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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나나나 Sep 19. 2021

애쓰지 마,흘러가도록 놔둬

  지구가 죽어가고 있다. 당연히 당신은 못 느끼겠지만 우리는 죽어가고 있는 땅에서 살고 있다. 하지만 다행인 건 당신이 죽을 때까지도 지구가 죽어가고 있다는 것을 직접적으로 느껴볼 기회는 거의 없을 것이다. 내 나이 고작 서른, 100세 시대에 앞으로 70년을 더 산다고 가정했을 때, 내 삶은 앞으로 어떤 나날들이 펼쳐질까. 나는 결혼도 하기 싫고 아기도 낳아서 키울 자신이 없다. 연애는 하고 싶지만 당장은 혼자가 좋다. 잔소리하는 사람도 없고 결혼하라고 눈치 주는 사람들, 또 앞으로도 도대체 어떻게 살아갈 거냐고 쓸데없는 걱정을 해주는 사람도 없다. 나는 온전히 내 인생을 살아가고 있고 내가 하루 종일 잠만 자든, 7주일 내내 쉬는 날 없이 미친 듯이 일만 하며 살든, 나는 내가 그때그때 하고 싶은데로 살아간다. 내 인생이 어떻게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지 알 수 없고 내가 하는 모든 행동에 대한 책임도 오롯이 나의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내가 책임질 수 있는 일만 한다. 노예처럼 일할 자신도 없으면서 대출을 내서 집을 사거나, 여행할 생각만 가득 차 있으면서 혼기가 찾다고 결혼해서 아이를 낳는 것 따윈 하지 않는다. 외국인 노동자로 최저임금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지만 소처럼 일하면서 내 한 몸 건사하기에는 충분한 돈을 갖고 있다. 300만 원도 안 하는 중고 자동차와, 한 달에 60만 원씩 돈을 내면서 지내는 방 하나 (뉴질랜드 오클랜드에서는 쉐어 하우스 가격이 이 정도면 저렴한 편이다), 훌륭하진 않지만 나름대로 괜찮은 요리실력을 갖고 있고, 내 생각을 이야기할 수 있는 블로그, 브런치, 유튜브와 같은 창구들도 갖고 있다. 한국에 있는 가족을 위해 작은 선물 정도는 보낼 수 있고 이미 40만 원의 손해를 봤지만 그래도 여전히 100만 원 정도의 수익을 내고 있는 개미 주주이기도 하다. 이렇다 할만한 자격증이나 능력은 없지만 홀로 세상을 떠돌아다닐 수 있는 용기와 추진력이 있고 사랑하는 부모님이 살아계시니 함께 효도 여행도 다닐 수 있다. 나는 애쓰면서 삶을 살지 않는다. 그저 흘러가는 데로, 코로나면 코로나와 함께, 외국인 노동자로 최저시급을 받으며 살아야 한다면 그 안에서 가장 많은 돈을 벌 수 있도록 하루 12시간씩 일을 한다. 나는 그저 내게 주어진 시간 속에서 흘러가는 데로 살고 있다.

 사람은 자신의 능력밖에 것을 하려고 할 때 노력하고 애를 써야만 하는데 그것이 좋은 결과를 가져오면 다행이지만 좋지 못한 결과를 마주했을 때 인간은 '실망'하게 된다. 내가 더 열심히 하지 못해서 그랬어, 경쟁률이 너무 높아서 그랬어, 하필 이때 코로나가 터져서 그랬어 다양한 이유들로 실망한 나의 마음을 달래 보지만 때로는 이것이 내가 멍청해서 그래, 내가 능력이 없어서 그래 자책으로까지 이어지면서 또 다른 불운한 결과를 가져올 때도 있다. 그래서 나는 나의 능력밖에 것을 하려고 할 때 애를 쓰지 않는다. 나의 능력과 상관없이 내가 원하면 한번 해보는 것이고 그 결과가 어떻든 내가 한번 도전해 봤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낀다. 혹자는 나를 보고 너무 이상적으로 삶을 살아가려고 한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나는 지극히 현실적인 사람이다. 한국에서는 현실적이라는 말이 다른 의미로 통용되고 있는 듯한데, 한국에서 벗어난 나의 관점에서는 현재 내가 좋아하고 원하는 일을 하면서 지금의 행복을 위해 살아가는 것이 지극히 현실주의적인 것이라고 생각한다. 코로나라는 변수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고 어떻게 살아가야지 할지 몰라 어둠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지만 나는 코로나 덕분에 오히려 세상이 맞이한 위기 속에서 아무 걱정 없이 더 자유롭게 살아가고 있다. 실질적으로는 뉴질랜드에 갇혀있지만 뉴질랜드는 세계에서 가장 방역을 잘하는 국가다. 외국으로 떠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보기에, 나는 정말 운이 좋은 사람인 것이다. 나는 이런 결과를 얻기 위해 애쓰고 노력하면서 살아오진 않았다. 그저 현실 상황에 맞게 내가 할 수 있고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살아왔을 뿐이다.

 이런 나라고 미래에 대한 고민 없이 태평하게만 살아가는 것은 아니다, 한국에 돌아갔을 때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막막하기도 하고 내가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 나도 점점 나이를 먹어가고 있고 이제 시속 30km/s로 달리는 구간에 들어왔다. 앞으로 인생은  빠르게 속도를 높여갈 것이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도 하나둘씩 내 곁을 떠날 것이다. 앞으로 어떤 삶이 펼쳐져있을지 알 수 없으나 단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나는 지금 행복하다는 것이다. 이렇게 부족함 없이 배 곪지 않고 안전한 공간에서 글을 쓰면서 숨 쉬고 있는 지금 이 순간이 나는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다.


애쓰지 않고 흘러가게 놔두면 당신도 알게 될 것이다.


지금 당신이 숨 쉬는 이 순간이 미래에는 두 번 다시없을 가장 소중한 시간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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