높이에 스위치는 손 높이에 있다.

누가 저기서 전기를 쓰지? 충전이 엄청 급한 사람?? 생각해보니 청소를 하러 들어오는 사람이 문을 열자마자 바로 저기에 진공청소기를 연결하고 청소를 시작할 수가 있었다. 와우!


문이 열리는 뒤쪽으로는 전신 거울이 있었다. 방을 나가기 전 문 앞에서 자신의 모습을 비춰보며 점검을 할 수 있었고 문 뒤편이라 다른 것들을 놓기 힘든 공간을 잘 활용한 설계였다. 사진엔 없지만 문을 열 때 문이 뒷 벽에 부딪히지 않도록 아래쪽에 작은 충격 흡수 버퍼가 있었다. 


거울 옆으로는 옷을 걸 수 있는 스탠드가 있었는데 이것 역시 모양이 좀 특이했다. 위쪽에는 작은 선반이 있고 그 아래 쇠로 된 부분이 레일처럼 입체적으로 휘어져 있었다. 덕분에 옷을 좀 더 겹겹이 걸 수 있었고 옷을 꺼내고 걸기도 쉬웠다. (스탠드 자체도 무언가 올려놓을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 나무 옷걸이에도 바지를 걸 때 미끄러지지 않도록 고무 처리가 되어 있었다.


옷걸이 아래에는 벽에 이상한 구조물이 붙어 있었는데 처음엔 용도를 알 수 가 없었다. 이렇게 저렇게 살펴보다가 힘을 줘서 당겨봤는데 자석으로 붙어있던 부분이 앞으로 펼쳐지면서 새로운 형태로 변했다. 

가만히 보니 보조 선반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캐리어 같은 걸 올려놓고 연 다음 옷들을 꺼내서 스탠드에 걸거나 반대로 스탠드의 옷들을 접어 캐리어에 넣기 좋은 위치였다. 이런 섬세한 디자인 이라니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이 방의 특징은 좁은 공간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 고정적으로 자리를 차지하는 수납공간을 최소화했다는 거였다. 방에는 별도의 서랍장이 하나도 없았다. 유일하게 수납이 가능한 곳은 효율적인 침대 아래뿐이었다. 침대 아래에 큰 서랍이 있었고 평소에는 여분의 배게와 수건이 들어있었다.


침대 역시 곳곳에 사용자를 배려한 디자인이 보였다. 일단 침대는 창문에 바로 붙어 있었다. 창문을 여닫거나 안쪽에서 자는 사람이 들어갈 수 있도록 발 놓는 쪽으로 좁은 공간이 나 있었고 그곳으로 드나드는 부분의 모서리만 둥글게 되어 있어 오가는 사람이 불편하지 않게 돼있었다. 

머리 쪽도 사람의 행동을 고려해서 설계가 되어 있었는데, 침대에 기대앉아 아래쪽 콘센트에 충전기를 연결해놓고 스마트폰을 보다가 잘 때는 옆의 작은 테이블에 폰을 올려놓고 위에 있는 스위치를 끄면 되는 식이었다. 이 전등 스위치는 입구의 스위치와 연결되어 양쪽에서 다 켜고 끌 수 있었다. 작은 테이블 역시 투명한 유리에 원형으로 되어있어 시각적이나 공간적으로 모두 좁은 공간을 배려했다. 


이쯤 되니 화장실이 왜 이렇게 둥근 모양으로 되어있는지 알 수 있었다. 모두 좁은 공간을 최대로 활용하기 위한 설계였다. 

화장실 안쪽도 읽어낼 수 있는 설계 요소가 많았다. 공간 활용에 좋은 미닫이 문. 작은 헤어드라이어는 가벼워서 오래 들고 있어도 팔에 부담이 없었다. 

화장실 휴지통 역시 사용과 관리가 모두 쉬운 구조였다. 공간 전체적으로 내부 구조물, 액세서리들이 모두 간결한 디자인의 금속으로 만들어져 있었는데 인테리어적으로도 좋았지만 부서지거나 빛바래지 않으니 관리와 유지 면에서도 편해 보였다. 

원형의 샤워 부스

이 공간에서 마지막으로 놀란 것이 하나 더 있으니 그건 샤워기의 수도꼭지였다. 수도꼭지에 버튼이 하나 달려 있었는데 이 버튼의 정체는 일명 ‘추가 물 틀기 버튼’ 이었다. 샤워기의 수도꼭지를 틀면 끝까지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중간 지점에서 달칵하고 걸린다. 중간 정도로도 샤워하기 충분하지만 여기서 더 세게 물을 틀려면 저 버튼을 누르고 마저 돌려야 한다. 샤워를 하면서 무심결에 물을 세게 트는 것을 막기 위해 버튼이 달려있는 것이었다. 물 절약까지 신경 쓴 설계였다.


(그 외에 냉난방처럼 전문적인 구조에서도 편리한 설계들을 찾을 수 있었다. 더 쓰고 싶은 것이 많지만 일단 여기 까지~)


세상에 이만큼 작은 숙소는 많이 있겠지만 덴마크만큼 편하고 쾌적하게 되어 있는 곳이 있을까? (화장실 반투명인 것만 빼고..) 공간을 보며 덴마크가 왜 세계에서 행복도가 가장 높은 국가인지 어렴풋이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이 작은 방안에만 해도 이 안에 머무는 사람을 위하는 구조와 시스템이 이렇게나 많은데 이 사회에는 그런 것들이 얼마나 많을까. 좀 더 관심을 가지고 평범하게 지나치는 작은 요소들, 그 안에 담긴 의도들을 볼 수 있어야겠구나 싶었다. 공부할게 늘어났지만 훨씬 더 재미있어질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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