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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나나나 Oct 03. 2021

인간 혐오증

  내 안에는 트라우마처럼 자리 잡은 증세가 하나 있다. 바로 '인간 혐오증'. 대인 기피증이나 성별에 따른 혐오와는 다른 형태로서 내가 만든 말이다. 기존에 '인간 혐오증'이라는 용어가 이미 의학계에서 사용되고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인간에 대해 혐오하는 증세가 있다. 사람을 면대면으로 만나 이야기하는 것에는 문제가 없지만 SNS상에서 이러한 현상이 도드라지게 드러난다. 사이버 상에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나지 않은 채 다른 사람들을 비난하고, 물고, 뜯고, 허무는 그러한 것들에 대해 혐오하는 것이 인간의 존재 자체를 혐오하는 단계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나의 이런 증세는 대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하면서 부터 시작됐다.

 대학생 때까지는 부모님 보호 아래, 학교 수업 잘 듣고, 밥 잘 먹고, 친구들과 잘 지내기만 하면 됐다. 아르바이를 하긴 했으나 어디까지나 용돈벌이 정도였고 그렇게 더할 나위 없이 안전하고 행복을 시간 보냈다. 조금씩 내가 인간을 혐오하기 시작한 것은 직장생활 2년 차 때부터였다. 세상 모든 것이 아름답다고만 생각해왔던 나는 직장 상사와 관계가 틀어지기 시작하면서부터 인생이 점점 고달파지기 시작했다. 태어나서 누군가를 그렇게 미워해본 적은 처음이었다. 한 사람을 미워하기 시작하자 겉잡을 수 없이 그 미움은 저주로 이어졌고 그 저주는 결국 나에게 부메랑처럼 돌아오곤 했다. 고된 노동과 온갖 정신적 스트레스로 인해 나는 정신과 진료를 받아보려 예약도 했으나 그냥 모든 것을 다 내려 놓고 홀연히 한국을 떠나는 방향으로 결론을 맺었다. 내가 반항하고 뭔가를 하려고 하면 할수록 더 갈갈이 찢어지고 부서지는 것은 온전히 '나'라는 것을 깨달은 후 내린 결론이었다. 나는 나를 보호하기 위해 본능적으로 그 지옥불에서 빠져나와 여행을 하면서 세상을 자유롭게 날아다녔다.

 직장생활에서 망가진 나는 긴 여행을 통해 간신히 원래 상태로 회복할 수 있었고, 나를 처참히 망쳐놨던 그곳으로 다신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뉴질랜드에서 외국인 노동자로 살면서 단 한 번도 내가 전공으로 공부하고 일했던 물리치료라는 직업을 놓아버린 것에 대해 후회하지 않았다. 외국인 노동자 신분이 좋아서라기 보다는 이곳에서는 적어도 나의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거나 함부로 말을 뱉는 인간이 없기 때문이다. 사실 뉴질랜드에도 이상하고 정신 나간 사람들이 있겠지만 그 사람들이 내게 영어로 블라블라 거린다한들 내가 다 알아먹지를 못하니 내겐 아무런 타격이 되지 않는다. 한국에 20년 넘게 살면서 한국어를 듣고 평생 말해온 나는 한국인들이 하는 말 한 마디 한 마디를 듣고 싶지 않아도 듣을 수 밖에 없는데 그럴 때마다 너무나 고통스럽다. 차라리 내가 한국어를 애초에 잘 못하는 사람이라서 한국인들이 하는 나쁜 말들을 듣고도 몰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인간 혐오증'이 사실은 '한국인 혐오증'인데 이는 내가 한국어를 모국어로 하고 있어서 한국어를 잘 알아듣기 때문이다. 만약 내가 영어나 스페인어를 현지인처럼 잘하는 사람이었다면 구태어 한국인 혐오증이라고 하지 않고 궁극적으로 '인간' 혐오증이 되었을 것이다. 내가 겪어온 한국인들은 정말 이상한 사람이 많았다. 남 헐뜯기를 즐기기라도 하듯 아무렇지 않게 말을 뱉고 상처를 주는 것에 쾌감을 느끼기라도 하듯 더 자극적인 표정과 행동을 취한다. 말이라는 것이 ''와'ㅓ'가 다른 것인데 신기하게도 한국인들은 어떻게 하면 상대방이 더 기분 나쁠지 연구하고 고민이라도 한 것처럼 날 선 말들을 쏟아낸다. 본인이 쓴 글을 다시 읽었을때 그 글이 다른 누군가가 나를 향해 쓴 글이라고 생각한다면 과연 그런 날 선 말들을 입에 담을 수 있을까. 연예인들 중에 우울증으로 자살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사람들에게 얼굴이 알려지고 TV에 비치는 모습으로 생계를 이어나가는 이들은 인간들의 맛있는 먹잇감이 된다. '말'이라는 것이 날카로운 칼날보다도 더 무서운 흉기인 것을  사람들은 알면서도 모른 척한다. '말'한마디에 사람의 목숨이 왔다 갔다 하고 '말' 한마디로 인생이 바뀌기도 한다. 사이버상에서 본인의 신분을 드러내지 않은 채 남을 헐뜯기 바쁜 그런 인간들이 너무나 혐오스럽다.

 나의 이런 인간 혐오증은 대인관계를 맺는 것을 방해하기도 한다. '이 사람은 분명 인터넷에서 그런 날 선 말을 뱉는 사람일 거야' 라는 선입견을 갖기도 하고,  '현실에서도 저런 식으로 말하는 사람이라면 분명 사이버상에서는 더 심한 말들을 하고 다닐 거야' 라는 생각을 갖기도 한다. 그래서 점점 한국말을 하는 사람들과 사이가 벌어지게 되고, 차라리 한국어가 아닌 외국어로 말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더 편하게 느껴진다. 언어적으로 뿐 아니라 문화적으로도 이곳 사람들은 남일에 큰 관심이 없다. 남이 이별을 했는지, 남이 시험에 통과했는지, 남이 심지어 물건을 훔치든지 말든지 그렇게 호들갑을 떨면서 관심을 갖지 않는다. 물론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한국인들처럼, 그 남자가 뭐가 부족해서 이별을 했나 보다, 그 여자가 성격이 더러워서 이별을 했나 보다, 어제 클럽에서 본 듯한 사람 같던데 노느나 바빠서 시험에서 떨어졌나 보다 등 정이 많은 것인지 오지랖이 넓은 것인지 관심이 참 많다. 그리고 그 관심은 그 사람을 평가하는 잣대로 이어지곤 한다.

 내가 한국어를 모국어로 하는 이상, 나는 한국에서 살면 인간 혐오증에서 헤어 나올 수 없을 것 같다. 세상에는 좋은 사람이 훨씬 더 많지만 내가 혐오하는 대상들이 전 세계 곳곳에 널리 펴져있어 나는 아마도 한국인이 거의 없는 작은 섬나라 같은 곳에 가서 살아야 할 것 같다. 말은 본인이 어떤 사람인지 드러내는 가장 빠르고 핵심적인 수단이다. 당신이 하는 말은 바로 당신의 인격을 나타내기 때문에 나는 더 이상 자신의 인격을 깎아내리는 그런 사람들이 이 세상에 많아지지 않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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